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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 - 우울증? 이건 삶이 주는 새로운 기회야!
타냐 잘코프스키 지음, 이지혜 옮김 / 여운(주) / 2014년 4월
평점 :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의 겉표지는 샛노란 색이다. 정말 우울증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책일까 의아할 정도로, 올망졸망 모여 있는 귀여운 유치원생들의 교복이 떠오르는 색감 위로 “우울증? 이건 삶이 주는 새로운 기회야!”라는 소제목이 마치 살아서 움직이며 말을 거는 것만 같다. 조금은 언밸런스하지만 그래서 묘하게 친근한 느낌이 든다.
사실 겉표지 보다 더욱 의외라고 생각했던 점은 저자가 매우 젊고 아름다운 30대 여성이라는 점이다. 과연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책을 쓰게 되었을까. 겉으로 보기엔 건강하고 밝게만 보이는 그녀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녀는 지금 현시점에서는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여러 가지 호기심들이 점점 더 커져가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울증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울증이나 심리학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을 찾아보기 마련인데, 나 또한 그러했다. 책을 통해 도움 받은 경우도 종종 있었고, 다양한 가이드들을 일상에 적용해 보기도 했다.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의 독특한 점이 있다면, 기존에 많이 접해왔던 우울증에 대한 가이드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은 직접 우울증을 겪은 여성이 우울증에 관해 본인 스스로가 겪어 왔던 여정을 여실히 담고 있다. ‘우울증’을 치료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쓴 책이 아니라 ‘우울증’을 안고 살아가는 한 개인의 관점에서 철저히 기술되었다. 자신이 깊은 ‘우울증’에 시달릴 때, 슬프고 괴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는 그녀의 표현을 보면 아마도 그녀 자신이 이런 책과 이야기를 찾았던 것이 분명하다.
『검은 파도 눈부신 태양』은 일목요연하게 구성되어 ‘우울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기보다는 한 개인의 일기 형식에 가장 근접하다. 당시에 그녀가 느끼고 절절하게 부딪히고 반응했던 스스로의 감정과 태도에 집중하여 그 응어리들을 날 것 그대로 토해내고 있다. 그녀의 감정의 기복에 따라, 정신적 상태에 따라 글도 요동을 치는 것 같다. 어떤 독자에게는 그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글은 ‘우울증’을 겪어 본 이들에게는 격한 감정의 공감을 줄 것이고, ‘우울증’을 겪어 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우울증을 겪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예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던 것이 인상적이다. 10대나 20대를 거치면서 내적인 고통을 겪을 때에 일기를 써 내려가던 스스로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인간은 우울이나 고난을 경험할 때, 자신의 감정을 글로 써 내려가면서 안정을 찾는 것 같다. 마치 신뢰할 수 있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글쓰기란 과정이 인간에겐 가장 유용하고 은밀한 배설의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녀의 ‘우울증’이 발병하기 시작했던 직장 내에서의 부당한 경험과 스트레스에 깊이 공감하기도 했다. 나 또한 비슷한 일로 깊은 우울감에 시달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많은 직장인들이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우울’을 방치하고 제대로 회복하지 못 해서 나중에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순간을 맛보기도 했다. 저자가 쓴 것처럼 상한 감정과 경험, 스트레스를 경시하지 말고 제대로 치료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별거 아니라고 치부하고 지나쳐버리면 나중에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의 감정은 참으로 섬세하고 중요하다.
현대인의 80%가 ‘우울증’을 경험하고, 한 인간이 일생에 2번 이상은 ‘우울증’의 감정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얼마나 정확한 통계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만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이 ‘우울증’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고, 개인의 문제와 더불어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하는 말이다.
더 이상 ‘우울증’을 음지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나의 우울증’ 그리고 ‘너의 우울증’에 대하여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넓고 밝은 무대로 이 문제를 끌어와서 긍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바라기는 ‘우울증’을 겪게 되더라도 건강하게 경험하고 회복되어서 우리 사회의 개인도 그리고 사회도 보다 더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지막의 옮긴이의 글을 빌려 지은이 타냐 잘코프스키가 현재 행복하게 잘 지낸다는 안부를 들을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살다 보면 우울의 순간과 감정을 경험하게 되겠지만, 이미 ‘우울의 지배’로부터 승리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이 어떤 순간에 큰 힘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