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 컨설팅북 - 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위한 여행 미션.1인 코스 & 맛집 올가이드
이주영 지음 / 길벗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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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여행의 좋은 점은 여정의 자유로움에 있지 싶다. 여행 일정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으니, 아침에 피곤하면 좀 더 쉬고 좋은 곳이 있으면 조금 더 있고, 먹고 싶을 때 먹고 쉬고 싶을 때 쉬면된다. 내가 홀로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즉흥성' 때문이다. 계획한 여정의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 그런 취향이 동행인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인터넷 카페 가운데 '나여추(나홀로 여행가기, 나만의 추억 만들기)'란 여행 카페가 다 있다. 이 책 <나 홀로 여행 컨설팅북>은 이 여행 카페의 운영자가 경험했던 여행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여행 카페에서 인기가 많았던 나홀로 여행지 30곳을 여행 코스와 함께 소개한다. 나홀로 여행이라 왠지 멀고 외진 오지마을이 나올 것 같지만 의외로 가평, 여주, 담양, 속초, 부산 같은 핫한 곳들이라 부담없이 가볍게 혼자 떠날 수 있겠다.

여행 가이드북 이상의 컨설팅북


혼자 여행을 처음 시작하기 좋은 지역 Best 5, 태생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당신을 위한 여행지 Best 3,  '멍......' 때리고 싶어요! Best 3,  쉬엄쉬엄 여행하고 싶어요 Best 3 
... <책 목차 가운데>

회사원인 저자는 일상 속에 틈틈이 나홀로 여행했던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혼자서 여행하기 좋은 국내 여행지를 특별하고 개성 있게 소개해 재밌다. '차분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 '기대와 설렘 사이' 등이 그것. 혼자 여행이 처음이라면 소박하지만 아늑한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군산을, 혼자만의 멍 타임을 즐기고 싶은 여행자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창녕을, 여행은 먹방이라고 믿는 이에겐 시장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속초를 추천한다.

여행지별로 궁금한 사항을 속 시원히 풀어주는 Q&A 코너는 컨설팅북이라는 제목에 잘 어울린다. 홀로 여행을 시작하는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많은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게 다른 여행 정보 책과 달랐다. 이외에도 여행자의 측면에서 혼자 여행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를 쉽게 알려준다. 여행지마다 놀이지도를 통해 나 홀로 여행자를 위한 여행코스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처음 가보는 여행지에서 헤맬 일 없도록 코스별 이동방법과 소요시간까지 명시했다.

 혼자 여행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  혼자 여행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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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혼자 식당에서 밥 먹기)에 이어 혼술(혼자 술 마시기)까지 혼자 놀기는 요즘 트렌드다. 그중 백미는 혼자 여행하기가 아닐까 싶다. 내가 처음 혼자 여행한 건 2008년 봄이다. 9년 전 일을 기억하는 건 당시 우리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쳤던 미국발 금융위기와 관련이 있어서다. 증권사 직원으로 잘 나갔던 고등학교 시절 친구가 금융위기가 터지자 회사를 그만두고 살던 서울 집을 정리하고 경남 하동으로 떠났다.

털털거리는 구식 트랙터를 타고 작은 오해로 오랫동안 소원했던 형을 만나러 가는 어느 영화를 보고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어져 운명처럼 나홀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영화속 인물처럼 트랙터는 아니지만 대신 평소 즐겨 탔던 자전거를 대동하고 갔다. 기차를 타고 섬진강변에 내려 하동을 향해 달려가는 한나절이었지만 동행 없이 하는 홀로여행은 마치 묵언수행을 하는 것 같았다.

외롭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혼자서 생각 혹은 멍하게 상념에 빠질 시간도 가졌다. 그 친구에 대해 또 나에 대해...이때의 경험이 특별하게 다가왔던 걸까. 이후 시간이 날 적마다 나 홀로 여행을 떠나곤 했고, 소설가 한강이 책속에서 표현했던 외로움에 대한 얘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외로움이 좋았다. 외로움은 내 집이었고 옷이었고 밥이었다. 어떤 종류의 영혼은 외로움이 완성시켜준 것이어서, 그것이 빠져나가면 한꺼번에 허물어지고 만다. 

