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넘버 - 제2회 대한민국 전자출판대상 대상 수상작
임선경 지음 / 들녘 / 2016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람의 수명을 본다. 사람의 등에는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쓰여 있고 내 눈에는 그 숫자가 보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인생에서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죽음뿐이다. 생명은 유한하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죽어간다. 모두들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도 잘도 모르는 체하면서 살고 있다. 어째서일까? 그 때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죽음이고 가장 불확실한 것은 죽는 때이다. 그런데 나는 바로 그 때를 알고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확실하다. 


나와 나의 이웃은 물리적으로는 가깝다. 세대 간 벽체의 두께는 20cm를 넘지 않는다. 그야말로 딱 붙어 사는 처지면서도 우리는 철저히 타인이다. 신문 방송에서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고독사를 다루곤 한다. 죽은 지 몇 개월이나 되어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가끔 들린다. 누군가가 죽음을 맞이하는 동안, 거기서 1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또 누군가는 침대를 삐걱이며 생명을 만들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가까이 살지만 상대의 죽고 사는 일을 모른다. 죽고 사는 일은 모르면서 알고 싶지 않고, 몰라도 될 타인의 습성이나 취향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공동주택 거주민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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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는 느낌이 좋아서 종이책을 고집하고 싶지만, 빽빽하게 찬 책꽂이 때문에 요즘은 주로 전자책을 많이 구매하게 된다. 전자책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공간의 절약, 거기에다 가끔 일정기간 무료 대여 이벤트가 있어서 보던 책을 팽개치고 넙쭉 다운받아 먼저 읽곤 한다. 하지만,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책에도 적용되는지 그렇게 읽게 된 책들 중에서 보물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 <빽넘버>는 길이도 짧았지만, 사람의 수명을 볼 수 있다는 기발한 상상력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에 반해 책을 펼치자마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끝까지 읽어버렸다. <사랑과 전쟁> 극본을 쓴 작가의 이력때문인지 일상 생활에 대한 묘사도 생동감이 넘치고 이야기 틈새로 종종 끼어드는 과하지 않은 유머도 맘에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알 수 있는 주인공이 정작 자신의 빽넘버는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처한 후,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한 분은 읽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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