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균 그리고 이순신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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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뒤안길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는 것은 어쩌면 후세가 지는 커다란 숙제인지도 모른다. 지난 몇 년 동안 역사학계를 비롯해 여러 학술적 고찰은 삼국시대와 조선 500년사뿐만 아니라 신화로 묻혀있는 상고사에 크게 초점이 맞춰져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성과물들이 아직은 어떠한 기존의 학설에 대한 반론 수준에 밖에는 이르고 있지 않지만, 곧 그 진실공방의 끝이 있으리라 개인적으로도 기대를 하고 있다.

2009년에도 변함없이 여야의 극한 대치정국을 바라보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한숨밖에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 결과가 가장 조화로운 타협에 맞춰진 것이 아니고 다소 힘의 논리로 점철되어 보였기 때문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듯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끊임없이 반목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과정의 효율성에 있어서 과연 그들의 주장들이 진정 과거의 백성들과 현재의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는가? 하는 대는 커다란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다.

5000년이 넘는 역사동안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매번 오뚝이처럼 쓰러질듯 하다가도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는 달리 했어도 그때그때마다 우리 민족의 내재된 단결된 힘과 슬기가 있었기 때문인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그 힘과 슬기의 구심점 역할은 우리가 역사적인 인물로 칭하는 영웅들의 몫이기도 하다.

임진왜란과 더불어 우리의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은 단연 충무공 이순신장군이다. 역사를 배우기 이전부터 표지에 거북선이라는 독특한 배가 함께 그려진 위인전을 통해서 접했던 이순신은 충무공이라는 시호가 말해주듯 나라를 구하는 데 커다란 공을 새운 조선시대의 영웅으로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영웅담은 세대를 반복하며 사극과 영화 등을 통해서 그 친근함을 더해 왔다. 그렇다면 ‘원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 역사에 관심이 덜 했다면 얼핏 이름이 생소하지 않은 점으로 짐작할 때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영웅 이순신과 비견할 인물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렇듯 원균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행적이 다소 묻혀버리거나 잊혀질만한 인물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원균 그리고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웠던 이 두 장군들의 극명하게 엇갈린 희비로 현재에 이른 역사적인 관점을 다시금 재조명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물론 책제목이 보여주듯 초점은 그동안 우리와 거리가 있었던 원균에 맞춰져 있다. 그렇다면 이순신은? 본의 아니게 공식적인 역사라 할 수 있는 실록에서 원균과 이순신은 마치 반대말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전란 중으로 같은 적과 맞서는 한 나라의 장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구의 의견을 객관적으로 옳게 판단하느냐에 있다. 저자는 가장 일차적으로 조선 500년사를 고스란히 담았다고 여기는 조선왕조실록 중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추론할 수 있는 선조실록이 유일무이하게도 수정선조실록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편찬되었고, 이 과정에서 아무래도 수정을 가한 이식의 개인적인 사견이 반영되어 원균과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를 극명하게 만들었다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같은 기간에 기록된 원균과 다른 문,무인들의 행장기와 비록, 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도 여러 모순점을 찾아 지적하고 있다.

어쩌면 단순히 한 나라의 국민적인 영웅을 모함한다고 여길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역사 재발견은 이러한 작은 의문에서 시작되고, 또 다른 새로운 진실과 대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예로 그동안 대중들에게 추앙을 받던 각계 인사들의 친일행적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그들의 활동과 작품을 통해 얻었던 명성에 대한 재평가가 계속 진행되는 것처럼 말이다. 더욱이 이렇듯 사라지지 않고 가려지고 묻혀있는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고찰은 앞으로 제대로 된 역사를 만들어 가는데 후대에 초석을 다지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이렇듯 <원균 그리고 이순신>을 읽으면서 생겼던 반감은 이순신의 행적에 대한 비판을 떠나 원균의 모습이 우리 앞에 새롭게 조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따라가게 한다. 또한 그 마음의 따라감이 끊임없이 반목하는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조금이나마 밝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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