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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릿마리 여기 있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12월
평점 :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오베라는 남자'의 쉰 아홉의 까칠한 아저씨 오베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의 일곱 살 소녀 엘사에 이어
이번에 만난 세 번째 주인공은 예순 셋의 브릿마리 아줌마이다.
예순 세 살의 나의 삶은 어떤 자리에 있을까?
나의 캐릭터는 어떨까?
같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도 '브릿마리'의 이야기는 좀더 공감대가 깊었고,
그 나이에 나는 누군가의 필요를 위해 나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아실현'을 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브릿마리는 독특하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은 과탄산소다로 항상 깨끗하게 청소 되고,
커트러리 서랍은 포크, 나이프, 스푼 순서로 반드시 정리되야한다.
그리고 그녀가 기록하는 리스트들, 리스트에 있는 것들은 꼭 그렇게 되어야한다.
정말 피곤할 것만 같은 브릿마리가 근데 참 사랑스럽다.
그녀가 처한 상황과 아픈 과거, 그녀의 내면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살면서 위기가 닥칠 때마다 하던 일은 청소였고...
리스트에 적혀있지 않은 당황스런 일이 생길 때면 손에 쉰 핸드백을 꽉 움켜잡고,
'하'라는 짧은 한마디에 놀램, 화냄, 많은 감정을 다 담아내는 그녀.
남편 켄트와의 별거로 일명 '고독사'와 같은 죽음을 맞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직장을 구해야만 하는 그녀의 끈질긴 목적은
소도시와 떨어진 다 망해가는 '보르그'라는 동네 속으로 들어가게 한다.
그곳에서 만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같이 너덜해진 청바지를 입고 축구를 '사랑'하는 아이들.
브릿마리가 그 축구팀 코치가 되다니??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면의 변화를 겪는 브릿마리.
그러나 브릿마리뿐 아니라 '보르그' 자체가 변한다. 사람들도, 동네도.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포기하지 말도록 응원하는 소설이다.
제목이나 혹은 주인공의 캐릭터로는 어울릴 법이 없는 <축구>라는 소재가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축구를 왜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축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던 브릿마리가
'심장마비'가 되어버릴 것 같은 느낌의 열정을 느낀 것처럼,
나 또한 축구에 'ㅊ'도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브릿마리의 뛰는 심장을 같이 느꼈다.
축구를 할 때 만큼은 고통을 못 느낀다는 아이들, 그 일을 지금 우리는 하고 있는가?
남편 켄트가 기다리는 문, 보르그에서 만난 친구 경찰관 스벤이 열어 둔 문...
또 베가가 부탁한 문.
과연 그녀가 두드릴 문은 어느 문일까 궁금해진 소설 막바지.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야하는게 옳다고 생각했던 브릿마리였지만
십자말 퀴즈에서 배웠던 '자아실현'이라는 단어의 뜻을 쫓아가는 길을 그녀는 택하게 된다.
축구장에서 땀냄새 풍기며 뛰고 있을 보르그의 아이들과
기름을 만땅 채우고 파리의 어느 거리를 운전하고 있을 브릿마리를 생각하니
행복해지는 소설이다.
프레드릭 배크만! 독특하면서도 유머스러운 캐릭터들을 통해
사람들의 내면과 인생을 그려내주는 그만의 이야기는 정말 매력 있다.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본능적이기 때문이다.
공이 길거리를 굴러오면 발로 찰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가 축구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같다.
피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