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C. S. 루이스의 인생 책방
홍종락 지음 / 비아토르 / 202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가 좋다나 유튜브의 영화나 드라마등을 요약해서 소개하는 것을 보면 마치 그영화를 다본듯하다. 그런 것에 맛들이면 영화나 드라마를 정상적으로 보기 힘들지 모른다. 보더라도 1.5배속은 놓고 봐야 조급성을 좀 덜하며 볼 것같다. 이런 사람들의 성향이 이 시대를 지배하는 듯 하다.

과거 대학교 다닐 때 학교복사집에는 프레쉬맨을 위한 신입생 필독서를 요약해 놓은 복사물묶음집을 팔곤 했다. 지금이야 PDF이나 e-book 나눔을 할듯 싶다. 물론 책에 대해 이런 일을 행하는 것은 책에 대한 무례이고 불법이다. 그런 것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책의 진수를 느끼기 힘들다.

이번에 나온 ‘C.S. 루이스의 인생책방(홍종락, 비아토르)’는 얼핏 보면 그런 오해를 가질수 있다. 책의 말미에는 루이스의 책에 대한 요약도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은 루이스의 책을 제대로 느낄수 있도록 루이스 덕후가 쓴 루이스의 초보자들을 위한 안내서이고 루이스를 통해 길을 찾은 이의 비아토르 즉 길을 가는 여행자의 발자취의 기록이다.(이 책을 낸 출판사도 비아토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루이스를 처음 접하거나 루이스의 책을 한 두권 정도 읽고 루이스를 다 아는 듯 착각하는 이들을 깨우치게 한다. 또 루이스의 덕후들에게는-의외로 C.S.루이스에게는 강한 팬덤이 있다. 그의 책의 진가를 느낀 이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이스에 대해 더 깊이 들어가는 인도자의 역할을 해준다. 특히 책 말미에 루이스의 여러 책에 대한 토론 질문과 책에 대한 요약을 더해주어서 C. S. 루이스와 반지의 제왕J. R. R. 톨킨 등이 모여 책에 대한 토론을 가졌던 잉클링스처럼 깊이 있게 루이스를 통한 신앙의 깊이와 사고의 항해를 갖게 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누구보다 루이스를 통해 인생의 길의 행보에 도움을 받은 이들을 위한 책이고 저자의 루이스에 대한 연애편지라 할수 있을 것이다.

 

p.s. 이 책의 초반에는 C.S.루이스의 결혼과 상처를 다룬 셰도우랜즈에 관련된 실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롭다. 리처드 아덴보로-이 분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간디라는 영화 및 숱한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지만 쥬라기 공원에서 배우로도 출연하기도 했다)가 감독했던 이 영화는 초반과 후반의 루이스의 강연장면을 통해 머리로서의 고통이해와 그 고통을 실제로 거친 신앙인의 고통이해가 어떻게 다를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어서 인상적이었다. 그 소재가 된 루이스의 사랑과 사별에 대한 스토리의 먹먹한 감동만이 아니라 루이스에 대해 관심있는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기도 한다. 약간은 기독교적 관점과는 좀 간극을 둔 듯 싶어 아쉬운 면도 있지만 저자는 그 영화 속에서 갖았던 의문과 허전함을 해소해주는 듯 싶어 개인적으로 감사하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출발의 시간 트윙클 소년소설
트루스 마티 지음, 황윤선 옮김 / 산수야 / 201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흥미롭지만 재미만 담은 책이 아닌.....-출발의 시간(트루스 마티, 산수야)를 읽고

읽어나가며 미카엘 엔데의 끝없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끝없는 이야기처럼 환타지같은 스토리와 현실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전개되다가 두 개의 이야기가 통합되는 것이 어느정도 구조적 측면에서 결을 같이하는 듯했다. 책의 분량이나 이야기의 전개는 다르지만 일종의 책 또는 스토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주인공이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끝없는 이야기는 2부로 넘어가서 두 스토리가 합쳐지면서 주인공이 기억을 점차 잃어간다는 것이 다르지만- 비슷한 듯 싶다.

