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평점 :
절판


1,2권으로 이어지는 이 장편소설은 맨 먼저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라바’.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버금가는 궁금증 유발 제목이다. 저자가 일본의 (여성)작가이니 일단 일본말이겠구나 짐작하고 책장을 펼쳤다.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면 제목의 뜻을 알 수 있겠지만, 파스텔톤 표지의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고 싶어 호기심을 꾹 누르고 소설을 읽어 나갔다. ‘사라바’는 1권의 후반부에 가서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초딩 소년인 주인공 아유무는 이집트에 잠시 이주하게 되면서 만난 야곱이라는 동급생 이집트 소년에게 난생처음 잊지못할 순수한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마침내 ‘사라바’란 말이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둘을 잇는 그들만의 언어 '사라바'는 아유무를 구원하는 마법 같은 주문이 된다. 어린 소년들이지만 동성관계라는 상황이어선지 단순한 인사말에 묘한 애틋함이 담겨졌다. 어린 시절의 아유무는 위기에 처했을 때나 뭔가 좋은 일이 있었을 때 그 세 글자를 중얼거리면 평온함을 느낄 수 있었고, 결핍되어 있는 구멍이 메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사라바’는 ‘안녕’이라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되었다. '내일도 만나자’ ‘잘 있어’ ‘약속이야’ ‘굿 럭’ ‘갓 블레스 유’, 그리고 ‘우리는 하나야’.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 본문 가운데


어느 덧 머리카락 한 올만큼의 무게도 버거워져 버린 37살의 주인공 아유무. 아직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지도 않은 그의 삶은 구석구석 균열이 생기게 되고, 비로소 아유무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부모의 불화, 이해할 수 없는 짓만 골라서 했던 어린 시절의 누나, 이상한 종교, 승려가 된 아버지... 아마도 그에게 가장 악영향을 미쳤던 건, 유년시절 불화 끝에 부모가 이혼한 것이 아닐까 싶다. 

나또한 어릴 적, 엄마 아빠가 다투실 때면 스스로가 (혹은 자아) 한없이 움츠러들고 불안이 엄습했었다. 이혼이 자녀에게 그토록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이혼의 과정에서 부모들이 보여주는 균열과 함께, 본능적으로 자신의 탄생이 우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나의 탄생을 있게 한 두 사람의 결합은 결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나의 탄생을 있게 한 두 사람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그것을 지켜본다. 어쩌면 그들은 지금 만남 자체를 후회할 수도, 심지어는 자신의 탄생을 저주할 수도 있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그들의 불화를 목격할 때 마다 내 존재의 이유가 지워지고, 내 존재는, 존재의 이유는 그렇게 부정되는 것이다.

다행히 나는 부모의 이혼도, 이상한 누나나 종교, 종종 가출은 했어도 아버지가 아예 출가하는 일은 겪지 않았다. 이 책 안에는 소외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있고, 이렇게 굴러가면 안 될 것 같은 비틀린 현실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아이러니하게도 묘한 위안을 받는다. 문학적 감동을 경험한다. 무심코 읽은 한 문장에 마음이 둔중하게 울린다. 

‘사라바’는 절망을 이기는 기적의 주문 같은 것이었다. 결국 삶이란 흔들리고 부유하는 궤적임을, 이렇게 흔들리는 삶에서 때로 넘어지는 것은 실패의 결과가 아니라 찾고 있는 것을 향해 내딛는 착실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멋지게 그려낸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어. 그건 절대 흔들리지 않아. 너를 믿고 있어서가 아니야. 너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믿고 있어서야. - 본문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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