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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2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14년 8월
평점 :
"너의 집필 방식은 너무 완벽하고, 너무 순수하고, 두루두루 충만해서 네 글을 한 번 알게 되면 다른 글은 더 이상 읽지 못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많은 돈 말이다!) 흠 없는 훌륭한 문학은 필요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평범한 것, 덤핑책, 파본, 대량 서적들이란 말이다. 많이, 점점 더 많이 생산하는 것이다. 점점 더 두꺼우면서도 내용은 별것 없는 책들 말이다. 중요한 건 잘 팔리는 종이지 그 위에 쓰여 있는 말이 아니거든."
"작가란 무언가를 쓰기 위해서 있는 거지, 체험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네가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써야 한다. 만약 네가 그것을 너 자신으로부터 창조해낼 수 없다면 다른 어디서도 찾아낼 수 없다."
"처음에 아주 비약적으로 한 장면을 쓰는 일은 매우 쉽다. 그러다가 언젠가 네가 피곤해져서 뒤를 돌아보면 아직 겨우 절반 밖에는 쓰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앞을 바라보면 아직도 절반이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그때 만약 용기를 잃으면 너는 실패하고 만다. 무슨 일을 시작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일을 끝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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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이름은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 길고도 낯선 이름. 그는 사람도 아닌 디노사우루스 공룡이며, 글을 읽고 작가가 되기 위해 교육을 받다가 책의 도시 '부흐하임'으로 모험을 떠난다. 가뜩이나 판타지 소설은 즐겨읽지 않는 편인데, 설정부터가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그래도 한번 잡은 책은 재미없으면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읽어야하는 고집때문에 초반의 심드렁함을 버티기로 했다.
그런데, 이 책,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해졌다. 위험한 지하세계에 갇혀 탈출을 시도하는 주인공이 만나게 되는 여러 괴물들, 그리고 음식 대신 독서를 끼니로 살아가는 외눈박이 부흐링족과 그림자 제왕이 책 중간중간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과 함께 머릿 속에 재연되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작가는 예술을 증오하는 고서점 주인의 입을 빌어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훌륭한 문학이 필요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불운한 천재, 그림자 제왕을 통해 작가가 되어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평범하며 내용은 별것 없는 책들이 잘 팔리는 요즘, 각고의 노력으로 최고의 영감을 얻은 작가가 써 낸 훌륭한 책이 세상에 나온다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독자가 있을까? 또, 그 가치를 알아봐주는 소수의 독자만으로 만족하며 물질의 혜택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세상에서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든 창작활동을 묵묵히 해낼 수 있는 작가는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별에서 와서 별로 간다.
삶이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일 뿐이다.
주인공을 눈물짓게 했던 이 문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런 멋진 독자들도 훌륭한 작가들도 계속 존재할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