허니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마야 막스 그림,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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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웃는다. 히로시도 웃는다. 그 웃는 얼굴에는 우리 둘이 만난 이후의 어린 시절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의 모든 역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어디에 있든 왠지 문득 불안해질 때면, 나는 어느 틈엔가 마음속으로 뜰에 있을 때의 자신으로 돌아가곤 한다. 뜰은 나의 감각이 출발한 지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기준 공간이다. p11


히로시는 낡은 집 안에서 차분한 할아버지와 조용히 둘이 살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히로시는 할아버지가 죽는 것을 몹시 두려워했는데, 이른 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말았다. 히로시가 낡은 집안에 박혀 잘 나오지 않게 되자 마나카가 히로시를 찾아가 아예 낡은 집에서 같이 지내기로 결정했고, 낡은 집을 정리 하던 중 예전에 잠깐 보았던 이상한 제단이 놓여있는 방을 정리하게 되었다. 일본식도, 티베트식도 아닌 서양식 제단이 놓여 있었다. 불길한 냄새가 나는 듯한 곳을 히로시가 정리한다고 하여 도와주다가 분홍색 천에 싸인 조그만 항아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호기심이 뭉글뭉글 피어올라서 항아리 뚜껑을 비틀어 그 안을 보았더니 피가 배어 있는 낡은 거즈 같은 것으로 둘둘만 무진장 냄새가 풍기는 뼈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본 히로시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히로시가 내 형제의 뼈 일지도 모른다 하여 땅에 묻어주고 나머지들은 불에 태워 버렸다. 그것을 치웠다는 것이 히로시에게 뭔가 큰 의미를 지니는지도 몰라도 힘차고 밝아 보였다. 어느 날 히로시가 여권을 만들었다고 해서 갑작스레 마나카의 친엄마가 있는 브리스벤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무지개를 만들면서, 흙탕물에 비친 아름다운, 하늘 흐르는 구름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렇게 사소하고 웃어 넘겨 버리는 일이 인생을 구성하는 세포라고 정성스럽게 느낄 수 있는 컨디션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p49


죽음, 두려움, 불안, 어둠 이 모든 것을 지닌 히로시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치유해 줄려고 노력하는 마나카... 완전 글이 무겁다. 그리고 이해도 안간다. 굳이 부모님이 이상한 종교에 빠졌는데 그게 갓난 아기를 잡아 먹어야 하는 곳이라는... 그런 글을 왜 집어 넣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읽은 요시모토 바나나 책 중에 마음에 안들기는 처음이다. 예전에는 그녀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 속으로 빠져들곤 했다. 항상 매료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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