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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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밀란 쿤데라(1929~)는 체코의 대표 작가로, 첫 소설 <농담(1967)>을 발표한 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소련군이 체코를 점령한 뒤 시민권을 박탈당해 프랑스로 망명했고, 이후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있다.

고전하면서 읽는 게 대가의 고전작품이라고 한다. 나 또한 끝까지 읽은 고전작품이 거의 없는데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10년 넘게 독서 중), 이 소설은 제목에서처럼 조크외에도 삶의 페이소스· 재밌고 웃픈 반전· 이념이나 사상의 아이러니 등이 버무러져 있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해방 후 70년이 넘게 소모적이고 기만적인 이념대립을 이어오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 떠오르는 장면도 많다. 

20세기 중엽 체코 공산혁명 후,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던 청년 루드빅은 좋아하는 여학생이 연애는 안하고 스탈린의 공산주의사상에 너무 빠져 공산당 연수를 떠나자, 삐친 나머지 스탈린 주의를 농담조로 가볍게 조롱하는 엽서를 그녀에게 보낸다. 이 일로 루드빅은 위대한 사회주의를 모독한 혐의로, 동지라 생각했던 친구들에 의해 당에서 쫓겨나고 군에 징집 당하면서 인생이 꼬이게 된다. 

이는 마치 과거 박정희 정권 시절, 가수 한대수의 노래 <행복의 나라로>가 그럼 지금은 행복하지 않다는 말이냐... 김세환의 <길가에 앉아서>가 '근로 의욕 저하'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던 웃지못할 우리 현대사의 희비극을 떠오르게 한다.



[영화로 만들어졌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


광산에서 강제 노역, 탈영 시도 등 온갖 고생을 하다 15년이 지난 후, 루드빅은 농담 한 마디 한 걸 가지고 자신을 파멸시킨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 이유는 바로 처절한 복수를 위해서다. 그가 결행했던 복수극 가운데 가장 잊기힘든 일은, 친구이자 결정적 배신자였던 제마넥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부인 헬레나를 유혹했던 것. 사랑을 가장한 섹스 복수극을 치르게 된다. 하지만 이 비장하고 우스꽝스런 복수극은 삶이 그렇듯 알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특히, 헬레나와의 정사 과정에서 배신자 친구를 떠올리며 그녀의 뺨을 수차례 때리는데, 난생 처음 그런 일을 당하면서도 짜릿한 애무로 받아들여 형언할 수 없는 흥분을 느끼게 되는 헬레나. 루드빅과의 운명적 사랑을 더욱 확고히 오해하는 장면은 주인공의 복수극 가운데 압권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농담>이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반공
 고전이라고 한다면 오해다. 책 속 인물들은 사회주의뿐만이 아닌 여러 거대하고 비장하고 엄숙한 가치, 사랑, 종교 등과 불협화음을 이룬다. 절대 가치 혹은 절대 신념을 광신하는 일종의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조롱은 니체의 실존주의 철학, 알베르 카뮈의 실존주의 문학과 잇닿아 있다. (실존주의 철학, 문학의 특징 : 오직 개별 인간의 주체성에 의한 적극적 판단과 행동만이 부조리하고 모순된 세상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뚱, 호메이니 등 신념에 찬 절대 권력자들에게 호되게 당한 세계의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에서 최고의 가치와 상품으로 떠받들여지는 '젊음(혹은 안티 에이징)'에 대한 저자의 단상은 놀라울 뿐이다. 

젊음이란 참혹한 것이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그리스 비극 배우의 장화에, 다양한 무대 의상 차림을 하고,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면서, 광적으로 신봉하는 대사를 외워서 읊으며 누비고 다니는 그런 무대이다. 역사 또한, 미숙한 이들에게 너무도 자주 놀이터가 되어주는 이 역사 또한 끔찍한 것이다. 네로라는 풋내기, 나폴레옹이라는 애송이, 흥분하여 날뛰는 수많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흉내 내는 열정이나 간단하게 맡아버린 역할들은 처참하도록 실제적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 본문 가운데


- 김종성 http://sunnyk21.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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