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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 손가락 ㅣ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열린어린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분노의 손가락
처음에 이 책 표지랑 제목 보고 마녀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새집 같은 머리에다 손가락에서는 광선이 나오는 여자 아이를 보며 '아, 로알드 달이 마녀 이야기 썼구나.' 했지요. 읽어 보니 주인공 아이의 직업(?)은 다르지만 어쨌든 로알드 달의 이야기인 것만은 확실하더군요. ^0^
이야기는 짧아요. 무언가 화가 나는 일이 있을 때면 자기도 모르는 힘을 갖게 된다는 '나', 그 힘 때문에 이웃집 사람들은 졸지에 새가 되어 버립니다. 그레그 씨네 사람들이 재미로 사냥을 하고 그에 대해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자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요술 손가락을 휘둘러 버렸거든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을 향해서도 손가락을 휘둘러 댔으니까요. 그 선생님은 아직도 고양이로 있다네요.
그레그 씨 가족들의 몸은 작아지고 팔은 날개처럼 변했습니다. 잠시 동안은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 보이기도 했어요. 그러나 사람 같은 오리들이 그레그 씨네 집을 차지하고, 그레그 씨네 비스킷을 먹고, 심지어 그레그 씨 가족을 사냥하려고 한다면요! 그레그 씨 가족은 지금까지 사냥당한 동물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지요. 오리들에게도 이제 절대로 재미로 다른 동물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내게 닥친 두려움을 통해 다른 존재의 두려움까지 이해하게 된 순간, 그레그 씨 가족들에게 내려진 마법은 풀립니다.
그러고 보면 요술 손가락의 마법이 영원한 것은 아니었네요. 단지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고양이 선생님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먼저 자신이 내뱉었던 말 때문에 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가를 깨달아야겠네요.
'나'의 요술 손가락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따져보면 이렇습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른 존재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순간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은 힘이 넘쳐서 폭발할 것만 같아요. 내 얼굴이 빨개지고, 내 온몸이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내 손가락 끝이 무지 아프게 쑤시기 시작하며, 신비한 힘이 내 몸 속에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요술 손가락을 휘두릅니다."
요술 손가락을 쳐들게 하는 힘, 분노는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지 이야기 속의 '나'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때로 분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솟구칩니다. "무언가에 화가 나다" 그러면 우리는 흔히 폭력적인 장면을 연결시키지요. 소리를 지른다거나, 무언가를 던진다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꿍하니 있지만 무척 거북스러워 보이는 표정 같은 거요. 로알드 달이 보여 주는 분노의 표출법도 많이 다르지 않아요. 내 안의 분노를 분출해서 상대방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버리다니요. 그런데요, 분노가 '제멋대로' 발산되는 이야기에서 '건강한' 감정을 맛보게 됩니다. 분노는 파괴적인 감정이 아니라 정의로운 행동과 올바른 결과를 끌어내는 강력한 에너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분노 에너지를 모으면 정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겠지요? 어린이들이 부당한 일을 맞닥뜨렸을 때, 정의롭게 반응하고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것을 수용해 줄 수 있는 어른들이 많기를. 오리나 고양이가 되는 어른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