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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권운동가 소파 방정환 - 기발한 기획과 초대형 행사를 이끈 문화혁명가
민윤식 지음 / 스타북스 / 2021년 5월
평점 :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 누르지 말자 – 소파 방정환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올리는 소파 방정환의 대표적 업적은 ‘어린이날’의 창시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그가 어린이인권운동가뿐만이 아니라 이벤트 기획자, 생활 개혁파, 문화혁명가, 독립운동가, 교육자 등으로서 33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무수히 많은 공과 업적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한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후 평가 작업이 소홀하게 취급되어 진면목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하물며 현재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정환의 모습도 중절모를 눌러쓰고 짙은 눈썹에 볼살이 많은 무표정의 흑백 사진이 유일하다.
후손의 입장에서 보자면 짧지만 굵직했던 방정환의 일생과 살아온 자취를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역사의 페이지 위에 정성스럽게 올려놓는데 진력을 다 한 이 책의 저자 민윤식 작가에게도 감사해야할 일이다. 이 책은 소파 방정환의 서거 90주년을 맞아 평전 초판을 보완하여 개정한 것인데 저자에 의하면 방정환에 관련한 사료가 풍족하지 않고 증언이나 증명을 해줄 주변 인물들도 세월이 흐르는 동안 타계하여 그의 생애와 업적을 낱낱이 밝혀내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작가가 전기와 평전 작업을 하는 동안 자료를 찾고 연구하면서 느끼고 크게 감탄했던 것처럼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방정환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의 생애를 상세히 들여다보니 작가가 ‘작은 거인’이라고 표현한 대로 소파 방정환은 과연 작은 체구에 큰 인물이었다. 33세라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그는 아동문학계에 큰 문화유산을 남겼고, 《개벽》, 《어린이》, 《신여성》, 《녹성》 등 10개의 잡지를 직접 운영하며 탁월한 저널리스트로서 활약했으며, 특히 「은파리」 라는 풍자소설을 연재하여 권세가와 위선자들로부터 생겨나는 인간 세상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시대 상으론 총독부의 탄압과 감시도 피해갈 수 없는 장애물이었으나 그는 동요, 동화극, 동화, 번안 동화, 논문, 탐사기, 수필 등 800편에 이르는 글을 쓰고 1,000번 이상의 동화 구연과 순회강연을 했다. 또한 잡지 일을 하는 틈틈이 전문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아동 유희’를 가르치는 한편 색동회를 결성하고 전국의 소년운동 단체를 규합해서 조선소년운동협회를 주도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전 세계 20여국이 참가한 초대형 국제 행사인 ‘세계아동예술전람회’와 온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한 ‘비행사 안창남 고국 방문 비행쇼’ 등을 개최하여 기획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바에 대해서는 그를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벤처형 문화 사업가’이자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 문화 게릴라’라고 칭하고 있다.
방정환의 생애 마지막 순간도 이 책에서는 비교적 자세히 그리고 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직접적인 원인은 의학적으로 신장병과 고혈압으로 추측이 되지만, 그의 가까운 지인들은 당시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던 동아일보의 《신동아》 창간 공세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충격으로 급서했다고 증언했다. 유년시절 토지조사국에 취직하여 사자(寫字)생으로 지내던 시절 그의 동료이자 평생 마음을 나눈 유광렬의 회고기에 의하면 방정환이 병상에서 그에게 뱉은 말이 “내가 이렇게 간다니 창피해.”라고 하는데 평소 일제와 싸워 피를 흘리고 죽겠다고 했던 그의 말에 비춰보면 ‘억울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일생을 바쳐 어린이들의 미래와 조국을 위해 힘쓴 그의 정신력은 독립운동과도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소파 방정환, 그의 반짝이게 빛났던 삶의 성정은 후대에 남겨준 위대한 문화유산이며 그것을 계승해 나가는 것은 우리가 평생의 숙제처럼 무겁게 느껴야 할 책임이다. 더불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안타까움을 느꼈다면 더욱 이 책을 통한 마음의 처방과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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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7
어제, 잠시 혼미한 정신이 되돌아왔을 때 친지들에게 몇 마디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남겨 놓은 말이 그대로 유언이 되고 말았다. 동료들에게는 “일 많이 하라”고 했고, 장남 운용에게는 “공부 잘하라”고 했었다. 그러고는 마지막으로 “어린이를 부탁해...”하고 꺼져 가는 말로 끝맺으며, 마치 만세 삼창을 하는 듯이 두 손을 서너 번 올리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