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 - 201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선정도서
윤성근 지음 / 산지니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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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샀다고 도장이 찍힌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이제야 다 읽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책 내용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재미있게도 이 책, 동네 헌책방에서 이반 일리치를 읽다이 떠올랐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이탈로 칼비노는 도시의 번영과 몰락, 도시 전면의 화려함과 그 뒤에 허다한 누추함을 단편으로 나열한다. 이야기 속 도시는 어디에도 없으나, 또한 모든 곳에 있는 온갖 도시의 묘사이자 비유이다. 사람과 도시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유토피아를 꿈꾸나 디스토피아도 배제하지 못한다. 칸이 디스토피아 격인 도시들을 보며 최후의 상륙지가 지옥의 도시일 수밖에 없다면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지.”라고 말한다이에 칼비노는 폴로의 입을 통해 말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살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전자일까, 후자일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전자일 것이다. 딱히 돈, 계급, 물건에 좌우되는 삶을 추구하지 않는 듯 보이나 실은 그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부합하는 삶을 살지 못할 뿐 결국은 그 삶이 내게 안정감을 주지 않을까, 라며 현재를 서글퍼하고 저 삶을 선망하니.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그 주인장. 그는 후자이다. 이 도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세상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나 글쓴이는 자신이 나아갈 길은 신기할 정도로 잘 찾아낸다. 자기 속도대로 살며 길을 만들고 찾아내는 점도 대단하지만 다른 이의 미세한 신호를 따라 자신과 다른 이들 사이에 길을 잇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놀라웠다. 그의 방식은 그가 살면서 하나하나 깨닫고 책에서 읽은 것을 체득하고 실험한 결과이며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감수성 넘치는 에세이도 아니다. 실은 위로한답시고 목소리 차분히 내리고서는, 세상 기준이나 속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최고라고 말하는 책이 아니라 더 마음에 든다.

 

저자는 자기 사는 얘기를 성실하게 한다. 경쟁이 극심한 대도시, 어쩌면 이 대도시의 속성이 칸과 폴로의 대화에 나오는 지옥이리라. 헌책방 주인장은 이곳에서 이반 일리치에게 배운 것들을 실험하고 싶단다. 칼비노의 소설 구절에서 헌책방 주인장이 생각난 이유이다. 그는 이 지옥을 떠나지 않고 지옥에서 지옥 아닌 것을 찾고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에서 그것을 펼쳐놓고 있다.

 

그를 자기 삶의 실험자라 하고 싶지만 이런 명칭을 붙이는 것조차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금세 들었다. 그는 살고 있다. 자기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야기해 준다. 한 사람이 사는 이야기일 뿐인데도 그 이야기가 값지게 들리는 이유는, 우리는, 아주 많은 우리는, 자기 삶인 듯하지만 세상의 암묵적 기준에 휘둘리는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욕구인지 세뇌된 욕구인지도 모를 정도로 성심껏 하고 있다

어떤 계기에서든 배제할 것을 배제하고 자기 생활을 꾸려가는 그를 응원한다. 게다가 도시에서. 그의 생활이 또 어찌 변화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식이든 기대가 된다.

 

이상한나라의헌책방 인스타 계정을 보다가 은평구 존 레논이라고 쓴 멘트를 보고 푸핫, 뿜은 적이 있다. 책표지 캐릭터도 주인장을 더 닮게 했다면 어땠을까, 더 생동감 있고 위트 있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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