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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를 믿는가
제람바즈 / 예영커뮤니케이션 / 1994년 8월
평점 :
나는 왜 기독교를 믿는가? 가끔씩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기독교인이 된 것은 기독교가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문제에 답해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약 기독교를 단순한 종교의 하나로 생각했다면 난 종교인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종교가 아닌 인생의 풀리지 않는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 진리라고 믿었기에 나는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그런데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과연 진리로서 기독교를 받아들인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참다운 기독교인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원점으로 돌아가 기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결국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의미 없는 존재인 것일까. 지금 내가 기독교를 선택하지 않기로 한다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절대적인 가치 기준이 없는 상대주의 가치관 속에서, 삶에 대한 무상함, 우주의 공허함, 내 속에 있는 소외감, 그리고 절망. 이런 것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분명히….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가파른 언덕으로 힘겹게 돌을 올리듯 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찾아 헤맬 것이 분명하다. 헤밍웨이의 작품을 보고 그가 자신이 쓴 글처럼 일관된 삶, 생각과 행동이 일치되는 논리성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인간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위해 비참한 인생을 자살로 마감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생의 의미를 찾던 그는 비굴하게 사느니 장엄하게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작품 속에서 말했었으니까.
이 책을 보고 나는 기독교인으로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다. 세상과 분리되어 아주 기독교적인 용어를 쓰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싶지는 않다. 기독교를 단순히 개인적인 사항에만 연결시킨다면, 과연 기독교가 어떻게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 고통, 진보, 인생의 의미와 관련이 있는지 답해줄 수 없을 것이다.
또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진리’가 아니라 ‘가나안 신화 속에 나오는 하나님’으로서의 기독교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 죽은 이후의 삶에 대해 믿지 않으면서, 단순히 현재의 삶에 대한 위안으로 신앙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결국 신약에 대한 기반을 잃어버린 기독교는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내 삶의 전 영역 속에서 참다운 믿음, 인생에 대한 뚜렷한 목적으로 성경이 실제로 인생에 대해 답하고 있는 부분을 보여주면서 살아야 하기에. 저자의 진솔한 대화가 하나님이 누구인지,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인간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성경, 그리고 그런 성경을 믿는 사람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보다 진지하도록 나를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