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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처 ㅣ 청목 스테디북스 43
현진건 지음 / 청목(청목사) / 2001년 1월
평점 :
절판
현진건의 단편소설 『빈처』는 가난하지만 서로를 위하며 살아가는 부부와 부유하지만 불행한 처형부부의 삶을 대조하며 물질적인 것 이상의 정신적 가치를 보여준다.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어 ‘나’의 심리묘사를 세밀하게 그린다. ‘나’는 물질을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을 지켜 나가고 있는 인물이다. 비어가는 살림과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주변인들 사이에서의 상황과 괴로운 심리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소설을 따라 읽으면 신념을 지키고 사는 주인공이 안타깝지만 가장 시선이 가는 것은 그의 아내이다. 이 소설의 제목이 ‘빈처’인 것에서도 느껴지지만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꼭짓점은 아내이다. 신념을 지키는 ‘나’보다도 더 대단해 보이고, 더 마음이 가고, 소설의 중심에 위치한 것처럼 보이는 인물도 아내이다. ‘나’는 기울어가는 살림을 잇기 위해 친정에 손 벌리는 아내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면서도 전혀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상을 찾기 위해 현실은 오로지 아내에게 맡긴 채 외면하고 도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고달픈 현실과의 투쟁은 오로지 아내 혼자 힘써야 한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소설 속 다른 사람들의 평가처럼 ‘나’는 현실적인 면에서는 패배자나 마찬가지이다.
‘나’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인간적인 고민도 아내의 모습에서는 찾을 수 있었다. 예술가의 아내를 지향하면서도 물질 앞에서는 부러워하고 원하기도 한다. 그래도 결국 현실에서 버티며 ‘나’의 정신적인 안식처가 되어주는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내’가 현실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내의 무한한 사랑 덕분이다. 이렇게 물질적인 점에서는 부족하지만 부부는 서로를 신뢰하고 의지한다. 그래서 힘들지만 불행하지 않다. 정신적 가치가 주는 행복은 마지막 장면에서 가슴 따듯하게 나타나지만 이거야말로 정말 힘들고 소설 같은 일이 아닐까. 내일 먹을 아침거리도 없고 전당포에 맡길 옷도 더 이상 없는 처지인데 6년째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니. 자꾸만 진심으로 믿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믿지 않으면 버틸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믿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아내를 의심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