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달 자연과 만나요 - 우리 동네 자연 이야기 녹색손 자연 그림책 1
임종길 글.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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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안 잡히거나 일이 바로 잡히지 않을 때,

조금은 감상에 그냥 젖어 있고 싶을 때,

일을 잠시 미루고 내가 보았던 책의 서평을 쓰며 마음을 가다듬곤 한다.

오늘 아침도 그랬다. 무언가 센치하다.

할 일은 무지 쌓여 있음에도, 억지로 벗어나려 하는 게 참 싫어 리뷰 화면을 클릭했다.

 

나는 많은 것을 여행에서 처음 경험해 보았다. 여행은 몇 번 한 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기존의 내 경험이 적었던 거다. 다행이 해외배낭여행이라는 기회가 내게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주었고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준 셈이다. 그러면서 역으로 내가 사는 장소에서도 이야기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공기, 바람, 계절, 건축물, 풀, 길 모퉁이 의자, 같은 길에서 같은 풀꽃을 보며 즐거워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웃음과 감탄사로 살짝 공유하는 기쁨 같은 것을, 나는 여행지에서 배웠다. 계절이 변화하는 건 계절이 변화는 것일 뿐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일 뿐이다. 꽃이 피면 지면 그만인 거고. 그러나 신기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가 않은 거다. 연두색 여린 잎을 보니 봄이 오는 모습에 기대가 된다. 꽃이 피니, 향이 퍼지니, 마음이 설레인다. 비가 계속 오는 건 지겨운데, 비 오기 전의 냄새를 감지하는 건 꽤 근사하다. 내가 그동안 체득한 경험인 거 같아, 내 머리가 생각하고 결론내기 전에, 냄새와 바람의 온도가 나를 이끈다.

 

그 많은 이야기와 느낌은 멀리에서 찾는 게 아니다. 동네에서 충분히 찾을 수 있는 것, 시외로 나가지 않아도, 시골 마을을 찾아가지 않아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소꿉놀이하듯이 고개를 숙이고 바라본다. 겨울. 나무에는 작고 뾰족한 눈들이 달렸다. 생물시간이 그리 많이 배웠지만 그건 내가 실제로 볼 순간을 위한 지식이었나 보다. 교실에서 배웠던 짧은 지식이 비로소 진짜 체험이 되어 내게 온다. 봄. 노루귀가 피었단다. 처음에는 할미꽃인가 하였다. 꽃다지도 피었다. 벚꽃과 목련, 떨어진 보송보송한 꽃눈.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 이야기들.

 

큼직한 풍경 그림과 조그마한 작은 생물들을 보았다. 어떤 건 실제로 보면 나도 모르게 "으악~"하겠지. 어떤 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찍고 또 찍고 싶어하겠지. 그러다 따뜻한 볕에 등에 익는 게 좋아 꽃을 보는 척 가만 앉아 있기도 하겠지. 지나가던 꼬마가 내 옆에 앉는 작은 에피소드가 일어날 수도 있고 어떤 새가 날아가다 내 손에 든 빵을 먹겠다고 채는 일도 생기겠지.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이 이야기가 되는 동네와 자연을 보여 주고 있는 거다. 이 책은. 계절마다의 풍경, 그 계절에 주로 볼 수 있는 식물들을 보여 주는 것도 좋고, 그 아래 각 월에 대해 설명해 주니 한결 정리가 되었다. 혼자 하는 관찰이, 독자가 혼자 나설 수 있어 편하고 고즈넉한 맛은 있으나 자칫 쓸쓸할 수도 있을 텐데, 작가가 맨 마지막에 논 이야기를 넣어 주니, 제법 풍성한 마을 풍경이 연상된다. 이런 거다, 동네에서 만들어가야 하는 이야기란. 그대로 즐기고 함께 즐기는 것. 이야기에 집착하는 나를 보았다. 모든 게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서로 풍성해질 수 있는 거다.

 

진함과 여림, 강함과 담담함, 큼직함과 소소함을 생각해 본다. 누가 더 이기고 말 것은 아니지만, 진하고 강하고 큼직한 것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서로가 다 아우성치는 가운데, 담담하게 스스로 즐기는 책을 만나노라면, 나는 그 책에 마음이 가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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