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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인간 내면의 심리가 항상 궁금했었던 사람인지, 대학시절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교양 수업 중 하나는 심리학 개론과 아마도 인지심리학이었다. 심리학 개론의 경우에는 교수님이 워낙 강의를 재미나게 하셔서 인기있는 과목이기도 했지만, 과제로 내주는 리포트를 작성해가면 그것을 분석해주시던 내용이 너무나도 정확해서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대해서 써오라는 리포트를 과제로 내준 적이 있었는데, 그 과제들을 다 읽어보시고 나서 하시던 교수님의 한마디. "자기자신만이 이런저런 어려움 겪으면서, 힘겨웠을 꺼라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다 비슷비슷하다."는 말씀.
다른 듯 하지만, 결국에는 비슷한 인간들의 삶과 선택들 그 너머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지 파헤쳐 주리라 생각했던 것이 내가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을 읽게 된 계기였다.

목차의 내용만 봐도 사회에 이미 통념이 되어버린 고정관념이 많았기에 그 이면에 있는 뭔가를 속시원하게 밝혀주겠지 하고 바랐던 것이 사실.
조금은 가볍고, 여태껏 읽었던 심리학책과 뭔가 다르겠다고 생각했던 건 나의 섯부른 판단이었다.
가볍게 읽기에는 꽤나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책이었고, 심리학책이라기엔 딱딱한 내용에 속독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책이었음을 밝힌다.
과학적 관념과 이론을 중시하는 진화심리학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진화심리학 자체에 대한 이해부족이라 그런지(진화심리학은 말 그대로 진화하는 심리학이라고 생각했지만, 웬지 여기서의 진화는 다윈의 진화론에 따른 심리학같은 느낌이다. 과학적인 이론에만 치우친다면, 그보다 더 복잡한 인간내면의 문제들을 풀어내는데 있어서 오류가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읽으면서 좀 많이 불편한 심정이었던 점이 솔찍한 심정이다.

더군다나 진화심리학 쓰여졌던 시기가 이미 2000년대 초반이니 이미 비약적인 인터넷의 발달로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는 정보화 사회 상황에  어찌보면 뒤떨어진 듯한 느낌이다. 급격히 변해가는 현대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진출로 인해 경제적인 부를 쌓을 수 있게 되어 나타나게 된 다른 현상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물론 서론에서 그 한계를 이미 인정하고 넘어가긴 하지만, 책 대부분의 쓰여진 내용들을 읽으면서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누구나 궁금하고, 언제나 알고 싶은 테마는 남녀의 문제겠지만 그 문제에만 집중한 듯 하여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고정관념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인간 내면의 또다른 생각을 깨우쳐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그런 고정관념은 실은 이미 예전의 경험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라는 식으로 끝맺고 있으니 책을 읽으면서 많이 답답해졌다.

처음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이 될 수도 있겠고, 진화심리학이라는 용어자체가 어떤 것인가를 어느 정도 사전에 알고 들어가지 않으면 이 책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본인이 그런 경우) 
개인적으로는 진화심리학에 대해서 여성의 시각으로 본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그러면 좀 더 균형적인 이론이 도출되지 않을까.
많은 궁금증을 안고 책을 접했지만, 더 많은 의문만 생기게 된 책인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시간날 때, 찬찬히 시간을 두고 정독하면서 좀 더 차분히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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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살림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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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짱박혀 있는 돌하나를 빼내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노동이 필요한데, 이미 정형화되고 습관화된 사람들의 인식과 생각.
행동을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큰 노력이 필요한걸까.
국내외적으로 아름다운 생각과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유명인사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확실히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한마디와 행동이 중요하긴 하다.
사람들은 유명인들의 행동을 주목하고 따라하고 싶어하니까.

그렇기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개인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언가를 결심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71년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를 목격한 후 존 프란시스는 더이상 인간이 자연을 헤치는 상황에 책임감과 회의를 느끼고 기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력운송수단 이용을 포기하고 도보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때로는 그를 비웃기도 이상한 취급을 하기도 했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상황에 종지부를 찍고자 그는 침묵의 맹세를 하고 22년간의 도보여행과 17년간의 침묵여행은 시작되었다.

