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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품절
환상의 책은, 폴의 다른 소설인 [달의 궁전]과 너무나 닮아 있다.
너무 닮아서 혐오스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그 혐오스러움은 곧 진한 애정으로 바뀌고,두근거림과 놀라울정도의 집중력으로 바뀐다.
챕터 2개를 남겨두고 거의 일주일을 보냈다.
이상하게 달의궁전도 그랬고, 공중곡예사도 그랬고, 오기렌도, 빨간공책도 그 밖에 폴오스터의 책들 대부분은 끝으로 갈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오래간만에 집으로 곧장 퇴근하는 길에, 오늘은 환상의 책을 꼭 다 읽고 말겠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었다. 집에 도착해서 이런저런 시간을 보내다가 10시쯤 침대 한켠에 놓아둔 책더미속에서 환상의 책을 꺼내들었다.
사실, 그 전까지의 전개가 너무나 급진적이어서 그 뒷 얘기가 꽤 궁금했는데도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헥터만의 영화들을 불태우기 전 데이비드와 엘머는 마지막으로 보게 될 지 모르는 -아니 결과적으로 마지막으로 보게된- 헥터만의 숨겨져있던 영화를 보게된다. 그 영화 여주인공 클레어의 정체가 탄로난 지점까지 읽었고 그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그럼에도불구하고 나에겐 잠시 휴식이 필요했다.
그동안 너무 급진적으로 데이비드 짐머의 독백을 따라왔기때문에 숨이 차 오를대로 차올라서 턱턱 막히는, 쿵쾅거리는 가슴을 쉬게해주고 싶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모든것을 멈춰버리기로했다.
사실, 오스터의 책은 항상 이런식이다. 나에겐.
책을 손에 쥐고 2시간 정도 잠들었었나보다. 새벽 1시 19분에 갑자기 눈이 떠졌고,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갑자기 누가 내 머릿속에 일정한 시각이 되면 울리는 자명종 - 꽤 시끄럽지만 정확하고 무언가 정교한 느낌이 드는 - 을 맞춰놓은듯이 불현 듯 깨어서는, 마지막 부분을 읽어내려갔다.
꽤 스피디 했던 것 같다.
다 읽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책 맨 앞장에 날자와 시간을 써놓고 한참동안 멍하니, 내가 그동안 빠져있던 환상의 책이란 있을법한 혹은 있을 수 없는 그런 이야기를, 이 이갸기는 대체 무슨말을 하고 싶은 걸까 에 대해서 생각했다.
얼마전에, 친구에게
"대체 왜 제목이 환상의 책인 거야?"
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친구도 글쎄, 라는 식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젠 왜 제목을 환상의 책으로 지었는지 알 것 같다. 분명히 이렇기 때문에 이런거야 라고 말 할 순 없지만.
헥터만의, 교묘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쿨한 이 계획은 아마 앞으로도 계속계속 떠오르며 나를 괴롭힐테지만, 시끄러운 도시 한 복판이 갑작스런 정전을 맞는 것처럼, 떠오를때마다 신나게 웃어주리라.
p.s
데이비드가 헥터만의 일기에서 발췌한 [가래침] 이야기는
그야말로 한밤중에 실소를 터트리게 만드는 폴 오스터만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나 정말 미친듯이 웃었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