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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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죽음은 거대한 단절이다.

죽음은 거대한 분열이다.

죽음은 거대한 모욕이다.

죽음은 끔찍하고 무섭고 잔인한 변종이다.

죽음은 다른 무엇보다도 더 우리의 철천지원수다.

하지만 죽음은 아무도 건너뛰지 않는다. 온갖 전쟁과 전염병이 사망자 수를 증가시킨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죽어야 하니 말이다. (p.14~15)

 

 

우리는 현재 두려움의 절정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우리의 오늘, 하루, 그 순간이 모인 시간의 밀도 안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불안과 초조는 근심과 우울을 증폭시키고, 미래에 대한 더 큰 좌절을 낳고 있습니다. 매일의 일상에서 바이러스로 인한 위협을 느끼는 현 시점은 그 어느 때보다 이런 두려움의 현상을 극대화 시키고 있습니다. 서로가 함께 할 수 없는 이 형국은 타인에 대한 불신과 기피, 공동체의 파괴로 이어지고 있고, 철저한 고립과 외로움은 우리의 일상과 인격에 적지 않은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간이 우리의 예상보다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비단 바이러스뿐인가요. 우리가 느끼는 '위협'의 요소들은 산재해 있습니다. 갈수록 더 큰 규모와 형태로 찾아오는 자연 재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요소인 남북관계, 위태로운 경제와 물가상승, 고용불안, 취업난, 실업, 속출하는 폐업, 온갖 비리와 싸움으로 얼룩진 정치, 늘어가는 강력범죄 등 다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입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져 옵니다. 우리가 숨이 막히고 호흡이 힘든 건 비단 바이러스를 방어하려는 마스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두려움의 끝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상실, 그 두려움의 궁극적인 끝은 바로 '죽음'과 이어져 있습니다.

인간은 근원적으로 '죽음'에 대한 극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누구도 이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과 죽음의 시기가 예고 없이 불현 듯 찾아온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갑니다. 죽음을 회피하고 무시하고 부정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죽음에 가까이 가고 있는 셈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며 살아갈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했다. 물론 언젠가는 닥쳐올 죽음임을 우리도 머리로는 안다. 그런데 속으로는 그 사실을 억누르며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시편 기자는 이를 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밝힌다. 죽음이야말로 반드시 닥쳐올 현실이건만, 현대인은 죽음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없이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아간다. (p.18)

 

 

이런 생각 가운데 만난 책, 팀 켈러의 <죽음에 관하여>는 저에게 놀라운 시간을 허락해 주었습니다. (본서에도 회피와 두려움으로 죽음을 부정하는 현대인의 특성에 대하여 서두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리고 인생의 이 중대하고 두려운 명제 앞에서, 정말 믿을 수 있는 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현존하는 기독교 저자 중 가장 영향력 있으며 깊은 통찰과 지성을 겸비한 작가이자 목회자인 팀 켈러가 쓴 책이라는 점이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신뢰와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오늘 리뷰 할 책은 바로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이란 타이틀로 출판 된 3권의 시리즈 책(태어남, 결혼, 죽음) <죽음에 관하여>라는 책입니다.

 

 

삶의 중대한 변화를 맞이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변화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돕고 싶어 이 소책자 시리즈를 마련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뜻깊은 순간들을 기독교적 기초 안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시리즈의 목적이다. (p.9)

 

 

본서는 기독교 세계관과 성경의 진리에 중점에 두고 저술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처제의 장례식에서 묵상하고 나누었던 설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지만,) 특별히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상실의 아픔을 겪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서는 무신론자나 무교인 분들께도 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관하여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에 믿음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기독교가 말하고 있는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하여 간결하지만 강력하게 만나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이 책은 얇지만 기독교의 핵심 복음이 담겨져 있어 분명하고 명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나오게 하려면 자신이 무덤에 들어가시는 수밖에 없음을 아셨다. 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부활을 보장하시려면 실제로 그분이 죽으셔야만 했다. 십자가에서 그분이 하신 일이 바로 그것이다. (p.56)

 

 

저는 <죽음에 관하여>의 본문 중 특별히,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는가부분의 내용을 정독하며 읽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점점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영역이기도 하고,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상상해 보면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죽음에 대한 담대함과 믿음은 이러한 현실 앞에서 진정 소망을 줄 수 있을지 실질적인 내용이 궁금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사랑의 관계가 지속되는 인격적 미래를 내다본다. (p.62)

장차 당신은 사별했던 이들과 함께 있을 것이고, 주님과도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은 인격적 관계를 의미한다. 즉 완전한 사랑의 관계들이 영원히 지속된다. (p.60)

 

 

사랑하는 이를 다시 만나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큼 가장 확실한 위로가 어디 있을까요. 물론 이 부분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소설 같은 판타지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온전한 치유와 완전한 회복이며 영원을 담은 귀결점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상실한 이를 위로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소망과 더불어 맞이할 수 있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곳은 사랑하는 이 뿐만 아니라 주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곳이라 말합니다.

 

 

자신에게든 다른 사람에게든 하나님께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시인하라 의문을 품고 울분을 토하는 일이 영적이지 못하다라고 생각하지 말라. 예수님도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우시고 분노하셨다.

이제 사랑하는 고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언젠가는 우리도 다시 만나겠지만, 그 사실을 안다는 이유만으로 슬픔과 분노를 억누른 채 당장 무조건 행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도 그러지 않으셨다. (p.57)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철저하게 슬퍼하되 소망을 품으라는 대목이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죽음의 상실 앞에서 최선으로 슬퍼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의 끝에 소망을 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저의 정체성 중 하나인 크리스천이란 이름을 생각할 때마다 늘 답은 예수님에서 멈추게 됩니다. ‘죽음에 대하여 읽고 생각하면서도 동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라보았던 죽음’. 그리고 죽음앞에서의 그의 대응 방식, 죽음을 경험하고 부활에 이르기까지 그의 여정, 그리고 천국에 대해 직접 약속하신 대목 등은 가장 명료하고 강력한 동기부여를 주고 가이드가 됩니다.

 

 

이생의 모든 것은 우리 곁을 떠나지만 하나님의 사랑만은 예외다. 그 사랑은 우리와 함께 죽음 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통과해 우리를 그분의 품에 안기게 한다. 당신이 잃을 수 없는 것은 그것 하나뿐이다. 우리를 품어주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늘 극도로 불안할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p.34~35)

 

 

본서를 읽으며, 하나님의 본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죽음 이전에도 이후에도 하나님의 본심은 사람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 그것을 꼭 당신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죽음'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소망과 미래에 대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시 두려움과 맞서 일어서기 위해서는 이 죽음과 직면하고, 돌파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희미하고 불투명하지만 모든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부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두려움을 내어 쫓는 사랑과 소망이 가득하시길 기도하며,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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