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 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
김선미.장민 지음 / 지식너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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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방법론적인 접근과 담론, 디자인의 역사와 철학을 담은 책들을 대학교 시절 즐겨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취향, 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을 펼쳤다.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던 대학시절에는 디자인을 학문적으로 접근했었고, 또한 그 심오함과 방대함이 마냥 멋스럽게 보였기에, 책에서도 교수님의 입에서도 강조되던 ‘크리에이티브’라는 단어에 집착스러운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그 시절, 그것은 마치 디자이너의 생명이자 자존심 같은 성지의 영역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리라.


『취향, 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도 디자이너들의 이런저런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사담을 인터뷰한 내용일 거라고 유추하며, 사실 큰 관점에서의 신선함이나 자극을 기대하진 않았다. 꽤나 흥미로운 제목이고, 표지 디자인부터 심상치 않게 끌리는 매력이 넘쳤던 이 책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나는 적지 않은 자극을 받고야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취향’이란 단어가 이토록이나 강력하게 사람을 매료시키는 존재였던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분명 강한 설득력이나, 임팩트 있는 한방으로 첫눈에 반해 버린 것과는 상반되는 느낌이다.

‘취향’은 은은하게 상대에게서 풍기는 좋은 향기를 닮았다. 종국엔 그 매력에 빠져 중독이 될지도 모르는 각각의 아주 유니크한 향기 말이다.

아주 평이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특별하다.


『취향, 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은 11명의 디자이너들의 ‘취향’을 인터뷰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 그대로 그들만의 ‘취향’을 그들이 소유하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물건’으로 풀어나간다. 이 물건은 단순한 사물이나 개인의 소비 경향을 넘어서 물건의 소유권을 가진 이를 아주 면밀하게 드러내 준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하나의 물건으로 상대를 다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한 사람의 물건들을 관찰해 보면 놀랍게도 그의 ‘취향’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 세상에 완전히 ‘똑같은 취향’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공통분모는 존재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르듯이 ‘취향’ 역시 제각각이다.

그리고 ‘취향’이란 것이 단순한 기호에 지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의 사유와 경험 그리고 인생 전체를 총괄하는 하나의 큰 맥이 된다는 사실은 참으로 신기하고 매력적이다.

어떤 이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함을 구현하길 원하고, 어떤 이는 조화로움을 늘 염두에 두고, 어떤 이는 사물 이전의 소재에 중심을 두기도 하며, 어떤 이는 아름다움 그 자체에 가장 큰 목적을 둔다. 그리고 어떤 이는 채우기 이전에 비워진 것에 관심을 가진다.

각각의 디자이너들의 삶의 방식이란 방대한 담론과 디자인 철학, 그리고 표현방식, 그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들이 뒤섞여 결국에는 자신만의 새로운 색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의 본질을 느꼈다.

뭔가 특별하고 멋진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늘 외쳤던 그 ‘크리에이티브’가 실은 계획해서 제조되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게 되는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한 디자이너가 자신만의 확고한 방향성과 관점을 확립해 나갈 때, 그것은 결과물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것. 그만의 ‘취향’이 묻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작위적이지 않은 진정성 있는 ‘크리에이티브’가 탄생하는 순간이지 않을까.


11명의 디자이너가 ‘취향’을 이야기 하며 소개한 물건들은 다양하다.

열쇠고리, 모자, 의자, 노트, 만년필, 도색한 애플 랩톱, 100년 전 카탈로그, 치마, 시계, 구두, 철사, 버려진 물건...

정말 천차만별 각양각색의 물건들이다.

하지만 각각의 물건들에는 그것을 선택하고 선호하는 개인적 의미와 이유가 모두 존재한다. 하나의 물건을 선택하고 사유하는데 이처럼 심오한 세계가 연결되어 있다니!

이렇게 ‘취향’은 개인의 가치 기준과 관계되고 선택과 행동으로 연결되어 사물에까지 생명력을 주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취향’은 일관성을 가지지만, 디자이너들이 성장하고 넓어질수록 ‘취향’ 역시 변화할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책을 읽고나니 정말 ‘나의 취향’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나의 물건들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물건을 선택하고 사용할 때 어떤 생각과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 처음으로 찬찬히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만의 무언가를 구축해 가는 것은 참 멋진 일이다.
더욱이 목표로 하는 것에 집중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겨나기 마련인 이 ‘취향’이란 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이제 나도 이 책 속에서 만난 디자이너들처럼 자신만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보다 명료하고 분명하게 확립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리고 ‘나만의 취향’이 더욱 나를 빛나게 해 주는 요소로 작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본문 중에서 ‘취향’에 대한 표현 중 와 닿았던 글귀를 발췌했다.


「취향은 의지를 가진 내 행동의 방향성이다.」

「취향에는 좋고 나쁨, 고급과 저급, 가벼움과 무거움 같은 평가가 무의미하다. 취향은 그저 넓고 평평할 뿐이다.」

「개성이 의식적으로 나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취향은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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