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 - 누가 감히 '한다면 하는' 나라 미국을 막아서는가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데이비드 버사미언 인터뷰 / 시대의창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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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촘스키와의 대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 이름은 귀에 익숙하다. 무엇보다 세상의 진실을 대변하는 듯 한, 그동안 나 이외에 수많은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깊이 자극한 인상이 나에게도 어렴풋이 여운으로는 남아 있었다. 나는 먼저 책의 몇 장을 앞서 뒤적거렸다. 인터뷰형식의 구성으로 된 책의 내용은 왠지 첫인상이 좋지는 못했다.

그리고, 본격으로 “촘스키의 책이 필요 없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옮긴이의 글로부터 촘스키를 나의 머릿속에 각인해갈 준비를 했다. 목차를 지나 8개의 PART중 1개를 읽었을 때 이미 촘스키가 나의 심장 근처에서 대화를 걸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자유”라는 단어로 내 마음을 열고 싶어 했다. 하지만 촘스키의 글을 통해서 내가 느끼는 자유는 결국 이데올로기적 자유였다. 세상의 권력의 중심에 서있는 사람이건, 하루살이에 힘겨운 노동자나 여전히 줄 듯 늘어나는 노숙자들이건, 사람들은 모두가 좋은 세상을 갈망한다. 모두의 좋은 세상에 가장 중요한 조건은 자유다.

우리는 한동안은 자유에 목말라했었다. 그리고 완전한 자유는 아니었지만, 조금의 자유를 누리며, 바로 풍요에 눈을 돌렸다. 그리고 완전한 풍요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사이 권력자들은 풍요와 안전이란 눈앞의 가림막으로 자유를 억압하며, 유린한다. 결국 제자리 인 셈이다. 물론 눈에 보이는 세상은 크게 변화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저변에서 우리의 자유를 조금씩 빼앗다가 어느새 송두리째 빼앗아버릴지 모르는 비도덕은 여전히 깊은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다.

촘스키와의 대화는 바로 이러한 진실을 왜곡하며 인권을 유린하는 인간의 사악함에서 비롯된 비도덕적인 뿌리에 제초제를 가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이런 경험들을 갖고 있다. 그동안 진실인줄 알았던 일들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접했을 때의 배신감과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말이다. 촘스키가 바라보고 끊임없이 진실을 향한 열정은 바로 이러한 카타르시스의 발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촘스키, 변화의 길목에서 미국을 말하다.>에서도 촘스키는 우리를 까맣게 속이려 했던 진실의 왜곡에 메스를 드리워 새로운 카타르시스의 발로를 열어 주었다. 그동안 외신의 체로 걸러진 기사로 잘 알고 있던 미국, 그리고 그들과 동조하는 국가와 무리들의 계획된 음모, 그 치밀한 각본처럼 짜여진 듯 한 일들의 진실들을 바라보며, 배신감은 조용히 비장한 미소로 입가에 남게 되고,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까지도 권력에 의해 공격받고 짓밟혀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워갔다.

촘스키와의 대화를 통해서 지난 사실과 역사의 진정성을 깨닫는 것은 중요일이다. 진정 필요한 생각과 일은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미래의 역사적 사실의 진정성을 보호하는 작업이다. 물론 그 작업이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자유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 자유의 필요성과 의지를 나는 촘스키의 대화를 통해서 발견한다. 자유 없이 비롯된 변화의 미래는 더욱 큰 시련의 미래로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의 큰 변화의 물줄기에 자유를 심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도 행복한 돼지로 살 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다. 촘스키의 이 책은 우리가 여전히 누리지 못한 자유의 소중함을 목이 터져라 외친다. 다음 세대에 나타날 촘스키를 기대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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