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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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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서 무심코 떠오른 건 일본 만화작가 시미즈 레이코.
2015년 모두가 기억할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 원작 영화 룸.
17살 꽃다운 나이에 납치되어 창고에 갇혀서 꼬박 7년간 감금되어서, 지속되는 강간으로 아이까지 출산하며 키우다가 아이를 위해 탈출을 계획한다. 그러나 룸이 주목받았던 것은 탈출해서 그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은 그들이 당했던 혹독한 과거일 뿐, 학대당한 사람들의 현재와 미래에는 실은 별 관심이 없다. 실화가 된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찾아봐도 모두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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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위해서 용기를 낸 엄마이지만 탈출 후 마주한 현실은 시궁창.
영화 룸이 탈출 후 엄마와 아들이 겪는 세상에서의 적응 과정을 그렸다면, 지금 이야기할 작품은 그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된 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쉬왕의 딸. 처음엔 마쉬왕의 딸이라는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매우 궁금했는데, 작품을 읽다 보면 나오는 안데르센의 동화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국내에는 "늪을 다스리는 왕의 딸"이나 안데르센 동화 선집으로 묶여서 출간되었다.
늪지대에서 살았던 주인공의 과거 회상과 함께 등장하기에, 소설을 읽기 전에 한 번쯤은 어떤 이야기인지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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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의 동화 마쉬왕의 딸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을 잘 알려주는 단서 같다.
범죄자 아버지와 납치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의 상황을 나타내는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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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감금 사건이 언급되는 걸 보면, 그 사건을 배경으로 구상한 것 같다.
소설은 어린 나이에 납치되어 15년 동안 늪지대에 납치, 감금되었던 소녀가 낳은 아이인 헬레나가 성인이 된 시점으로 시작된다. 소설 시작부터 미국의 유명했던 클리블랜드 납치 감금 사건의 이름이 언급되기에, 그 사건이 배경이 되었겠구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아마도 납치되었다가 탈출했던 즈음의 어머니의 나이와 비슷한 나이가 된 헬레나는 자신의 과거를 감춘 채 가정을 이루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탈출했다는 뉴스를 듣기 전까지.
헬레나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추적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주인공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회상하면서, 아버지를 쫓는 현재를 교차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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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를 회상하는 장면 속에서 헬레나는 아버지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자신이 뭘 하는지 몰랐던 어린 시절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회상과 현재 그녀가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내용을 보고 있노라면, 정상적인 성장과정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늪지대에서 전기나 문명과는 전혀 동떨어진 환경에서 제한된 생필품과 옷가지로 살아가는 환경, 사냥과 수렵이 일상화된 환경은 탈출 이후 바깥세상에서 적응하는데 힘들었음이 보인다.
또한, 어렸을 때는 정확한 상황을 몰랐기에 엄마가 왜 그렇게 무기력해 보이는지, 위축되어 보이는지 잘 몰랐다가 점차 자라면서 느끼게 되는 아버지의 위협적인 태도. 바깥세상에 나와서 더 정확하게 알게 된 어머니의 상황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로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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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후 알게 된 바깥세상에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때론 어머니에게 악몽 같았던 과거를 기억하게 해주는 아빠를 닮은 외모, 친척들과 조부모들의 눈길, 사건이 알려진 동네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도 보여준다.
소설의 초반부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자신에게 생존에 대해서 알려주고 가르쳐준 사람,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왜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 보여준다. 아버지의 상습적인 학대와 폭행이 계속되는 장면은 꽤나 소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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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헬레나가 왜 아버지를 추적하고 잡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원인이 나와 있다.
바로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다.
헬레나가 아버지를 추적하고,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소설 후반부에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 보면 상당히 거친 추격전이고, 생각해보면 일반인으로 자라나기 힘든 과거의 기억들임에도 매우 건조하고 담담하다. 초조하거나 다급하지 않고, 정말 사냥감을 쫓는 사냥꾼의 느낌으로 추적하고 회상해서 그런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한 느낌이다.
그렇기에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드러나는 마음속 깊이 숨겨둔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이 더 충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시미즈 레이코의 비밀이라는 만화가 떠오른다.
아무도 알 수 없는 나만 알고 있는 내 머릿속의 기억과 기록들의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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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전개될 일들을 예측하게 해주는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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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헬레나의 아버지의 추적의 원인은 영화 스토커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거를 회상하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이제는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서, 어머니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해해나가는 스토리는 매우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상황을 이해해가면서, 결국 주인공을 살아있게 한 건 어머니의 애정이었다는 걸 깨닫는 부분은 소설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감동적이었다.
건조하면서도 절제된 감정 표현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범죄자인 아버지를 추적해가는 스릴러로 매우 흥미로웠던 소설 마쉬왕의 딸. 단순 스릴러만이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사건을 겪은 사람의 인생 전반에 걸친 트라우마와 상흔을 극복해가는 주인공의 모습 덕분에 더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그 이후의 삶은 어떨까 호기심 많은 독자들에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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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문구. 자신을 살린 건 결국 어머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