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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스트
스테프니 메이어 지음, 윤정숙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다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책처럼 어느 순간 정상인의 생활에서 멀어진 주인공들의 상황과 비슷해 보였다.
내일의 기약 없이 오늘의 생존을 위해서 사는 여자 주인공 알렉스.
본명 없이 위장 신분과 가명으로 일정 기간 옮겨 다니며, 쫓기면서 사는 고단한 인생을 살고 있다.
의사로 살던 그녀는 조국을 위해서 테러리스트를 심문하는 케미스트로 지냈었지만, 어느 순간 조직의 표적이 되어 쫓기고 있다.
조직이 보낸 암살자를 경계하는 부비 트랩을 설치하고, 방독면을 쓰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는 나날들이 계속되고, 그녀는 지쳐간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을 쫓던 보스 카스턴은 수백 명의 인명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를 잡아서 정보 캐는 걸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또 다른 함정인지, 아닌지도 알아차릴 시간도 없이 그녀는 수백 명의 인명을 구하기 위해 타깃을 쫓게 된다.
그리고, 대니얼이라는 타깃을 쫓아가다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트와일라잇 시리즈로 유명한 스테프니 메이어의 신작 소설 케미스트. 냉혹한 스파이의 세계를 새롭게 그린 신작
끊임없는 추격전과 신뢰와의 싸움.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돋보이는 책.
뱀파이어와의 사랑 이야기 트와일라잇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스테프니 메이어가 새로운 후속작으로 낸 케미스트.
화학약품을 인체에 주사해서 고문하고 심문하는 케미스트인 여자 주인공은 소설 시작부터 조직의 타깃이 되어 쫓기고 있다.
제이슨 본처럼 계속해서 쫓기지만, 상황에 익숙하고 재빠를 뿐 무적은 아니다.
자신의 특기인 화약약품 주사로 부상의 아픔을 견디거나, 상대방에게 재빠르게 약품을 주입할 수 있는 특기가 있다.
살인 병기지만, 기억을 잃어버린 채로 추적을 당하는 스파이물의 효시인 제이슨 본.
제이슨 본 시리즈에서 영감을 받았는지, 책 시작에 제이슨 본과 아런 크로스(본 레거시)에게 바친다는 헌정사가 있다.
본 시리즈보다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파이물로 유명한 미국 드라마 앨리어스 시리즈(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가 오히려 생각났다.
매번 새로운 위장 활동과 위기관리 능력이 아주 대단한 여자 주인공 시드니와 살짝 닮은 면이 있다.
자신이 믿던 사람들이 죽거나, 배신을 당하는 면도 매우 비슷하다.
CIA와 다른 기관의 이중스파이가 되는 유명한 미국 드라마 앨리어스. 시즌 2까지 배신과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로 제니퍼 가너의 매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드라마. 스파이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주인공 시드니의 고뇌가 느껴진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액션 장면도 꽤 등장해서, 소설 읽는 동안 시드니 역의 제니퍼 가너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주인공 알렉스에 대한 묘사가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자그마한 의대생(너드)의 느낌이라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스파이의 모습에서 벗어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평범해 보이는 외모가 오히려 눈에 띄지 않아서 잠입하기 편하다.
케미스트라는 또 다른 자아를 불러낼 때의 느낌.
주인공은 작품 속에서 내내 신뢰와 관련한 내적 갈등을 심하게 겪는다. 누군가를 쉽게 믿을 수 없는 상황, 언제나 최악을 생각하고 늘 플랜 B를 생각해야 하는 스파이의 세계.
위기 상황에서 자신이 쫓는 타깃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상황을, 본능적인 것이라고 분석하는 태도나.
(살짝 철벽녀의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연속되는 위기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랑의 감정에 빠지지 못하고 다음 위기에 대비해야 하는 모습은 기존의 작품에서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다.
트와일라잇 영화에서도 보다시피 넘치는 로맨스 장면들과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들로 가득했던 그녀의 작품이었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인가 싶었지만.
아드레날린이 솟구칠 만큼 긴장감 있는 상황에서 로맨스는 사치라는 현실적인 느낌이 강해서 의외로 놀랐다.
쫓고 쫓기는 과정과 액션 장면 등등, 영상화되면 좋을 장점들이 많이 엿보이는 소설이었다.
타깃을 쫓다가 새롭게 알게 된 조직의 함정, 역추적하며 알게 되는 조직 뒤에 숨어있는 또 다른 음모.
스파이물에서 흔히 보던 이야기지만, 주인공이 여자 케미스트에 너드인 점이 나름 신선한 케미스트.
잠 못 이루는 열대야에 읽기 딱 좋은 스파이물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에필로그.
영화에서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쿠키영상을 감독이 관객에게 선사하듯, 에필로그 부분이 꽤 재미있다.
소설 전반적으로 진지하면서도, 스피디하게 진행되다가 에필로그에서 숨겨뒀던 유머를 한꺼번에 날리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