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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
이동원 지음 / 두란노 / 2020년 1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대원에서 역사신학을 공부하면서 길선주 목사님의 생애와 사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천로역정>이 길 목사님의 회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발견하고 <천로역정>을 다시 한 번 읽었던 저로서는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 출간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더욱이 그간 <천로역정>을 두 세 차례 읽었으나 <천로역정>을 분석, 연구한 작품을 접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죠.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의 저자 이동원 목사님은 이미 <이동원 목사와 함께 걷는 천로역정>과 <영성의 길>을 출간하여 천로역정의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널리 소개하였고, 천국을 향하는 순례자의 길에 담긴 영성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번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천로역정>에 관한 저자의 세번 째 책으로 저자의 말을 빌리면 "천로역정 순례 길의 사역을 다루는 책"입니다.
<천로역정>을 중심으로 세 권의 책을 썼다는 사실 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에 <천로역정>을 한 번이라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저자가 펴낸 세 권의 책에 큰 관심이 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는 사역자들에게 매우 유익한 책입니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이 천로역정을 중심으로 13가지 사역을 다채롭게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3가지 사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천로역정과 전도 사역 / 2. 천로역정과 교회 사역 / 3. 천로역정과 가정 사역 / 4. 천로역정과 영적 전쟁 사역 / 5. 천로역정과 치유 사역 / 6. 천로역정과 손 대접 사역 / 7. 천로역정과 사회 섬김 사역 / 8. 천로역정과 어린이 사역 / 9. 천로역정과 노인 사역 / 10. 천로역정과 장애인 사역 / 11. 천로역정과 중보기도 사역 / 12. 천로역정과 성경 해석 사역 / 13. 천로역정과 호스피스 사역
각각의 내용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엄청난 통찰을 주거나 번뜩이는 인사이트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 분들에게는 다소 실망할 부분이기도 하죠. 하지만 <천로역정>에서 13가지 사역의 원리를 뽑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그것이 어거지로 짜 맞춘 게 아니라 <천로역정>의 인물과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천로역정>이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 혹은 크리스천들에게 비판을 받아온 부분이 있습니다. <천로역정>에 나온 순례자가 시온 성, 곧 천국 가는 일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어서 이 땅에서의 삶, 가정이나 일터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족을 버려두고 혼자서만 천국으로 떠나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 그러나 이런 비판은 <천로역정>을 주의 깊게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천로역정> 2편을 읽지 못한 단견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천로역정> 2편은 주인공 크리스천의 아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이 남편과 아버지가 간 그 길을 따라 천국으로 향하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천로역정과 가정 사역, 76-77쪽)
"<천로역정> 2편에 보면 크리스티아나와 네 아들이 여행 중 아름다운 집에 도달했을 때 아들 마태가 병들게 됩니다. 이 아름다운 집은 교회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때 이 집 식구들은 마태를 치유하기 위해 의사 '노련'(Skill) 씨를 불러옵니다. 노련 씨는 의학적이면서도 영적인 진단을 통해 처방하고 병을 치유합니다. 이 장면은 교회의 중요한 미션이 이런 병자들을 긍휼히 여겨 치유하는 사역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치유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천로역정과 사회 섬김 사역, 138쪽)
"영어로 '지혜로운 사람'을 말할 때 보통은 'wise man'이라고 하지만, 고대 영어로 지금까지 쓰이는 보다 고상한 표현 중에 'sage'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를 번역할 때 조금은 고상한 언어로 '현자'라고 합니다. 현명함을 명사형으로 'sagacity'라고 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천로역정> 2편이 열리자마자 이 '현자' 혹은 '현명' 씨(Mr. Sagacity)란 노인이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책임이 무엇입니까? 크리스티아나와 그녀의 네 아들을 천로역정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 그녀와 그녀의 네 아들, 자비 양이 마침내 좁은 문을 향해 걷도록 안내한 뒤 현명 씨는 그들 곁을 떠났다고 <천로역정>은 기록합니다. 바로 노인 사역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역입니다." (천로역정과 노인 사역, 163-164쪽)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독교 신간의 홍수 속에서 기독교 고전은 특히나 젊은 층의 외면을 받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와 같은 책은 <천로역정>, 나아가 기독교 고전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을 환기시켜주는 너무나 좋은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천로역정과 하나님 나라>를 통해 교회 현장에서의 다채로운 사역을 재발견하고, <천로역정>을 깊이 묵상하게 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오늘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 조화롭게 구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