혼밥이나 혼술과 달리 혼여(혼자 여행하기)는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 쉬이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고민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되어줄 것이다.  


- 글 : 써니21 




 

홀로 여행을 시작하는 독자들이 가지고 있을 법한 많은 질문에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게 다른 여행 정보 책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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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일출도 보고 마음도 새롭게 할 겸 기차를 타고 강원도 정동진에 갔다. 5시간이 넘게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이 책 <노는 만큼 성공한다> 덕분에 덜 지겨웠다. 대통령·장관·고위 공무원 등 한국사회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목도하면서 '성공'이라는 말에 큰 회의를 느끼게 되는 요즘. 놀면 놀수록 성공한다니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렇게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노는 이야기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할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2011년(개정판) 저자는 '경제도 나쁜데 웬 노는 타령이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단다. 더욱 놀라운 건, 2005년 초판이 출간됐을 때도 같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단다. 이쯤 되면 '경제도 어려운데...'는 실은 한국사회의 일중독증을 보여주는 것이지 싶다.

저자는 이렇게 단언한다. 경제가 어려운데 노는 이야기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의 걱정을 따라 하다가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논다는 건 나태나 무위도식한다는 말은 아니다. 놀다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놀이나 재미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지내다'는 뜻이다.

잘 노는 게 잘 사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발전을 위해서는 창조력이 필요한데, 창조는 재미에서 온다는 것이다. 근면 성실은 우리가 세계 최고다. 근데 재미가 없으니까 더 이상 발전이 없다. - 본문 가운데

저자는 우리나라의 진짜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삶의 재미가 없는 집단 심리학적 질병, 즉 '놀면 불안해지는 병'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근본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내하며 견디는 방식으로 21세기를 잘 살아 나갈 수 없단다.

구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업무시간의 20%를 딴짓하기' 프로그램은 왜 구글이 21세기를 선도하고 있는지 알게 해준다. '심리학적으로 창의성과 재미는 동의어', '놀아야 창의성이 생긴다'는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열심히'만 하는 조직의 미래는 모방과 따라쟁이(copycat)라는 거다. 박근혜 정권에서 주창한 '창조경제'가 실패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인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1, 2위를 다툴 정도로 길다.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 지금 생각하면 참 이상한 얘기가 통용되곤 했다.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다.' 열심히 일을 한 후 퇴근해 직장 동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그 시간도 업무라고 생각하라니...떠올려보면 어릴 적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못 이루게 했던 소풍날도 마찬가지였다. 소풍 전날 담임 선생님은 말했다. "소풍은 수업의 연장이다."

잘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한 우리는 그래서 '노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다. 오히려 '놀다'라는 단어에 부정적 이미지마저 덧씌워 놓았다. 대표적인 표현에 '놀고 있네!'가 있다. 그래서일까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져도 어떻게 해야 즐겁게 잘 놀 수 있을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기껏해야 술자리, 인터넷 게임이나 노래방이다. 15년 동안 오로지 골프에만 열중해 최고의 골프여왕으로 등극한 박세리 선수가 부진에 빠진 후 아버지에게 항의했다는 말은 한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골프에 지쳤다. 이제 골프에서 잠시 빠져 나오고 싶다. 나는 골프 말고 다른 일상생활을 즐기고 싶다. 다른 건 다 가르쳐놓고 왜 쉬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즐겁지 않으면 성공이 아니다 

 강변에서 만난 자전거 덕후. 자신만의 자전거를 만드는게 취미다.
▲  강변에서 만난 자전거 덕후. 자신만의 자전거를 만드는게 취미다.
ⓒ 김종성



재미로 자아를 확인하라...나이가 들수록 내 존재는 나의 지난 직함이 아니라, 내가 즐기는 취미를 통해 확인된다. 이런 사람들은 가족이 다 떠난 후 '빈둥지 증후군'을 느끼거나 다 늙어 '바다를 찾겠다'고 떠나는 한심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 본문 가운데 

지금 삶이 자신을 속이는 것을 알면서도 참고 인내해서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지고 재미있게 살 수 있으리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는 저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혹시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할 거야!'는 얘기일까 싶었는데 속단이었다.