책의 시작은 평범하다. 환경운동에 전혀 관심없었던 그가 어떻게 자각하게 되었는지. 또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대해서 잠잠하게 기술하고 있다. 누구에게든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게 되는 시점이 있기 마련인데, 존 프란시스에게는 그 시점이 1971년샌프란시스코만에서 일어난 기름유출 사고였다.
그냥 방제작업하는 차원을 떠나 그가 취했던 생각은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작은 실천이지만, 매우 실천에 옮기기 힘든 결정이었다.
기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동력운송수단의 이용을 포기하고 오로지 두 발로 돌아다닌다는 것.
얼핏듣기에, 뭐가 대단한 결심이냐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으실 수 있겠지만, 드넓은 땅덩어리의 나라이기에 개인승용차 하나쯤은 구비하고 있어야 이동이 간편한 미국에서 도보로 여행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딘가로 이동한다고 할 때도 자동차라면 단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를 걸어서 가려면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짐과 묶을 숙소. 태워주려는 사람들의 유혹들도 만만치 않을 것이고.

침묵의 서약을 지키면서 대학교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눈빛과 행동만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생각을 전달하는 방법을 익혀가는 과정도 나와있다. 그의 이런 작은 노력은 점차적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고, 그 효과가 어떤 결과를 불어오는지.
한 때 잔잔했던 물결이 긴 세월동안 꾸준히 더 넓게 퍼져나가는지 알려주고 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존재여서, 바로 눈 앞에 보이는 편안함을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고 싶어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쁜 일상과 문명의 이기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들에게 여유와 비움의 미학을 불어넣어주는 책이기도 하다.
부족한 상태에서는 무언가의 고마움과 편리함을 깨달는 게 어렵지 않지만, 풍족한 상태에서는 쉽게 깨달기도 힘들다.
더군다나 당장 당연하게 누리던 편안함과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도 않을 뿐더러, 박탈감까지 느끼게 되기 쉬울 터.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존 프란시스같이 작지만 어려운 결심을 실천에 꾸준히 옮겨줘야 하는 게 아닐까.