그런데 출발의 시간은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소녀가 그 책임이 자기에게 있을지 모른다는 죄책감과 아버지의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아버지를 통해 극복하게 되느냐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극복에 있어서 아버지의 삶과 그에 대한 추억이 소녀가 갖고 있던 내면의 문제를 치유하고 회복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청소년 소설로서 가치를 갖는 듯하다. 착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의 중재 - 계시, 화해, 성육신에 관한 과학적?삼위일체적 탐구
토마스 F. 토렌스 지음, 김학봉 옮김 / 사자와어린양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와 달리 한국 기독교는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다룬 깊이있는 논문과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런데 그 책들이 흥미롭고 필요한 부분을 일부 다루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때 적지 않은 책들이 지엽적이거나 비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거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면도 꽤 있어 보이는 듯하다. 그것이 전혀 불필요하다거나 쓸모없는 일이라는 것은 아니고 신학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도 아니지만 정작 힘써야 할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힘을 쏟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을 빌미로 한 우리들의 사역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 조직신학 책이나 교리사 등의 책을 읽다보면 지금의 책들과는 달리 상당히 전통적인 것 같고 고루해 보이고 정통적이고 그 책들의 내용이 서로 각기 다른 분야와 주제를 다루는 것 같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한 주제로 귀결되는 것을 느끼곤 한다. 그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물론 최근에 나오는 모든 신학서적과 논문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당연히 언급하고 기술한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 단지 기술하는 것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이끄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일 듯 싶다. 마르틴 부터가 나와 너에서 사람의 관계를 나와 너나와 그것으로 구분한 것처럼 현대신학 서적의 상당수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나와 그것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3인칭으로 보게 한다.

그에 비해 기존의 주목할 만한 신학서적들은 교리를 다루는 데에 상당한 신중함을 견지하는데 그런 이유 중의 하나는 그저 성경의 문자적 접근에 천작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과 교리를 다룸은 결국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며 하나님 존전에서 공동체에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설명하는 경외감으로 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책들은 읽는 행위 자체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됨을 깨닫게 하고 우리의 옷깃을 여밀게 하고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두려움을 갖게 한다.

얼마전 사자와 어린양이란 작지만 내실있는 출판사에서 나온 토마스 E. 로렌스의 그리스도의 중재란 책이 이런 류에 속하는 귀한 책이다. 사실 토마스. E. 로렌스라는 신학자는 이번에 처음 접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중재라는 제목은 좀 낳설었다. 차라리 중보라든가 구속이라는 단어가 더 적절치 않나 하는 첫 대면의 느낌은 그러했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가면서 특히 책의 초반을 넘어가면서 저자의 그리스도의 중재리는 제목을 왜 택했는지, 또 중재를 그저 신학적 주제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어떤 역할과 노력을 했는지를 설명하는데 온 공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설명이나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지를 알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은혜에 감격하여 엎드리도록 이끈다. 신학이 빠지기 쉬운 헬레니즘적 이원론을 넘어서고 신학의 단순한 문자적이고 비인격적인 이론적인 접근에 하나님의 생기와 은혜를 불어넣어 머리와 심장, 그리고 영성으로 이해하고 체감할수 있도록 독자를 돕는다. 그렇다고 이것은 감성적이거나 믿음으로만의 신학의 이해가 아니라 부제가 계시, 화해, 성육신에 관한 과학적·삼위일체적 탐구인 것처럼 그리스도의 중재를 각각의 관점에서 고찰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위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한 계시를 설명하며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과의 관계와 연대를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나타났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가 되셨음을 말한다.

화해는 왜 이 책의 제목이 그리스도의 중재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데 타락하여 실패한 인간을 하나님과 화해함을 설명한다. 그리고 그 화해를 위한 이스라엘의 역할과 이스라엘 민족가운데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사람만의 화해가 아니라 그 화해의 한 역할을 감당한 이스라엘과 그리스도인의 화해도 보여준다.

또 그 중재를 위해 중재자의 신성과 인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필수적인지를 이야기한다, 또 그 중재를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해와 그 의미가 어떤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설명해준다.

이 책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학은 어떤 부분을 다루건 독립적이거나 일부분에 국한될수 없고 그 어떤 주제든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과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하며 그분을 만날 수 밖에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책이라 할수 있다.

