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은 기억이 난다. 탄광촌을 직접 찾아갔던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무릎걸음으로 한참을 걸어가야만 하는 탄광 안에서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했었다.

이 책은 오웰이 묘사한 그 시커먼 탄광 속 같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나와디라는 이름이 낯선데, 인도 뭄바이에 있는 빈민가 마을이다. 저자는 오웰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이 주민들과 함께 머물며,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책을 썼다.

사건들은 놀랍고도 생생하다. 외다리 장애 여성이 이웃과 싸우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분신자살을 한다. 살인 누명을 쓴 압둘 가족은 졸지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는데, 이 사건을 대하는 공무원이며, 경찰, 의사 들은 하나같이 뒷돈이나 챙기느라 정신없다.

저자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리고 발단과 전개, 절정에 이르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모르고 보면, 마치 한 편의 잘 쓰인 소설 같다. 무엇보다 문장이 매혹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르포르타주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기 등장한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들이 아니라, 실존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 인물들을 통해, 신자유주의과 경제발전이 몰고 온 장밋빛 환상과, 전세계적 불황이 몰고 온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이란 무엇인지 냉철하게 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와디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마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런 부조리한 환경에서도 끝내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자 고군분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21세기 식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가장 냉철한 분석과 함께, 인간의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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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고 도서관에서 어슬렁거리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길 만한 책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처럼 이제 도서관도 당당히 산책 코스가 되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서관 산책’ 만큼 근사한 취미도 없을 것 같다.

저자들은 도서관 곳곳을 잰걸음으로 돌아다니며 ‘도서관 산책자’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해낸다. 산책자라고 했지만, 그냥 어슬렁어슬렁 한가로이 거닌 책은 아니다. 한 도서관을 갈 때마다, 도서관 관장도 인터뷰하고, 건축 비평도 하고, 고문서자료실에 들어가 옛날 신문이랑 자료도 뒤적뒤적하고, 이용자들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교양 프로그램도 뭐가 있나 하나하나 들춰보고, 마당도 나와서 한바퀴 돌고 틈틈이 사진도 한 가득 찍어왔다. 저자들이 종종대며 부지런히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얻은 깨알 같은 정보들이 쏠쏠하게 있다.

그래도 산책자라는 제목은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책의 역사나 역할, 미래, 가치 등에 대한 깊은 사색이 켜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 산책이 미술관 산책이나 박물관 산책과 다른 점이 여기 있다. 저자들의 사색뿐 아니라, 알베르토 망구엘, 로버트 단턴 같은, ‘책에 대한 책’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사색의 결과물이 적절한 곳에서 풍부하게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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