자연과 생태계가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되기 전에 우리 모두 뭔가 한가지씩이라도 작은 결심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으면 한다.
한 사람의 실천이 보잘 것 없어보여도, 한사람이 10명되고 100명되고~이런 식으로 계속 퍼져나간다면, 큰 효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지금보다 좀 더 불편하고 덜 누리더라도, 후세를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모두 마음 속 작은 결심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
바쁘고 번잡한 일상의 현대인에게 작은 휴식처이자 잔잔한 충격을 주는 책.
한 번에 한걸음씩 세상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는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너무나도 각박하고 한없이 냉냉해져가는 우리네 사회에서 잠시 숨 쉴 틈을 느끼고 싶으신 분께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쉽지 않은 선택과 결심을 실천하며, 자유롭게 공기처럼 도보여행을 하는 프란시스가 누구든 한번쯤 되고 싶을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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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재다
다니엘 켈만 지음, 박계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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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울국제빵 과자 페스티벌에 친구랑 구경을 갔을 때, 설탕공예를 시범으로 구경했었다.
한 사람은 프랑스인, 다른 한 사람은 독일인.
독일인은 재료의 낭비도 가급적 줄이려는 모습이 보였고(심지어는 가스불도 쓰지 않을 때는 철저히 꺼두더라.), 상당히 조심스럽고 집중해서 섬세한 작품을 만들었다.
이에 비해, 프랑스인은 재료도 작품도 모든 것이 즉흥적이었고, 가스불은 쓰든 말든 언제나 켜놓고 상당히 산만하게(앞에서 구경하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해 휘파람까지 불기도 했다.) 작품을 완성했다.
두 사람 중 어느 사람의 작품이 더 훌룡했는가의 여부는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확실히 무뚝뚝한 독일인(박수를 쳐도 모른 척)에 비해서 프랑스인은 능글맞았지만 재미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글로벌 토크쇼 "미녀들의 수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녀 중 하나인 미르야 말레츠키가 대략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독일사람이라고 모두 약속시간을 칼같이 지킨다거나, 철두철미한 건 아니라고, 모든 독일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선입견이라고 했다.
또한 독일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자기계발서가 아닌 소설이 베스트셀러라고 했으며, 꽤 선전하고 있는 한국 만화 열풍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웬지 독일하면 떠오르는 진지함과 질서정연한 느낌. 모든 걸 합리적으로 이치에 맞게 따지고 사고하는 민족.
독일제라면 상당히 튼튼하고 고장이 잘나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독일인에 대한 선입견조차 독특한 유머로 잘 살려 독자로 하여금 배를 잡고 웃게 하는 책이 있으니, 바로 "세계를 재다"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드는 생각은 "세계를 재다니? 어떻게?" 였다.
책의 제목부터 웬지 대책없으면서도, 독일인의 특유의 따분할 정도로 진지함을 대표하는 느낌이다.
이 책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세상의 크기를 측정하려고 했던 알렉산더 폰 홈볼트와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좋게 말하면, 시대를 앞서가려고 했던 지식인들의 행보이고, 요즘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자신이 흠미를 가졌던 분야에 엄청나게 몰두한 괴짜들의 황당했던 삶을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유복한 귀족출신에 세상 모든 것을 경험하고 직접 보고 탐험하고자 했던 18세기 독일의 지리학자, 기후학자, 해양학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그가 등장한 챕터들을 읽다보면 너무도 역동적이다.
바다, 산, 강, 동굴, 수도. 제목만으로도 그가 세상을 직접 경험하고 측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모험을 했는지가 눈에 훤하다.
직접 전류를 경험하다가 죽을 뻔하기도 하고, 가스등을 가지고 지하에 내려가다가 질식사할 뻔하기도 하고. 맹독을 직접 맛보기도 하는 두려움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고, 어찌보면 무모해보이기도 하는 이 남자에게는 죽음조차 자신이 경험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세상의 위험과 유령조차도 몸소 체험하고자 하고.
배멀미조차 무시하면 극복할 수 있는 확신에 가득한 집념의 사나이가 있다면 훔볼트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일식을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너무도 고지식하게 자기가 할 일을 해야 하기에 놓쳐버리기도 하는 그는 정말인지 전형적인 독일인처럼 보인다.
그런 답답함과 융통성없음에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그의 여행 동반자였던 봉플랑처럼 "그렇게 항상 독일사람답게만 행동해야 하는 겁니까?"하고 푸념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인 18세기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천문학자이기도 한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훔볼트와는 달리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수학에 대한 빼어난 재능으로 인해서 어린 시절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더군다나 그는 나의 학창시절 눈물을 쏙 빼게 만들었던 과목인 수학과 물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그 인물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훔볼트보다 웬지 가우스의 이야기에서 많이 웃었던 것은 아무래도 더 많이 각인된 인물이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학창시절 아무리 물리 선생님을 짝사랑하고 많은 노력을 했음에도 결코 이해되지 않던 그의 공식들. 결국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외워야 했던 평범한 범생이였던 나의 피나는 눈물이 맺혀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리저리 정처없이 같이 모험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던 훔볼트와는 달리 바로 앞에서 나를 한심한 듯이 쳐다보는 듯한 가우스.
그가 등장하는 챕터들은 역시나 정적인 느낌이 드는 선생, 수, 별들, 정원.
작품 속에서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유명한 미국드라마 몽크에서 나오는 탐정 몽크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등장하는 천재 작가처럼 결벽증이 심각한 히키코모리 캐릭터같다.
너무도 뛰어난 재능때문에 남들보다 한단계 앞서 나가있고, 멍청하고 평범하다 못해 하품 나올 것 같은 학생들을 생계를 위해서 가르치는 일도 지루하고 따분하기만 하다. 수를 파악하는 건 빠르지만, 그외의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던 그를 보고 있노라면, 이기적이기도 한 자부심이 강한 괴짜가 떠오른다.
(부인과 관련된 일화를 보자면 더더욱 그런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의 자부심은 학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너무나 다를 것 같지만 결국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질주하고 집중해 온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서로의 과거부터 시작해서 다시 현재로 교차되면서 그들 일대기의 흥망성쇠가 진행된다.
독일인에 대한 편견을 해학적으로 표현하기도 한 이 작품은 결국 가우스의 한 마디로 정리된다.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전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아마도 학문일 겁니다."

그렇다,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끊임없는 호기심과 그것을 밝히기 위해 평생동안 노력했던 괴짜들이 아닐까. 물론 분야가 달랐다고 하여도 결국은 같은 정점에서 출발한 사람들.
두려움없이 망설임없이 신세계로 나갈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우리 또한 다른 신세계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자신의 분야에서 결코 포기를 모르고, 매달리고 있을 세상의 수많은 괴짜들에게 건배를 하고 싶다.


P.S 엄숙하고 재미없는 독일 문학에 결별을 선언한다지만, 개인적으로 독일인들을 무뚝뚝하게 느낄망정 독일문학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어린 시절에 소중하게 읽었던 아동문학들(케스트너, 프로이슬러, 헤르만 헤세, 그림형제, 미하엘 엔데 등등)은 모두 독일문학이었거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도 불고 있는 장르문학의 열풍이 독일을 휩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보출처 : 본인 블로그  http://tillt.tistory.com/trackback/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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