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곰 -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
롤라 오케르스트룀 지음, 하수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라곰. 처음 이 단어를 보았을 때 생각했다. '아, 그 단어, 참 곰살맞기도 하다.' 어감은 보드랍지만 라곰은 제법 단단한 단어였다. 부제는 ‘스웨덴식 행복의 비밀’인데 부제가 이 책의 정체를 정확히 알려 준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를 이미지 위주로, 감상을 말하는 책은 아니다.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 국민정서를 라곰의 차원에서 보고 식생활, 의생활, 주생활의 여러 방면에서 분석한 책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래서 라곰의 장점과 더불어 단점, 평균 지향이나 자칫 질투심 섞인 상태와 혼동될 수 있음도 지적해 준다. 


예쁜 책이다. 인터넷에서 볼 때는 이 정도로 예쁜 책인지 몰랐다. 


‘라곰’은 세계적 트렌드이기도 하다. 2017년 미국 보그 매거진이 뽑은 라이프 스타일 키워드이다. 휘게에 이어, 북유럽식 라이프스타일 키워드이기도 하고, 삶의 균형, 유행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편안함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휘게와도 통하는 바가 있다. 


라곰은 워라밸이나 욜로처럼 줄임말은 아니어서 그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다. 저자 말대로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다 보니 오히려 한 문장으로 정확하게 정의내리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저자는 패션, 디자인, 휴식, 식생활, 업무 방식 등 다양한 분야에서 라곰다운 게 뭔지를 설명하면서 라곰에 익숙해지도록 한다. 마치 라곰을 하나의 존재로 두고, 인격체로 두고 설명하듯 한다. 


라곰은 신조어도 아니다. 1600년대에 스웨덴의 문서에 등장했다고 하나 그 기원은 훨씬 전인 바이킹 시대부터 전해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 '라게트 옴'의 줄임말로 '팀을 둘러싼'이라는 뜻인데, 이 이야기가 라곰의 이해를 돕는다.


"바이킹들에게는 각자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공평한 몫을 갖는다는 인식이 있다. 바이킹은 약탈을 마친 후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 둘러앉아 뿔로 만든 잔에 벌꿀술 미드를 채워 이를 돌려가며 마셨다고 한다. 모두가 공평하게 한 모금씩 마시려면 한 사람이 다 마시지 않고 다음 사람을 위해 남기는 배려가 필요하다. - 

라곰이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은 딱 적당함, 즉 중용을 뜻하는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게 된 시기가 바로 이 무렵이다."


지은이는 '라곰'이란 단어에 대해 끈질기게 설명하고 예시를 든다. 


가장 간결하게 표현하면 라곰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적당함'이란 것이 얼마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것이다. 친구들이 엄마와 음식을 만들 때 흔히 들었다는 말이 있다. “엄마, 소금 얼마나 넣어?” “적당히.” 친구들이 말한다. 그게 도대체 어느 정도냐고. 숙련된 주부가 적당한 소금양을 알 듯, 또 자기 입맛에 따라 적당한 정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듯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삶의 내공이 쌓인 정도에 따라 적당함은 변하고, 그러면서 나름의 일관성을 지닌다. 


내가 느낀 라곰은, 1차원적인 상태에서 얻는 행복은 아니다. 물론 라곰이 햇볕을 받는 즐거움, 맛있는 것을 먹는 기쁨 같은 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을 더 잘 느끼고 소홀하지 않도록 돕는다. 그러니까, 행복을 진정 행복으로 느끼기 위해 지녀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에 가깝다. 우리 식으로 치면 절제, 중용에 가깝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쓸데없이 말을 늘어놓기를 지양하나 일을 하고 현상을 받아들일 때는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아니라 항상 의문을 품으라 한다.