행복과 재미는 참고 기다려서 얻어지는 어마어마한 어떤 것이 아니다. 행복과 재미는 일상에서 얻어지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저자는 그렇게 '사소한' 재미를 특히 강조한다. 나 또한 자전거를 즐겨 타면서 느꼈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구체적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조언은 행복으로 가는 작지만 확실한 방법이다.

마니아나 '오타쿠(혹은 덕후)'가 아니어도 좋다. '난 자전거 라이딩에 미쳤어', '난 슈베르트 음악에 빠졌어', '난 낚시광이야', '등산만 하면 신이 나' 이런 것들이 있어야 삶을 기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단다. 책속에 소개된 '성공했지만 불행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가운데에도 '사소한 일에 절대 감동하지 않는다'가 꼽힌다.

노는 것을 개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 점도 색달랐다. 놀랍게도 몇몇 나라에선 국민들의 여가와 놀이를 위한 부처가 다 있었다. 


- 글, 사진 : 김종성 (써니21)





경제가 어려운데 노는 이야기나 한다고 혀를 차는 이들의 걱정을 따라 하다가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우리나라 경제가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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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자전거길 50 - 죽기 전에 꼭 달려봐야 할
이준휘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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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있다는 희열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때가 왔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름휴가 때 떠나는 자전거 여행. 도시에서 늘 피해 다니던 햇볕과 열기를 온몸으로 받고, 자동차와 우산이 막아주던 장대비에 흠뻑 젖기도 한다. 부러 떠나는 고행 길처럼 보이지만, 어디서 샘 솟는지 알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혹시 천국을 믿지 않거나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여름날 자전거 라이딩 후 샤워를 해보길. 자전거 여행의 큰 미덕은 행복, 희열, 천국을 아주 간단하고 길게 느끼게 해주는 데 있다. 자전거는 심지어 익숙한 곳이 낯선 곳으로 변하는 매력까지 품고 있다. 하다못해 자동차들이 지나는 차도 위를 페달을 밟아 자전거로 달리면 전혀 다른 길이 된다.   

오는 여름휴가 때 떠날 자전거 여행길을 찾다가 그 스스로도 여행을 즐기는 능숙한 여행 가이드 같은 책을 발견했다. <죽기 전에 꼭 달려봐야 할 아름다운 자전거길 50>, 올 6월 1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라 새로운 자전거 여행지가 많이 소개돼 좋았다. 

<자전거여행 바이블>과 <우리나라 자연휴양림 바이블>을 썼던 저자가 엄선한, 보기만 해도 설레고 다리에 불끈 힘이 솟는 자전거 여행길 50곳이 나온다. 사랑과 여행의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설렘이 아닐까 싶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에서 시작된다. 설렘이 없다면 우리는 떠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퇴근삼아 자전거를 타면서 용기를 내 떠났던 첫 자전거여행지는 섬진강이었다. 섬진강가 마을 하동으로 이사 간 친구를 만나러 떠났는데, 실은 우연히 사진으로 본 섬진강변 풍경이 날 이끌었다. 10년 전의 일이지만 그때의 자전거여행은 지금까지도 잊혀 지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강변에서 바라봤던 흐드러진 강물의 모습과 고목 느티나무 아래 정자가 있는 강변 마을 풍경은 어제일 마냥 선명하게 떠오른다. 
 
보기 드문 자전거 여행길이 많은 가이드북  

- 자전거 여행때 지참하면 좋을 가이드북 


경치가 좋고 비경을 간직한 산, 들, 바다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관리·보호받고 있다. 그곳에도 자전거로 돌아보고 싶은 아름다운 탐방로가 많이 있지만 대부분의 국립공원 탐방로에는 자전거가 들어갈 수 없다. 아무래도 관광객에게 피해를 준다는 인식 때문인지 이제껏 그래왔다. 그러나 덕유산국립공원만큼은 예외다. - 본문 가운데 

자전거로 달릴 수 있는 물길·산길·도심길이 나오는데, 저자가 보석같이 아껴뒀던 코스들 중에서도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코스들 이란다. 한 번 가보고 나서 다시 생각나지 않는 코스가 아니라, 동해안 해안 길 같이 세월이 흐르고 계절이 변해도 언제든 다시 달려보고 싶은 여정의 길이다.  

