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이까지 미혼으로 살게 될 것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막연히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남들처럼 살 거라 생각했지만,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청춘시절에는 너무 불안해서, 연애에 푹 빠져들 수 없었다. 경제적 상황이 서서히 안정될 때는 건강이 악화되었다. 결혼 시기쯤에는 한꺼번에 인연이 몰려들었을 때도 있었지만, 금세 사라져버렸다. 몰려왔다가 사그러드는 파도나 거품처럼 너무 의미 없었고, 나이 먹을수록 연애의 실패가 큰 상처로 다가왔다. 몇 번의 큰 실패를 겪고 나니, 연애에도 결혼에도 자신이 없어져 버렸다. 한동안 새로운 일에 집중했고, 너무 바빠졌어도 사람들을 만나는 모임에는 꾸준히 나가곤 했는데, 도무지 이어지는 인연이 없었다. 무엇보다 만났었던 인연들 중 그 누구도 부모님께 소개하고 싶은 맘이 들지 않았다. 점차 외로움보다 혼자 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해졌고, 현실로 다가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고, 아직 미혼인 친구들과 대화할 때마다 나오는 주제다.
그러다가 읽게 된 나보다 앞선 인생 선배의 기록인 <우리만의 리듬으로 삽니다>
50대 비혼 딸과 80대 엄마와의 한 지붕 남남 생활이라니, 결혼하지 않고 산다면 멀지 않은 미래의 내 모습이다. 친구들과도 깊은 속내를 서로 공유하지 않고, 코로나로 또래 친구들과는 연락이 소원해졌다. 그래서 타인의 삶이 궁금했다. 분명히 내 나이 또래 미혼인의 삶도 존재할 텐데, 중년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특히, 노년의 삶에는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다. 누구도 미혼, 비혼의 삶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았다. 몇 살 이후로는 "왜 아직까지 결혼하지 않았냐?"라는 질문이 지겨워서, 뭔가 배우러 다니거나 모임에 나갈 때 최대한 사생활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책은 크게 50대 비혼으로 바라본 세상과 80대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담담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때 나도 특정 나이까지 결혼하지 못한 사람들을 색안경 끼고 바라봤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엔 미혼이나 비혼이 나와 관계없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었다. 막상 나 자신이 미혼인 상황이 되니 지금까지 혼자인데는 별 이유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었고, 그 속에서 다른 삶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족의 형태가 정해져있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다른 결을 인정하고, 혐오와 편견을 배제하고 바라보자고 한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함께 일을 하던 동료 워킹맘들을 보면, 늘 아침은 전쟁이었다. 육아와 집안일을 함께 한다고 해도, 돕는 수준에서 조금 더 나아지거나 아닌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이 당장 아프면, 달려가는 건 아빠 아닌 엄마인 경우가 더 많았다. 남자이고, 가장이니까 임금 인상을 해줘도, 여자에 미혼인 자신의 임금은 동결시켰다는 친구의 말도 갑자기 떠오른다. 미혼의 여성도 가장인 경우가 있음에도 그걸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언젠가 함께 일했던 돌싱인 비혼의 팀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혼자여서, 나이 드신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는 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며. 혼자면 아파도 돌봐줄 누군가가 없기에, 오히려 가정을 꾸린 동생보다 더 불리하다고 했다. 사실 주변에 미혼인 친구들을 봐도 그네들과 함께 살거나 부모를 돌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딸인 경우 그 돌봄을 사회적 당연시 생각한다. 외출을 나가도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어머니와 함께 산책하는 건, 늘 딸로 보이는 여성이다. 미혼인 나와 함께인 부모는 또래들 사이에서 고립되기 쉽다. 손주 이야기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함께 대화하기 어려움을 느끼실 때가 많다. 아이나 청년을 위한 시설이나 정책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생각보다 노인인 부모님과 함께할 시설이나 정책은 많지 아니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아이와 청년을 위한 직접적인 복지 정책이나 시설 확충이나 프로그램은 많지만, 상대적으로 중년 이후의 과정을 생각보다 선택의 폭이 좁다. 다른 지역을 나가거나 정보를 더 찾아봐야 한다.
나이 드셔서 예전 같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외출을 할 때마다 느꼈던 상황들이 너무나 잘 나와있다. 대중교통수단이나 어딜 가든 모두 급하게 간다. 동네가 아닌 다른 곳에 구경거리가 많아서 모시고 나가도 생각보다 앉아서 쉴만한 곳도 적고, 너무 넓고 미로처럼 되어 있는 공간이 많아서 다니기가 힘들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설이 부족함이 느껴지는 건 대중교통수단을 탈 때부터 체감할 수 있다. 어디에나 계단이 너무 많다. 특히 오래된 역일수록,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가 잘 없다. 화장실을 가는 표시도 쉽게 잘 찾기 힘들 때가 많다. 한걸음 한 걸음이 힘드신 엄마와 외출을 한다는 건 정말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고, 신경이 모두 엄마에게 쏠려있어서 평소보다 많이 피곤하다. 하지만, 어린 시절 엄마는 언제나 나와 함께 어딜 나가실 때 절대 귀찮아하지 않으셨고 모든 걸 다 준비해서 나가셨다. 지금 와 내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모든 게 힘들고 피곤한 과정이었을 데도 오로지를 나와의 외출을 위해서 힘써주셨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모시고 나가고, 주변에 많은 분들이 나이 드신 엄마와 함께 하는 것을 보면서 늘 결심한다.
책 속에서 공감 가는 구절이 많다. 나이 듦에 대해서 자비 없는 사회 속에서 나이 들면서 점차 익숙해져야 하는 상황들이 생겨난다. 선입견을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몸을 무리하지 않고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일정한 수입을 얻고 엄마와 반려견을 함께 돌봐야 한다. 그런 일상을 유지하는 저자의 모습이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결혼 압박에서 벗어나니, 돌봄 압박에 다시 갇히게 된 상황을 설명하는 것도 웃프다.
언젠가 아는 방송 작가 동생에게 들었던 "내 목표는 명랑한 할머니가 되는 것"이라는 말이 이 작가분의 책에서 등장한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를 보면서 귀여움을 카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귀여움을 뒷모습 촬영하는 것으로 기록한다. 책은 쉽게 읽혔지만, 읽은 뒤에 다가오는 현실적인 무게와 질문은 가볍지만은 않아서 비교적 천천히 읽게 되었다. 몇 년 뒤의 인생 선배가 바라보는 사회와 노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 더 이상 사회가 나이 들어가는 현실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좀 더 다정함과 따뜻한 배려가 존재하고, 나이 든 사람들에 대해서 기회를 거두거나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아이나 고양이를 키우기 위해서 한마을이 필요하듯이, 한 노인도 같은 돌봄이 필요하다. 적자생존의 사회가 아닌, 함께 돌보는 사회로 가는 현실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