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조심 웅진 모두의 그림책 7
윤지 지음 / 웅진주니어 / 2017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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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광색이 가득한 그림책을 받았다. 형광색의 과감함에 어울리지 않게 제목은 ‘마음 조심’

이글이글 해가 떠오르는 아침부터 달이 환히 뜨는 밤까지, 어느 소심한 이들의 하루를 보여주는 책이다.


소라게의 하루는 이렇다. 


알람 소리에 깨어 일어나고 출근을 한다. 출근길을 나서며 소라게는 말한다. 

  

"안녕, 나는 소라게야.

보통 사람보다 조금 느리고 조금 잘 놀라서

사람들은 내게 소심하다고들 해."


출근길은 복잡하고 붐빈다. 폭력적이기도 한데, 이렇게 복잡하고 붐비는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곧잘 각박해지기 때문이다. 출근길 사람들은 시간이 촉박하고 매일 반복된 피로가 쌓여 있다. 삶이 치열한 만큼 각자가 말없이 분출하는 부정적 에너지나 폭력성은 커진다. 그 속을 소라게가 지나간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노력하지만 그러다 보니 소라게는 늘 ‘실례합니다’ ‘죄송합니다’를 달고 산다. 그러고도 만원지하철에서 겨우 내린다. 

  

소심하고 성실한 소라게 씨, 엘리베이터 자리를 새치기 당하고도 사무실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러나 사무실 일과에서도 소라게 씨의 성격이 달라질 리는 없다. 상사의 고함소리가 들리면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착각한다. 고객의 목소리에도 이런 식으로 반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거칠게 전화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급기야 전화를 끊어버린다. 그리고는 놀란 마음에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는 소라게 씨. 상사가 이런 소라게 씨를 그냥 넘어갈 리 없다. 야단을 맞고 눈물까지 흘리는 소라게 씨. 


소라게 씨를 위로하는 동료도 있고 소라게 씨와 비슷한 친구들도 있다. 소라게의 소라게의 소심 동지라 할 생물체들은 책 곳곳에 등장하는데, 다들 소라게처럼 작고 우렁이, 달팽이, 게, 거북이처럼 위급하면 쏙 숨어버릴 수 있는 껍질 집을 가지고 있다. 세상일 겪으며 소심증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 또한 착각인지, 큰 소리 한 번만 나도 도로 소심한 존재로 돌아가고 만다. 

  

소심한 일상을 이해하고 나누는 친구들과 ‘마음 조심’하라며 당부하고 집에 돌아온 소라게 씨. 소심한 하루를 마쳤지만 내일 아침부터 이 일상은 다시 시작이다. 더 심한 날이 있을 것이고 덜 심한 날도 있을 것이다. 나아지겠지, 살다 보면 이런 반응에 이만큼 괴로워하지 않게 되겠지, 하면서 하루를 또 견디는 것이다. 소심한 이의 일상이자 웬만한 도시인, 직장인의 하루이다. 


앞면지. 해가 떠오르고 소심한 이의 하루도 시작된다.

뒷면지. 해가 지고 소심한 이들의 하루도 마감한다. 뒷면지까지 보고 표지를 덮고 나면, 앞표지부터 또 다시 하루가 시작되니, 책 자체가 소심한 이의 하루이자 반복되는 일상 그 자체이기도 하다.


소라게나 소라게 친구를 제외한 사람들과 세상 사물을 보면 초록색에 검은 색으로 명암을 넣었는데, 이것은 우리가 보통 선인장을 표현하는 방식과 비슷해 보인다. 일상에 지친 도시인이 가시 가득한 선인장처럼 가시 돋쳐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색과 형태는 도시인과 참 잘 어울린다. 특히 출근길. 여유 공간도 없이 주변을 온통 에워싼 낯선 사람들과 부대끼느라 신경 쓰이고, 배차 간격을 하나만 놓쳐도 늦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지고, 한 마디로 짜증이 온통 배어 손만 대어도 터질 것 같은 도시인. 지하철에 사고가 나도 사람을 걱정하기보다 출근 시간 때문에 걱정해야 하는 비정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런가 하면 커다란 경적 소리, 상사와 고객의 거친 목소리는 주황색으로 표현해서 현기증 느낄 정도로 강렬하게 전달되는데 꼭 분출하는 용암 같다. 

선인장 같은 출근길 도시인. 가시 돋혀 있기는 선인장이나 출근길 빽빽한 지하철 안의 나나 비슷하다.


소라게 씨의 모습은 나의 모든 모습과 비슷했다. 큰 경적 소리에 깜짝 놀라고 새치기 당해도 아무 말 못한다. 소라게 씨와 다르다면 나는 부글부글 속을 끓이며 새치기한 사람의 뒷통수를 노려본다는 것뿐. 고객과 전화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하다가, 전화가 끝날 무렵 전화선 너머로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여기 상담원은 좀…” 큰 목소리를 폭력으로 여기는 것도 너무 닮았다. 


지금은 아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회사 생활로 대표되는 사회생활을 얼마나 했던가. 그렇게 배운 태도, 요령으로 지금은 일을 미리 겁낼 필요도 없고 쉽게 당황하지 않고 대처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한 번 죽 읽었을 때, 나는 이 단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그 날 저녁에 지인에게 문자를 보내며 바로 소라게 얘기를 쓸 수밖에 없었다. “저 오늘 소라게처럼 마음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린 것 같아요. 저 좀 나오게 해 주세요. 불라불라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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