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을 걷는 기도 - 위기의 동반자가 되어 줄 존 던의 하나님 대면 기록
필립 얀시 지음, 홍종락 옮김 / 두란노 / 2021년 5월
평점 :
품절


필립 얀시의 땀과 눈물의 서려 있는 번역과 편집을 통해 출간 된 <한밤을 걷는 기도>는 존 던(John Donne, 1572-1631)이라는 이름을 여태 몰랐을만큼 무지몽매한 저에게 기도문이 이토록 숭고하고 유려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은혜롭기까지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킹제임스 성경과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대의 런던 지식인들은 달변과 웅변을 높이 평가했는데, 그 점에서는 던을 당할 사람이 없었다"(32쪽)고 할만큼 탁월한 언변과 글쓰기의 은사를 소유한 그였기에 전염병이라는 공포와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기도문이 나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글을 뚫고 올라올라와 결국은 제게 이 사실만을 가장 선명하게 남겨주더군요.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
런던에서 가장 큰 교회인 세인트폴대성당의 수석사제로 지내는 중에 대역병의 물결이 런던을 세 번이나 강타했지만 교구민들을 위해 끝까지 런던에 남았던 그에게 찾아온 건 기적적인 회복과 부흥이 아니었습니다.
런던인구의 3분의 1을 전멸시킬 만큼 모든 걸 앗아가는 끔찍한 전염병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 역병은 역설적으로 던으로 하여금 당대와 후대에 스물 세 편의 묵상이 담긴 <비상시의 기도문>과 하나님과 교회를 향한 목회자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이런 것이라는 아름다운 모범을 남겨주었습니다.
<비상시의 기도문>은 2017년 영국의 <가디언>지가 선정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역대 최고의 논픽션 100권에 선정될만큼 불후의 걸작이나 바울의 글과 같이 문장이 "미로 같은 종속절들 사이를 헤매고, 한 문장이 200개 단어를 훌쩍 넘"(23쪽)길만큼 난해한데다가 고어식 표현이라 영미의 대중들도 읽다가 포기하는 그런 작품입니다. 저같은 사람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고전이라 할 수 있겠죠. 다행인 것은 이 작품에 매료된 얀시의 열정의 결과 너무나도 읽기 좋은 작품으로 재탄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밤을 걷는 기도>는 총 23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존 던의 <비상시의 기도문>과 더불어 존 던과 그가 살던 17세기의 시대적 상황을 간략하게 그러나 너무나도 입체적으로 잘 그려주고 있는 2편의 서론 격의 글과 코로나 19이후의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21세기 오늘날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를 다양하게 풀어내고 있는 5편의 결론 격의 글이 합해져 총 30편의 보화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단숨에 읽어도 세 시간이면 읽을 만한 분량이지만 저자는 하루에 한 편씩 차분하게 읽어갈 것을 요청합니다.
감사하게도 저자의 요청에 따라 아주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이 책을 읽어가던 저는 마지막 주차에 "얀센" 백신을 맞고 2-3일 어지럼증과 무기력함에 빠져 더 깊은 묵상의 자리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존 던, 그의 기도문을 직접 대면하는 것 외에는 없기에 그의 기도문
한 편의 일부를 옮겨 보았습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로 또 다시 세계가 긴장과 경계에 빠진 오늘 <한밤을 걷는 기도>는 그리스도인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선사할 것입니다.
"저는 죄수처럼 침대에 갇혀 누웠고, 약해진 힘줄은 쇠사슬이, 얇은 침대보는 쇠문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기 누운채로 시편 기자와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을 사랑하오니"(시 26:8). 하지만 저는 주의 집, 교회로 갈 수 없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등을 돌린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할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출교를 당한 심정이고 교제가 너무나 그립습니다. 주님, 주님은 행함을 사랑하시는데 저는 병들어 소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설교자입니다. 무덤에서는 아무도 주를 찬양할 수 없고, 무덤으로 들어가는 문인 이 병상에서는 제가 주를 찬양하는 소리를 아무도 들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는 다른 이들 앞에서 제 입이 주를 높이게 하시고자 제 입술을 만지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사로잡았던 두려움이 이제는 저를 괴롭힙니다. 바울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고전 9:27) 두려워했습니다. 저도 버려질까 봐 두렵고 낙심이 됩니다. ...... 제가 만약 회복된다면, 이 투병의 기억이 제게 유익하게 만드셔서 남은 인생을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나 만약 제 몸이 지금보다 더 낮은 상태로 떨어진다면, 이 땀의 목욕탕에서 제 영혼을 꺼내시고 당신의 눈물과 땀과 피로 거듭, 거듭, 거듭 씻어 아버지께 바치소서(59-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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