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와 공작새
주드 데브루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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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친구들이 수업시간에도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의 여왕 주드 데브루의 신작 파이와 공작새.


남녀공학을 다니다가 여고로 넘어갈 즈음, 주변 친구들이 수업시간, 보충수업, 자율학습 시간에 잠깐의 일탈로 많이 읽던 할리퀸 로맨스와 순정만화들. 당시 할리퀸 로맨스보다 오빠의 영향으로 존 그리샴이나 마이클 클라이튼, 시드니 셀던의 소설을 더 많이 읽어서 많이 접하지는 못했지만,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로맨스보다는 추리소설 같은 면이 가미된 스토리를 더 선호해서 고딕 로맨스 소설인 다락방 시리즈를 더 즐겨 읽었다. 
대학교에 가서야 칙릿 소설을 찾게 되었고, 뒤늦게 주드 데브루를 접한 건, 그녀의 작품인 계약 결혼을 만화로 각색한 신일숙 선생님의 <사랑의 아테네>를 보고 나서이다.
살짝 뻔하지만, 할리퀸 로맨스가 여자들이 꿈꾸는 로맨스를 완벽하게 그려낸 재미난 소설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사랑을 글로 배웠어요가 내심 부끄러웠기에, 그 재미를 로맨스 영화를 잔뜩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 


주드 데브루의 대표적 인기작 계약 결혼을 순정만화로 각색한 신일숙 작가의 작품 사랑의 아테네.


수많은 로맨스 영화 중에서 노라 에프론의 로맨스 영화를 가장 좋아했지만,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로맨스의 대가는 따로 있었다. 바로 19세기 작가인 제인 오스틴. 
그녀의 작품들은 한때 활기가 필요했던 할리우드에 고전의 재해석 붐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로맨스 소설과 영화의 기본 공식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두 남자가 한 여성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라던가, 차도남인 것 같지만 실은 남몰래 여주인공을 알게 모르게 배려해주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던가.
겉보기에 괜찮아 보였던 남자가 실은 바람둥이에 나쁜 남자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 등등.
많지 않은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은 오만과 편견이다.
거의 몇 년 단위로 새롭게 리메이크되거나, 각색한 작품들이 지금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고전에 충실하되, 각 시대에 맞게 각색되었던 오만과 편견 중 뛰어난 작품 3편. 

1940년, 1995년, 2005년작

각자 다른 매력, 차도남 미스터 다아시의 전형을 보여줬던 로렌스 올리비에, 콜린 퍼스, 매튜 맥퍼딘


이미 현대적으로 각색된 여러 작품들이 있기에, 주드 데브루의 신작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21세기 감성으로 재해석한 거면 느낌이 어떨까 매우 궁금했다. 
엄친아면서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던 남자와 정말 매력적이지만 나쁜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 너무나 좋아하던 오만과 편견의 소설 속으로 직접 찾아가서 다아시와 사랑에 빠지는 허무맹랑한 내용의 제인 오스틴 다시 쓰기.
오만과 편견의 미스터 다아시를 너무 좋아해서 현실 속의 남자에게 만족을 못하던 주인공이 결국 오스틴랜드라는 19세기 코스튬 패키지여행을 하면서 자아와 사랑을 찾는다는 오스틴랜드.


현대적으로 각색된 작품들.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 제인 오스틴 다시 쓰기, 오스틴랜드.


주드 데브루는 영리하게도, 오만과 편견의 연극을 한다는 스토리를 생각해낸다. 
21세기 현대 감성이지만, 연극처럼 3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등장인물로 캐스팅된 주인공들의 충돌을 그리고 있다. 현대의 미스터 다아시는 리전시 영화 스타로, 엘리자베스는 능력 있는 레스토랑의 요리사로 등장한다. 그녀의 소설답게 첫 시작부터 모든 여자들이 꿈꾸는 장면이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도 많이 나오는 알몸 샤워 신을 소설의 시작부터 놓다니, 역시 할리퀸 로맨스의 귀재답다.