주목할 신학자임에도 국내에는 더 알려져 있고 번역도 미비한 상황에서 이번 사자와 어린양에서 나온 이 책은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할수 있을 듯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을 향한 기다림 - 잊혀진 그리스도인의 소망
래리 크랩 지음, 이은진 옮김 / 비아토르 / 202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전만 해도 상담이나 심리치료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당히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상담이나 심리에 관계된 책을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독서의 비중에 있어서 그쪽에 관계된 책들이 적지 않음에도 그러했다. 실제로 그런 책들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상담이나 심리에 대한 것을 거부하거나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었다. 일반상담서들은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기에 그렇다고 하지만 기독교 상담학자나 서적들에 대해 특히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물론 기독교 상담서들도 일반 상담이나 심리 서적만큼 읽었다. 그러면서도 그런 이중적인 감정을 가진 이유중에 하나는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접근에서 기독교 상담학자 들 마저도 과연 성경적 접근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게리 콜린스같은 경우 기독교계에서 상당히 주목받는 책을 많이 내놓기는 했지만 그의 책들은 인간에 대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에 사랑받을 존재라고 하면서 그 하나님의 형상이 죄로 인해 파괴되어짐을 간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한계성 있는 인식으로 문제를 풀어가는다보니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사랑받을 가치만 강조하는 모순을 보인다. 또 어떤 학자들은 지나치게 신앙만 강조함으로써 성경구절과 그 원칙만 강조함으로써 말씀만 강하게 붙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양 말하는 모습들도 있는 듯하다. 또 어떤 학자들은 기독교 상담이라고 말하고 복음과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도 그들의 실제적인 내용은 일반 상담과 대동소이하고 그 안에 기독교적 접근이나 시각이 있긴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경우도 상당했다.

긍정적이지 못했던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그것은 좀더 실제적인 문제였는데 환자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상담하는 이들이 한정적이고 제한적으로 그들을 대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종종 어떤 문제를 가진 이들에게 10회 상담 혹은 그들의 특정한 영역에 대해서만 상담을 제한 하는 경우를 보곤 하는데 결국 그러한 상담이 얼마나 그들의 문제를 얼마나 깊이 있게 다루며 전인적인 그들을 치유할수 있을까 하는 회의적인 마음이 들었었다.

 

그러다보니 괜찮은 책이라는 평을 받는 책이나 저자를 보면서도 긍정적이고 좋은 느낌은 들지만 한계성과 아쉬움을 매번 갖곤 했다.

그런데 몇 년전 한 작가의 책이 눈에 꽂혔다. 그 작가는 이번에 읽은 천국을 향한 기다림의 작가 래리 크랩이었다. 아마도 요단에서 나온 상담과 치유 공동체‘-절판됨-로 기억하는데 상담학자이면서도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교회 공동체가 교회바깥의 전문상담사 등에게만 맡기고 성도와 지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와 목회자로서의 역할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곧 교회 공동체와 목회자가 이런 이들을 책임지고 돌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담학자로서는 상당히 독특하고 예외적인 시각 같았고 오래전 읽은 책이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지만 자신이 상담학자적 입장에서 책에서 말하는 시각으로 바뀌게 된 과정을 어느정도 설명하기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전에 읽었던 그의 책에서는 이런 부분을 주요하게 다루지 않아서인지는 모르지만 이전의 책에서 비쳐지던 그의 시각과는 달라진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은 나만의 이해였을까?

이번에 나온 천국을 향한 기다림:잊혀진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이제는 기독교적 상담학자라기보다는 노년의 목회자같은 느낌이 더 강하게 투영되는 듯하다. 그가 소천하기 칠 개월전이라 서 더 그런지 그의 책은 제목 마냥 천국입성을 앞둔 성도로서의 모습이 그려진다. 천국으로 한 걸음 먼저 더 다다간 믿음의 선배로서 우리에게 약속된 천국에 대한 소망과 기대 대신 세상에서 만족을 얻도록 우리의 초점을 흐리게 하는 여러 가지 중독이 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그 중독은 자아 중독으로 나타나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관계적 죄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자아중독에서 벗어나 우리가 천국을 향한 기다림,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소망을 다시 회복하도록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런 것 같다. 우리는 자주 천국보다는 세상에 눈을 돌린다. 심지어 교회공동체안에 있으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세상에서 그 기쁨과 만족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유사 기쁨이고 찰라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떠나기전 우리에게 그 기다림과 소망을 회복할 것을 마지막으로 강렬히 당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쁜 사랑 3부작 세트 - 전3권 나쁜 사랑 3부작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쁜 사랑 3부작 3권 잃어버린 사랑(엘레나 페란테, 한길사)

 