이 책은 자전거 애호가들이 이미 많이 다녀온 길은 담지 않았다. 낙동강자전거길, 금강자전거길, 영산강자전거길 등 4대강 국토종주 자전거 길도 없고, 자전거 여행의 필수코스 제주도 해안 길과 섬진강변길, 북한강변길도 뺐다. 대신 최근에 생겨나 자전거 라이더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동해안 해안 길(영덕~울진, 삼척~속초~고성)과 1,004개나 되는 섬이 있다는 전남 신안군의 섬(도초도, 비금도, 증도 등) 길이 호기심을 끌었다. 이번 여름휴가 때 가고픈 곳이 생겼다. 

저자의 자전거 여행은 해 떨어지기 전에 목적지까지 도착해야 하는 종주여행보단 그곳에 숨겨진 볼거리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여행에 가깝다. 코스마다 지도·교통편·보급(맛집) 등이 상세하게 나오고, 특히 우리나라 지형 상 웬만한 코스엔 꼭 있는 업힐(언덕길)이 수치까지 잘 나와 있는 고도표가 유용하다.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함백산 길, '치유의 숲'이란 별칭이 붙은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길을 달리는 장성 축령산 순환길, 바람과 함께 하늘 억새길을 달리는 간월재 순환코스 등 보기 드문 길이 많다. 특히 자전거로는 금단의 땅인 국립공원 중 유일하게 자전거 탐방로를 운영하는 덕유산 국립공원 정보는 특별했다. 더구나 도미토리 형태의 숙박시설 바이크텔(1인 11,000원)까지 갖추고 있다니 도저히 안 가볼 수가 없겠다. 

좋은 가이드북도 챙겼겠다, 이제 신나게 자전거 여행을 떠나는 일만 남았다. 그저 자전거에 몸을 싣고, 바람에 나를 맡긴 채 페달을 구르고 또 굴려보는 거다. 

- 글.사진 : 김종성 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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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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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밀란 쿤데라(1929~)는 체코의 대표 작가로, 첫 소설 <농담(1967)>을 발표한 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련군이 체코를 점령한 뒤 시민권을 박탈당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고전하면서 읽는 게 대가의 고전작품이라고 한다. 나 또한 끝까지 읽은 고전작품이 거의 없는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10년 넘게 독서 중), 이 소설은 제목에서처럼 조크외에도 삶의 페이소스· 재밌고 웃픈 반전· 이념이나 사상의 아이러니 등이 버무러져 있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해방 후 70년이 넘게 소모적이고 기만적인 이념대립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떠오르는 장면도 많다. 

20세기 중엽 체코 공산혁명 후,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던 청년 루드빅은 좋아하는 여학생이 연애는 안하고 스탈린의 공산주의사상에 너무 빠져 공산당 연수를 떠나자, 삐친 나머지 스탈린 주의를 농담조로 가볍게 조롱하는 엽서를 그녀에게 보낸다. 이 일로 루드빅은 위대한 사회주의를 모독한 혐의로, 동지라 생각했던 친구들에 의해 당에서 쫓겨나고 군에 징집 당하면서 인생이 꼬이게 된다. 