잠이 덜 깬 건 아닐 테고, 실제 상황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과연?!


집 주인이면서, 유명 스타인 줄 모르고 갑작스럽게 낯선 남자의 알몸 샤워 신을 목격하게 된 여주인공 케이시. 그녀에게 끌리지 않은 건 아니지만, 자신의 파파라치가 샤워 장면을 핸드폰으로 촬영한다고 오해한 영화배우 테이트 랜더스. 
둘은 첫 만남부터 좋지 않았다. 마치 엘리자베스와 미스터 다아시가 그러했듯이.


미안함에 그녀는 먹을 것을 챙겨서 테이트 랜더스의 집에 가보지만, 

이런 이야기나 몰래 듣게 되었을 뿐이다.


나중에 사태 파악이 된 케이시는 집주인인 테이트 랜더스의 집 앞으로 가보지만, 우연히 엿듣게 된 내용은 좋지 않은 내용뿐. 실은 케이시에게 나름 끌렸지만, 첫 만남에서의 오해는 훗날 두 남녀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계기가 될 뿐이다.


두 번째 만남에서는 오해의 골이 더 깊어지게 되었다.


후에 사과를 하고 싶어 갔던 케이시의 숙소에서 우연히 그녀가 만든 파이를 만든 몰래 먹게 된 테이트는 애완 공작새의 공격을 받게 되고, 집은 난장판이 된다. 때마침 오만과 편견 오디션 진행 중인 일행에게 파이를 가져다주려던 케이시와 마주친 테이트는 당황한다. 
첫 만남에서 미안해하던 감정은 사라지고, 인기 배우이건 말건 몰래 자신의 파이를 먹어치우는 파렴치한 테이트를 보고 케이시는 폭발한다.


원래 사과하려 했지만, 테이트의 뻔뻔스러움에 그만 폭발하는 케이시. 

이 소설의 묘미는 케이시와 테이트의 말싸움이다.


일하던 레스토랑에서 해고를 당하고,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을 통보받은 케이시와 다음 오디션까지 잠시 쉬고 있는 스타 테이트 랜더스. 작은 마을 섬머힐에서 열리는 오만과 편견 연극의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역을 제안받게 된다. 테이트의 여동생과 조카를 따라서 온 매제 데블린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 간의 얽히고설킨 관계는 연극 공연이 가까워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갈등은 점차 심해진다.

미스터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청혼했다가 매정하게 차이는 장면 또한 재현되었다.


500페이지의 짧지 않은 소설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흥미진진해진다. 
19세기 소설에서 부당하다고 생각되었던 스토리는 21세기에 새롭게 구성되어서 선보인다. 
특히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분을 주드 데브루가 재해석하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또한 원작 소설에서보다 많이 부각된 리디아와 배넷 부인의 역할은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듯 자연스럽고 삶의 지혜와 연륜이 느껴진다. 젊은 세대에게 꼰대스러운 잔소리나 충고를 하기보다는 스스로 깨닫고 선택하도록 옆에서 가만히 지켜봐 주는 역할을 하는 모습은 멋지다.

이 소설에서도 몽고메리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주드 데브루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문 중 하나라는 몽고메리가 마치 오마주처럼 나오는 것도 나름 재미나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멋지게 재해석하면서도, 고전은 오마주한 주드 데브루의 신작 파이와 공작새, 일단 성공적. 파이를 대표하는 평범한 요리사 엘리자베스와 빳빳하고 오만하지만 아름다운 공작새를 상징하는 영화 스타 테이트.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사소한 오해로 최악이었지만, 갈등과 충돌을 겪으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보편적인 연애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해와 갈등 끝에 티격태격하는 두 남녀에 푹 빠져서 오래간만에 학창시절 감성으로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 소설.
작가의 능숙한 스토리텔링에 당신도 모르게 결말을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실은 소설을 읽으면서, 순정만화가 원수연 선생님의 풀하우스가 떠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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