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은 기억이 난다. 탄광촌을 직접 찾아갔던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무릎걸음으로 한참을 걸어가야만 하는 탄광 안에서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생생하게 묘사했었다.

이 책은 오웰이 묘사한 그 시커먼 탄광 속 같은 곳에서 여전히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나와디라는 이름이 낯선데, 인도 뭄바이에 있는 빈민가 마을이다. 저자는 오웰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이 주민들과 함께 머물며, 사람들을 취재하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책을 썼다.

사건들은 놀랍고도 생생하다. 외다리 장애 여성이 이웃과 싸우다 자기 분에 못 이겨 분신자살을 한다. 살인 누명을 쓴 압둘 가족은 졸지에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는데, 이 사건을 대하는 공무원이며, 경찰, 의사 들은 하나같이 뒷돈이나 챙기느라 정신없다.

저자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리고 발단과 전개, 절정에 이르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서 모르고 보면, 마치 한 편의 잘 쓰인 소설 같다. 무엇보다 문장이 매혹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이 르포르타주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기 등장한 모든 사건과 인물들은 가상의 인물들이 아니라, 실존 인물들이다. 저자는 이 인물들을 통해, 신자유주의과 경제발전이 몰고 온 장밋빛 환상과, 전세계적 불황이 몰고 온 극심한 빈부격차와 불평등,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빈곤이란 무엇인지 냉철하게 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안나와디는 세계 곳곳에 존재하는 마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이런 부조리한 환경에서도 끝내 선한 마음을 간직하고자 고군분투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21세기 식 가난과 불평등에 대한 가장 냉철한 분석과 함께, 인간의 선하고자 하는 의지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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