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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황병주 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7월
평점 :
1979년 6월 14일 강원도 삼척에서 농약을 치던 진항식과 부인 윤정자,
다음날 진항식의 고종사촌 형 김상회가 영문도 모른채 낯선 자들에게 잡혀갔다.
그로부터 6월 21일까지 1주일 사이에 총 19명이 체포되어 남영동 대공분실과 강원도 대공분실에서 최장 38일간 잔혹한 조사를 받게 된다.
치안본부는 이들을 간첩단으로 보고 재판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진항식, 김상회 사형,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는 무기와 유기 징역형을 선고했다. 추후 사형당한 김상회의 딸 김순자와 진실화해위원회의 노력으로 2013년 재심청구를 했고 2016년 대법원은 전원 무죄라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전쟁 당시 인민군 점령하에 강원도 삼척 지역에서 부역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진 진충식, 진현식 형제가 인민군을 따라 월북한다. 그중 진현식이 1965년과 1968년 남파되어 모친을 모시고 있던 동생 진항식을 찾아왔고, 이에 모친과 동생 그리고 가족들이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돌아온 피붙이를 보호한다. 그런데 북한으로 복귀하던 중 부상을 당한 진현식이 인근에 살고 있던 고종사촌 형 김상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여 그의 가족들까지 연루되면서 이 사건의 얼개가 그려진다.(13p)
한국현대사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회에서 증발하듯 사라졌다가 방대한 분량의 수사기록과 함께 간첩이되어 나타나는 경험들을 수없이 반복해왔다.(20p)
삼척 간첩단 사건은 비민주적인 국가체제가 잔혹한 폭력의 주체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다. 그것은 민주주의, 인권, 사법정의 같은 가치의 소중함을 여실이 보여준다. 또한 이 사건은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세계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 침투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기억될 필요가 있다.(127p)
새삼 참 좋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생각을 한다.
남북간 이념적 갈등으로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간첩으로 몰리던 그 시절...
이들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고 나와서도 제대로된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간첩'이라는 낙인은 항상 따라다니고, 보안관찰이라는 명복으로 형사들이 늘 주변을 어른거렸다.
만약 그 시대에도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말도 안되는 간첩혐의를 받고 고문을 당해 거짓 진술을 하게 했습니다.' 하며 국민청원에 글을 올렸다면 어떻게 됐을까?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이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짓밟는 국가폭력'이라는 결론을 내린 이 책에서, 재심 청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김순자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아버지 어머니는 북에서 내려온 그 사람한테 밥을 해준 게 죄다, 해서 붙잡혀 갔는데, 아니 자기 형제를 밥 안 해주면 그게 죄지, 패륜이죠(14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