이는 마치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가수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가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냐...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가 '근로 의욕 저하'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웃지못할 우리 현대사의 희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로 만들어졌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


광산에서 강제 노역, 탈영 시도 등 온갖 고생을 하다 15년이 지난 후, 루드빅은 농담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자신을 파멸시킨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 이유는 바로 처절한 복수를 위해서다. 그가 결행했던 복수극 가운데 가장 잊기힘든 일은, 친구이자 결정적 배신자였던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부인 헬레나를 유혹했던 것. 사랑을 가장한 섹스 복수극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 비장하고 우스꽝스런 복수극은 삶이 그렇듯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헬레나와의 정사 과정에서 배신자 친구를 떠올리며 그녀의 뺨을 수차례 때리는데, 난생 처음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짜릿한 애무로 받아들여 형언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게 되는 헬레나. 루드빅과의 운명적 사랑을 더욱 확고히 오해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복수극 가운데 압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농담>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반공
 고전이라고 한다면 오해다. 책 속 인물들은 사회주의뿐만이 아닌 여러 거대하고 비장하고 엄숙한 가치, 사랑, 종교 등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절대 가치 혹은 절대 신념을 광신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조롱은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문학과 잇닿아 있다. (실존주의 철학, 문학의 특징 : 오직 개별 인간의 주체성에 의한 적극적 판단과 행동만이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뚱, 호메이니 등 신념에 찬 절대 권력자들에게 호되게 당한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에서 최고의 가치와 상품으로 떠받들여지는 '젊음(혹은 안티 에이징)'에 대한 저자의 단상은 놀라울 뿐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리스 비극 배우의 장화에,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를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이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 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 본문 가운데


- 김종성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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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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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권으로 이어지는 이 장편소설은 맨 먼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라바’.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버금가는 궁금증 유발 제목이다. 저자가 일본의 (여성)작가이니 일단 일본말이겠구나 짐작하고 책장을 펼쳤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제목의 뜻을 알 수 있겠지만, 파스텔톤 표지의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고 싶어 호기심을 꾹 누르고 소설을 읽어 나갔다. ‘사라바’는 1권의 후반부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초딩 소년인 주인공 아유무는 이집트에 잠시 이주하게 되면서 만난 야곱이라는 동급생 이집트 소년에게 난생처음 잊지못할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사라바’란 말이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둘을 잇는 그들만의 언어 '사라바'는 아유무를 구원하는 마법 같은 주문이 된다. 어린 소년들이지만 동성관계라는 상황이어선지 단순한 인사말에 묘한 애틋함이 담겨졌다. 어린 시절의 아유무는 위기에 처했을 때나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때 그 세 글자를 중얼거리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고, 결핍되어 있는 구멍이 메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속이야’ ‘굿 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 본문 가운데


어느 덧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무게도 버거워져 버린 37살의 주인공 아유무. 아직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지도 않은 그의 삶은 구석구석 균열이 생기게 되고, 비로소 아유무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모의 불화, 이해할 수 없는 짓만 골라서 했던 어린 시절의 누나, 이상한 종교, 승려가 된 아버지... 아마도 그에게 가장 악영향을 미쳤던 건, 유년시절 불화 끝에 부모가 이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또한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다투실 때면 스스로가 (혹은 자아) 한없이 움츠러들고 불안이 엄습했었다. 이혼이 자녀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이혼의 과정에서 부모들이 보여주는 균열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신의 탄생이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탄생을 있게 한 두 사람의 결합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의 탄생을 있게 한 두 사람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지켜본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만남 자체를 후회할 수도, 심지어는 자신의 탄생을 저주할 수도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의 불화를 목격할 때 마다 내 존재의 이유가 지워지고, 내 존재는, 존재의 이유는 그렇게 부정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부모의 이혼도, 이상한 누나나 종교, 종종 가출은 했어도 아버지가 아예 출가하는 일은 겪지 않았다. 이 책 안에는 소외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이렇게 굴러가면 안 될 것 같은 비틀린 현실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위안을 받는다. 문학적 감동을 경험한다. 무심코 읽은 한 문장에 마음이 둔중하게 울린다. 

‘사라바’는 절망을 이기는 기적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결국 삶이란 흔들리고 부유하는 궤적임을, 이렇게 흔들리는 삶에서 때로 넘어지는 것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찾고 있는 것을 향해 내딛는 착실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멋지게 그려낸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건 절대 흔들리지 않아. 너를 믿고 있어서가 아니야. 너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믿고 있어서야. -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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