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머니 밀리언셀러 클럽 148
로스 맥도날드 지음, 박미영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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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보일드적 작품의 색채와 코엔 형제의 영화가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원작


하드보일드 소설쪽의 3대 거장 중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와 사회, 시대 고발적 추리소설을 쓴 로스 맥도널드. 
하드보일드 계 소설은 레이먼드 챈들러의 작품 정도만 읽어서, 과연 어떨까 싶었지만 왠지 너무나 비정하고 냉철한 챈들러 속의 작품과 달리,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 속 사설탐정 루 아처는 일정한 거리를 두는 느낌이랄까. 철저히 거리를 유지하고, 주변 인물과 얽히는 걸 꺼려 하지만, 인간이 지켜야할 기본적인 선한 개념은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단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경찰에 몸담고 있다가 그만두고 사설탐정을 하고 있다. 이혼한 뒤 혼자라는 정도가 작품에 나타나는 루 아처의 전부일뿐이다. 
단서를 모아서 추리를 하는 안락의자형 천재라기보다는, 여기저기 바삐 다니면서 탐문수사를 한다. 하고 싶은 질문에는 막힘없이 직설을 퍼붓는다. 심지어 의뢰인에게도. 거물급이라고 불리는 사람 앞에서도 역시 막힘이 없다. 도움이 될만한 인맥에게는 적당히 정보를 공유하면서, 수사하고 거래하는 센스가 뛰어나다. 

실제 모델이 된 사건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 시대에는 왠지 비일비재했을 듯한 비리.


이런 부촌의 느낌은 뭔가, 왠지 비꼼이 은근슬쩍 드러나는 탐정 루 아처의 독백.


어쨌거나, 나름 사설탐정 업계에서는 유명한 루 아처는 미국의 해안가 부촌 몬테비스타에서 피터라는 한 청년의 의뢰를 받게 된다. 초반부를 읽고 있노라면, 부촌의 분위기에 대해 굉장히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자신의 과거 약혼녀였던 지니와 현재 사귀는 남자가 수상쩍고, 프랑스 부호가 아닌 것 같으니 그 사람을 조사해달라는 단순한 의뢰였다. 
그러나 그 단순한 의뢰를 추적해나가면서 점차 밝혀지는 조용한 마을 속에 숨겨진 타지인에 대하 배타적인 습성과 함께, 완벽해 보이는 마을 속 이면에 얽혀있는 인간관계 속에 점차 석연치 않은 기운이 발견되기 시작한다. 


몬테비스타의 부촌에서 일어났던 과거 일련의 사건들, 스캔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의뢰인의 피터에게 내뱉는 폭언


블랙머니의 행방과 함께 얽혀있는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이 서로 얽히면서 연속해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을 추적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탐문조사와 대화로 통해 밝혀져가는 진실은 점차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게 하지만, 결론은 의외로 예상치 못했던 막장 스토리여서 놀랐다. 
전후 미국의 고속 성장 및 가족의 붕괴라는 주제를 다뤄온 그 다운 작품이었다. 과거의 상황은 항상 현재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인간은 과거의 습성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려주는 소설이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으려는 루 아처의 모습은 굳건하면서도 냉철하지만, 냉정하지는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동정이 섞여있기도 하고 약자라 생각되는 자의 편을 들어주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거리를 두면서도 기본적인 약자나 과거에 당한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하는 루 아처.


작품을 읽고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찾아보니, 작가 자신도 어린 시절 가족의 붕괴를 겪고 자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가족붕괴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 표면적으로는 돈에 얽힌 살인 같지만, 실은 치정에 의한 살인이 동기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붕괴된 가족의 구성원들의 과거가 얽혀있다. 
과거에 어떤 선택을 했던 사람은 현재에도 같은 선택을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 소설, 그리고 로스 맥도널드의 작품 속에서 중심적인 주제


작가 로스 맥도널드의 작가 데뷔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일단 부인 마거릿 밀러가 먼저 추리소설로 데뷔했는데, 데뷔 동기가 병원에 입원해있을 동안 남편이 빌려다준 추리소설이 너무나 재미없어서 자신도 이거보다 잘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부터였다.
추리소설 작가로 유명해진 아내 이후 그 자신도 소설가로 데뷔하게 되는데, 유명해진 아내를 의식해서 일부러 가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소설 중 몇 작품은 영상화되었는데, 루 아처의 스토리는 명탐정 하퍼로 폴 뉴먼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 후 TV 시리즈로도 제작되기도 했다. 
전후 부유해진 미국 중산층 가정의 붕괴는 왠지 미야베 미유키의 일본 버블경제로 인한 붕괴를 다룬 작품들과 살짝 비슷한 면이 느껴져서 친숙하게 느껴진다. 작품이 써진 시대와 하드보일드의 특성 관계상 거기서 그려지는 여성 캐릭터들의 느낌은 남성에게 지극히 의존적이면서, 남자를 파멸시키는 팜 파탈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런 느낌은 또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이 느껴진다. 


폴 뉴먼의 명탐정 하퍼, TV 시리즈


하드보일드 소설을 읽으면서 아침에 흔히 보는 막장 드라마가 생각날 줄이야. 하드보일드 소설의 재발견이다. 하지만 단순한 막장드라마는 아니고, 시대적 문제로 생겨난 막장 스토리.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든다. 
거침없는 루 아처의 입담과 배짱, 까도 까도 계속해서 나오는 비밀들에 서서히 빠져드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겨울로 접어드는 요즘, 딱 보기 좋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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