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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이다
김선우 지음 / 실천문학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춤이다.
나는 책을 먼저 읽기 전에는 그 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읽고 책장을 넘기는 것이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시집이라면 그 작가의 시대상황이나 작가의 이념 등 을 알아봐야 하고 소설이라면 그 장르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는 찾아보고 일고 책을 들어야 할 것이다.
맨 처음 “나는 춤이다”라는 책을 받았을 때, 이미 책의 정보는 읽어 놓은 상태라 무용가 최승희 씨의 일생을 담은 책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무용가 최승희씨의 이름은 나의 세대에는 어색한 이름 이었다. 친일파의 한 사람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었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나는 춤이다”라는 책 내용자체가 그녀의 일생을 다루기 때문에 굿이 그녀의 일생에 대해 알아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녀의 일생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알아보고 자 했다. 그것이 이 책의 작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최승희
북한의 무용가.
활동분야 : 예술
출생지 : 서울
주요저서 : 《조선민족무용 기본》 《조선아동무용극 기본》
최승희 그녀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숙명여학교를 졸업하였다. 1926년 오빠 최승일(崔承一)을 따라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서 열린 현대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 무용발표회를 구경한 것을 계기로 그의 연구생이 되어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바쿠 무용단의 경성공연에 출연하여 유명해졌으며, 1929년 이시이와 결별하고 서울에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차렸다. 그 후 한성준(韓成俊)에게 고전무용을 배움으로써 창작무용의 뿌리를 조선 춤에 두게 되었다. 1940년 미국을 비롯한 남아메리카대륙까지 진출, 세계적 무용가가 되었다. 1942년 일제의 강요로 '전선위문공연'을 떠나 조선·만주·중국에서 130여 회에 달하는 공연을 가졌으며, 1944년 도쿄[東京]로 돌아와 24회의 연속 독무공연을 함으로써 세계 최초의 장기독무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 광복 후 위문공연을 하였다는 이유로 친일 무용가라는 비판을 받고, 남편 안막을 따라 월북하였다. 그녀가 친일파로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위문공연을 한 것 때문이다.
1946년 평양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설립, 조선춤을 체계화하고 무용극 창작에 힘썼다. 전쟁 중인 1950년 말에는 베이징[北京] 중앙희극원에서 무용반을 설립하여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1955년 인민배우가 되었으나, 1958년 그녀의 남편인 안막이 숙청당하자 연구소도 국립무용연구소로 바뀌었다. 그 후 그녀는 1967년 숙청당하였다.
1930년부터 1945년까지 우니나라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진정한 춤꾼이었다. 당시 그녀의 인기는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까지 이론을 떨친 대 스타였다.
(by춤 이야기/ 정청자 著. - 춘천: 강원대학교 출판부, 1997. 36~38p.발췌)
“무대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나는 말야, 무대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대를 사랑했고, 무용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에게 세상은 냉담하기만 했다. 일제 강점의 아래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그녀는 일본에서 조선이라는 작은 반도에서 온 무용수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무시의 시선을 견디며, 이시이 무용연구소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나타낸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그녀는 이시이연구소의 마돈나의 자리에 오르지만, 그녀는 그 좋은 것들을 버리고 배신자라는 소리를 들으며, 이시이연구소를 떠나 조선으로 오게 된다.
조선으로 건너와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차리게 되지만, 개성에서의 무용에 대한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기생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는 시선으로 최승희 무용연구소는 점차 위기를 맞게 되고, 그녀의 자존심을 조금 버리고 후원을 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들어가기 전 그녀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려하지만, 다시 들어가 통쾌하게 복수를 하고 나온다. 이 에피소드가 그녀 최승희를 단편적으로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싶다. 자존심이 세고, 곧은 대나무 같은 최승희는 바로 그런 여자이다.
그런일을 격고 돌아와 최승희는 이런 말을 한다. “조선에서 예술하는 여자들······,가슴에 칼이······, 많아야 해요” 이것이 그녀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대의 상황일 것이다. 그런 시대 상황에서 자신의 전부인 춤을 창조하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높여줄 남편인 안막과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안막역시 일본인들에게 잡혀가 고문을 받게 되고 그녀의 언덕같은 그녀를 올려줄 존재로 믿었던 그이지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자존심을 한번더 굽혀 이시이에게 돌아가게 된다. 다시 돌아가게 된 그녀는 다시 마돈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지만, 이시이는 그녀에게 독립할 것을 명령하게 되고, 그녀는 다시 독립을 하게 된다.
그 후, 그녀의 남편인 안과 함께 예술로 조선을 식민지로부터 해방 될 수 있게 노력하지만, 일본의 압력에 위문공연을 다니게 된다. 그렇게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자신과 계속적으로 인연이 깊은 예월의 아들을 만나 그녀의 마지막을 지켜보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보면 춤추는 이 몸이 제 조국이에요 라고 말하는 그녀를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녀 최승희는 친일도 그 무엇도 아닌 단지 자신의 조국을 위해 헌신하였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책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