, 아내, 어머니의 모습을 통한 여성의 홀로서기 -

엘레나 페란테를 언급할 때마다 내게는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시기에 한길사에서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4부작과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 7부작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두 작품은 스타일이나 문화적 배경등은 전혀 다르지만 그들 작품 속에서 작가로서 주인공이 형성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면이 내게는 흥미로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의 출간이 빠르게 완결되어진 반면에 나의 투쟁은 아직도 4번째 책이 출간을 위해 몸부림(?) 치고 있어서 한참 뒤쳐진 것같아 두 작가를 모두 아끼는 독자로서 아쉬움을 가진다. 이번에 엘레나 페란테의 또다른 나쁜 사랑삼부작이 나왔다. 이 세권은 출간시기나 주인공, 스토리가 각기 별개이기에 삼부작으로 꼽을 수 있을지 의문이 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여성의 딸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사랑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면서도 적지않은 교집합과 상관 관계를 보여준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의 투쟁에 개인적으로 더 끌리는 면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것은 엘레나 페란테의 책의 격이 떨어지거나 재미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어떤 면에서 개인적 흥미와 관심이 가는 면이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에게 있기도 하고 북유럽작가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엘레나 페란테가 그리는 이탈리아의 성문화나 그들의 문화가 내게는 어떤 때는 부담스럽기도 하고 생경하기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편의 성가신 사랑을 읽다가 초반에 놓을 뻔한 것도 그런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엘레나 페란테의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작가의 여성에 대한 지독한 탐구와 헤집음 때문이다. ‘

나폴리에서 그리는 이탈리아의 근현대사와 그시대의 문화와 가치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시대적 간극과 문화적 차이가 있음에도 현재 우리에게 낯설지 않고 설득력있는 것은 여성의 삶과 자아, 그리고 홀로서가는 과정이 그 어느 책들보다 강렬하기 때문이다. 엘레나 페란테 작품속의 여성들이 그가 속한 시대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고 형성해가는 과정은 어떤 면에서는 하드고어적 좀비영화나 리얼리즘 전쟁영화의 묘사 같을 정도다. - 실제 그런 사건은 벌어지지는 않지만- 소설속의 주인공이 타인에 의해- 특히 가까운 남편이나 어머니, 친구들- 관계에 의하건 사건에 의하건 해부당하고 뜯겨 나가기도 하고 또 자기자신 스스로 자신을 해체하거나 자학하는 등으로 인해 거의 죽을 것처럼 무너지거나 찢겨나가는 것은 어떤 때 독자들에게 특히 내게- 불편함도 주곤 한다.

하지만 그런 치열함 속에서 주인공은 어떤 때는 아주 산산히 부서지기도 하지만 그속에서 자신을 재구성해 간다. 마치 ‘no way out’의 상황에서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살점 하나에서부터 다시 몸을 갖추어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나폴리의 주인공이 그러했고 버려진 사랑의 주인공이 그러하다. 특히나 버려진 사랑의 후반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아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주인공이 더더욱 막장의 순간 까지 내려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후 벌어지는 아들의 갑작스런 병, 죽어가는 개, 망가진 문이란 겹겹의 탈출구없는 상황과 그 나락에서 극한 상황을 넘어 오히려 회생불능의 죽음의 상황에서 회생하여 다시 일어서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일종의 방탈출 게임?- 남편의 외도에 모든 핑계를 대가며 망가지는 것을 당연시하고 합리화 했던 주인공이 다시 일어나 결국 남편과의 확실한 단독자로 선다. ‘성가신 사랑에서 어머니의 장례후 어머니의 미스터리를 좇아가는 과정 속에서의 주인공의 이해할수 없는 해동들과 사건들은 사실 어머니의 미스터리가 아니라 자신의 미스터리를 찾는 것이었고 일종의 또다른 의미의 여성판 오이디푸스의 여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또다른 홀로서기와 어머니와의 오래된 화두를 해결하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드디어 벗어나며 치유되는 것이라고도 할수 있다.

그에 반해 잃어버린 사랑의 주인공은 이미 나름의 홀로서기를 한 여성주인공이고 앞선 두 주인공과는 달리 자신의 홀로섬을 위해 가족마저 떠나는 것을 자처했던 여인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고 성가신 사랑의 어머니를 바라본 딸과는 달리 어머니로서 딸을 바라보고 아쉬움을 보이고 아직도 탯줄을 끊어내지 못한 어머니- 자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으로 인해-를 그려낸다. 버려진 사랑과는 달리 먼저 착한(?) 남편에게서 떠나갔던 여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앞선 1,2부작과는 많이 다르면서 이 세 부작을 완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잃어버린 사랑은 이제 먼저 홀로 선 여인으로서-아직도 해결않되고 놓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또다른 홀로서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하고 주저하는 여인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비록 실패로 끝나지만-

이 삼부작은 여성을 그리며 여성을 주체로 그리지만 그 어느 책보다 어머니로서 딸로서 아내로서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세가지 모습은 어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기피가 될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이 부분을 넘어설수 있어야 진정한 홀로섬, 아니 자궁에서 나와 생명을 얻는 작은 생명체가 될수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하다.

#한길사 #엘레나페란테 #나쁜사랑 #나의투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