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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집에서 집안 일 안 도와주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남편의 모습을 본다면 정말 주먹을 불끈 쥐고 살의를 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 초년생 무렵이었을 때, 직장에서 어느 고참 여직원이 결혼한 뒤 직속 상사가 내뱉었던 말.
*대리는 남편한테 아침밥도 안 차려준다더라.
남자를 안 챙겨주는 여자는 나쁜 여자야.
마음속으로는 부글부글했지만 나는 침묵을 지켰고, 오랜 세월이 흘러 직장 아닌 알고 지내던 동생의 이야기. 결혼 후 허니문 베이비를 가졌지만 힘들게 맞벌이를 하는 부인을 두고 무심코 하는 푸념.
결혼하면 아침밥은 부인이 챙겨주길 기대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나는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그놈의 아침밥. 결혼 전 혼자서도 안 챙겨 먹는 아침밥을 왜 다른 사람이 챙겨주길 바라는 건지.
도대체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때로부터 십수 년이 넘게 지났지만, 나와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의 사고방식도 어떻게 저렇게 변함이 없을 수 있는 것인지.
이제는 외벌이 아닌 맞벌이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이고, 여자의 사회진출도 그만큼 늘어났는데 아직도 사회적 시스템이나 사람들의 사고는 더 나아지지 않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구체화시켜 결혼 뒤 여자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절절한 현실을 보여주는 책.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매우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결혼 뒤 여자들이 느끼는 한에 비하면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닐 것 같다.
이 책의 사연들이 참 낯설지 않은 것은 결혼한 주변 사람들과 자라면서 보는 엄마와 할머니의 상황들이 비슷해서일까.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저런 말 한마디가 쌓이고 쌓여 아내가 남편에게 살의를 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주변의 상황들을 봐도 그렇다. 출산 후 육아휴직이 쉽지 않다 보니 직장을 그만두는데, 맞벌이가 아니면 생활이 되지 않으니 다시 재취직하고 싶어 하지만 출산 전과는 전혀 다른 조건이고 그 조차 쉽지 않다.

결혼은 여자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결혼 뒤에 겪어야 할 모든 상황들을 비교해도 여자의 일방적인 희생이 요구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여자들보다 오히려 남자들이 많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너무나 절절하게 이해가 되는 상황이지만, 의외로 많은 남자분들이 결혼 후 여자가 처한 현실에 대해서 너무 모르기 때문에 더 많은 환상을 가지는 건 아닐까.
결혼 후 아이를 낳은 뒤 끊어지는 여자들의 경력, 맞벌이는 당연하게 생각되는데 출산 휴가는 생각보다 받기 힘든 상황.
뛰어난 경력을 유지하고 싶어도 출산 공백 후 재취직이 쉽지 않고, 아이와 집안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이나 비정규직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혼하는 여자들은 고민이 많다. 아이를 가질 것인지 말 것인지. 아이를 가진다면 내 경력은 그 뒤로 어떻게 설계해나갈 것인지.
임신을 하면 더 고민이 많아진다.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엄마의 역할을 주변에서 기대하게 되지만, 주변의 그 누구도 그 문제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지 않다.
맞벌이를 하는 워킹맘은 아이에게도, 동료에게도, 어린이집 선생님에게도 자꾸만 미안해진다.
왜 미안해야 할까.

육아와 집안일에서 여자가 좀 더 해방된다면, 더 많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내들이 진화하는 만큼 남편과 사회 모두 진화해야 서로 행복해질 수 있다.

이제는 남자들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육아도 가정일도 여성보다 더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더욱 필요하다.
82년생 김지영, 화제의 웹툰 며느라기처럼 이 책도 비록 이웃나라 일본의 이야기이지만, 절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은 여성들이 결혼 후 어떻게 남편에게 살의를 느끼게 되기 시작하는지, 전업주부의 일상은 어떤지, 흔히 황혼이혼과 졸혼이 흔하다는 베이붐 세대의 이야기와 육아와 집안일에 동참하고 싶어도 쉽게 그렇게 할 수 없는 남편의 상황, 사회와 시스템의 변화까지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결국 책 속 여성들의 상황은 더 이상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인 것이다.
여자는 육아와 집안일의 굴레와 악습에서 좀 더 벗어나고, 남자도 함께 육아와 집안일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게 저녁이 있는 사회로 가는 문제가 시급하다.
그리고 결혼 외에 다른 형태의 가정이 어색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혼이나 싱글맘, 싱글 파더, 또 다른 형태의 가족이 자연스럽고, 각자의 구성원들이 편하게 아이를 키우고, 혼자 살아가기에 불편하지 않은 사회가 되어야 또다른 갈등을 조장하는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여자가 행복하기 위해선 남자가 변해야 한다. 남자가 변하기 위해선 사회가 변해야 한다.
제목은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지만, 실은 오히려 남편과 함께 오래오래 공존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책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커플이나, 행복하고 서로 존중받는 결혼생활을 지속하고 싶은 부부가 꼭 읽어봐야 하는 책.

육아는 부모가 함께 하는 것이다. 집안일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당연히 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부모가 함께 육아를 할 수 있게 저녁이 있는 삶을 만드는 것이 중요히다.

아내와 공존하기 위한 현명한 남편에 대한 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