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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힐 ㅣ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평점 :
<샌드힐> 가제본 서평단으로 가제본을 받고 작성합니다.
소설은 '나는 마지막 카드로 교문 앞에 납작 엎드렸다. 들어갈 수 없다. 열일곱 살인 내가 교문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모든 걸 각오했다는 뜻이다.'(가제본 p.5)로 시작한다.
열 일곱살이면 한 참 아이들의 시선을 신경쓸 나이인데, 그것을 무릅쓰고 있다는 것은 엄청 학교 가기 싫은 가부다. 아빠의 힘에 의해서 학교 안으로 들어왔고 흐트러진 걸음으로 천천히 교실로 들어와 교실 의자에 앉았다.
'자리에 앉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교실에서 아이들이 얼굴을 흘낏거'리며 본다. '곧 캐나다로 떠난다는 마이클, 아빠가 공안이라는 장, 미친 류웨이, 비슷하게 생긴 양리와 왕웨이..'(가제본 p.6)
여기는 중국의 한 사립학교이다. 주인공 지훈이는 왜 중국까지 왔을까? 왜 학교에 들어가기 싫어할까?
지훈이는 주머니에서 찰흙을 꺼내서 동그란 모양으로 머리통을 만든다. '오늘은 누굴 빛을까'하면서 교실 안의 아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는 지훈이. 지훈이가 조각칼로 덩어리 흙을 조각하자 '흙 속에서 점점 표정이 드러난다. 몸속에 피가 조금씩 도는 느낌이다.'(가제본 p.6) 손 끝에서 느껴지는 흙,손의 움직으로 생겨나는 얼굴 표정을 보면서 지훈이는 마음을 다독인다.
조각하고 있던 지훈이는 자신을 보고 히죽거리면서 웃는 아이를 본다. 지훈이는조각칼로 조각하던 얼굴에 상처를 냈다. 상처난 흙얼굴을 보니 '마음이 조금 후련하다.'(가제본 p.7) 지훈이는 이정도밖에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지훈이를 골대로 착각했다면서 축구공으로 맞쳐도 피하지도 못한다. 온 몸에 축구공을 맞고 바닥에 엎드리면 '산 채로 흙구덩이에 파묻히는 느낌'(가제본 p.10)만 있을뿐이다. 체육 선생님도 보건 선생님도 '네 착각이겠지'라고 하면서 불어오는 모래 바람에 눈을 가린다.
중국에서 지훈이는 아빠랑 단 둘이 지내고 있다. 한국에는엄마와 의식없이 누워있는 형이 있다. 2년전 그 날에도 엄마아빠는 심하게 싸우셨다. 부모님께서 싸우시면 형은 '전쟁이다'라고 말한 뒤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날은 형이 새로 찾은 아지트를 보여줬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자 동굴 같은 공간이 있었다. 조각칼로 만든 토끼,새, 코끼리, 사람을 조각이 있다. 형은 손때묻은 조각칼을 지훈이에게 줬다. 마음이 심란할 때 조각하면 좋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왔다. '시커먼 하늘이 우리가 움직이는 데마다 따라다니며 비를 거세게 퍼부었다.'(가제본 p.28) 형은 파란 신호등 앞에서 지훈이를 기달렸다. 내가 횡단보도에 가까이 오자 형은 자전거를 굴렸다. 점멸 신호등이 깜빡거리고 모래 실은 커다란 덤프트럭이 나타나 형의 자전거를 삼켰다. 형이 의식없이 누워있는지 이 년째 되는 해에 부모님은 이혼을 했고, 아빠는 중국 발령을 받아 나를 데리고 중국에 왔다. 그동안 '나의 의사를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가제본 p.32)
같은 아파트 4층에 사는 라희가 조용히 불렀다. 라희는 (어울리고 싶은) 선배들이 다 갖고 있는 지갑을 사야한다면서 백만 원을 빌려주라고 한다. 지훈이가 없다고 하자, 길바닥에 침을 뱉었는데, '미처 떨어지지 못한 침이 실처럼 길게 늘어져 라희의 치마에 엉겨 붙었다.'(가제본 p.41) 라희는 그 선배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애를 쓰지만 미처 떨어지지 못한 침 같은 존재로 엉겨 붙어 있다. 안타까운데 그것만이 라희가 이곳에서 살아 남는 방법이다. 지훈이가 흙을 조각하듯이.
낯선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열일곱 살 아이들 이야기다. 가제본은 83쪽까지 있다. 양은 적은데, 읽다가 멈추길 여러번 했다. 아직 낫지 않은 상처가 바닷물에 닿는 느낌도 받았고, 갑자기 훅 모래바람에 날려온 작은 모래가 눈에 들어간 것 같다. 눈을 비비면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 비볐다. 비비던 손을 다른 손으로 붙잡고 멈추었다. 손을 떼고 가만히 있었다. 눈물이 났다.
지훈이 아빠는 '얼어붙은 토지'(가제본 p.10)처럼 단단해지라고 윽박지르고 다그친다. 지훈이는 책상 밑에 흙을 숨기고 만지면서 마음속의 응얼이를 잠재우다가 휘발유를 붓고 성냥불을 그어 던진다. 글로벌 아이로 키우고자 필리핀, 중국으로 라희를 데리고 다니는 라희 엄마는 지금 라희가 무리에 끼고 싶어서 바둥거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라희는 옥상에서 떨어졌다. 책을 덮고 눈을 감자 내 눈꺼풀 아래 있던 모래알들이 움직였다.
흙덩어리를 만지고 조각하는 지훈이를 보면서 지훈이는 혼자가 아님을, 자신만의 회복의 과정을 가고 있음을 느꼈다. 힘이 센 무리에 끼어서 살고자 하는 라희를 보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 다른 삶의 방식을 봤다. 읽기 힘들다고 그냥 덮었다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라진 마른 땅 밑에 깊숙 있는 나무뿌리를 보았다. 나무뿌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서로 돕는다. 고립과 상처 속에서도 혼자가 아님, 누군가 조용한 연대가 삶을 버티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청소년과 학부모가 읽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