 

라곰은 ‘적절함’을 추구한다. 라곰이 어떤 상황에서는 ‘절제, 중용’으로 대치될 수 있겠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라곰은 자칫 ‘평균’ 정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스웨덴 사회에서는 튀는 것을 혐오한다고 하니 이런 면모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절함’이 단순히 ‘평균’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함은 최적의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최’가 붙는다고 해서 자신을 소모시키면서까지 노력해야 하는 것은 또 아니다. 최적의 상태가 꼭 ‘최고’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적절함, 최적의 상태란, 과하지 않게 편안하고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내게 라곰은 이런 식이다. 쉽게 정의하기도 어렵고 말로 정의해 놓고 실천하려 하면 막막할 수 밖에 없다. ‘라곰답게 행복하자’라고 결심한다고 해도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살펴보면 나나 내 주변 사람들은 나름 균형을 맞추며 살려 하고 평온함 안에서 생기와 즐거움을 찾으려 하니 '라고머'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 다들 각자의 라곰을 실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곰이란 말을 쓰지 않았고 라곰이 추구하는 행복과 우리 사회가 무심코 행복이라 인정하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을지 모르나, 각자 살아온 만큼의 내공을 발휘하여 상황에 맞는 적절함을 발휘할 때, 안온함, 기분 좋음, 즉, 행복을 느끼는 경험은 해 보았을 것 같다.

 

패션으로 라곰을 설명한 부분은, 라곰을 오히려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설명해 주니 라곰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영국에도 라곰이라는 패션 브랜드가 있다. 이 브랜드는 라곰을 편안한 스타일이라고 해석했다. 전체적으로 편안해 보이는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이 라곰을 걸치려면 꽤나 돈을 써야 한다. 청바지와 자연스레 닳은 느낌의 베이지색 캐시미어 스웨터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간다. 너무 튀지 않는 정도가 좋다.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옷차림을 하면 결국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헝클어진 스타일은 안 된다. 편안한 세련됨을 추구한다.”

 

영국의 라곰이란 이름의 브랜드 패션 원칙이기도 하나, 라곰의 원칙이기도 하다. 이러면서도 또 하나의 조건이 붙는다. 그럼에도 원하면 입으라는 것. 힐이든, 플랫이든 원하는 것을 신고, 맞춤정장이든, 캐주얼이든 원하는 것을 입으라는 것. 어떻게 보면 다 수용할 것 같으나 까다롭고, 까다로울 것 같으나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이것은, 1차원적 행복 추구 차원은 아니다. 


어쩌면 공자나 불교에서 끊임없이 말하는 것처럼 지키되 자유로워질 것, 자유롭되 원칙을 지킬 것. 지키는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경지에 이르고, 또 자유롭게 행동해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라는, 말 안 될 것 같지만 일터에서든, 가정 생활에서든, 인간관계에서, 업무에서, 불과 얼음 사이를 오가는 자신을 내려놓고 어루만지며 어떤 식으로든 수양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라곰은 통한다.

 

그러니 경박한 행복은 아니다. 까다롭되 우아하다. 행복이 꼭 우아할 필요는 없으나 지금 이곳에서 라곰스러운 행동 방식은 권장하고 따라할 만하다. 지금 우리 사는 곳에는 너무 많지 않은가. 말도, 물건도, 불필요한 소모도, 스트레스도…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 미니멀해지는 것이 꽤 필요하다. 물론 세상이 지나치게 미니멀해지고 획일화된다면 그때 라곰은 열린 마음, 자신의 욕구를 인정하는 자연스러운 태도를 의미하는 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게 될 터이다. 라곰은 그런 말이다. 행복의 원칙을 말하지만 원칙을 강조하느라 죄책감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 쉽게 행복의 상대적이고 가지각색인 면을 짓누르지 않는. 열려 있되 풀어지지 않은, 고집은 있되 말랑한. 그래서 우아한. 

  

 그러나 복잡함을 거쳐 보지 않으면 단순함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라곰은 균형을 추구하는 문화라는 점을 잊지 말자. 서로에게 빚을 지고 갚지 않으면 그 균형을 깨는 것이다. 저울의 추를 한쪽으로 옮기는 것과 같다.
자급자족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식은 낭만적인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이 수년 동안 함께 지내며 아이를 여럿 낳아 기르면서도, 금전적으로는 독립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혼이란 마치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영원히 의지하게 된다는 선언과도 같다며 반대하는 이도 많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항상 의지하고 정서적으로 매여 있게 된다면, 어떻게 나만의 라곰을 찾을 수 있겠는가?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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