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혼란 - 인생의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당신을 위해
박경숙 지음 / 와이즈베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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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부터 올해 주목받은 영화 중에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작품이 있다.

중년 이민자 출신의 여성 에벌린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닥쳐온다. 국세청 세무감사, 남편과 관계의 위기, 딸의 갑작스러운 커밍아웃 등등 그녀 인생 전반적으로 총체적 문제가 전부 터져버린다.

그 상황 속에서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멀티버스 세계에 갇혀버린다. 위기의 대혼란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


 

© A2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

이 이야기가 진정성 있게 다가온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양자경이라는 배우가 에벌린의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서 동양계에 60대 여성에서 주어진 기회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걸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때, 그녀 또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양자경뿐만 아니라, 미나리와 파칭코로 주목을 받았던 윤여정 배우도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이혼 후 다시 일하게 되었던 상황에 대해서 말하면서, 생계를 위해서 연기하기 시작했다고 했던 윤여정 배우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큰 공감이 갔었다. 누구나 처음 사는 인생이기에 실수할 수도 있고, 매일매일이 새로운 삶의 나날들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롤 모델로 할 필요 없이 나답게 살면 된다고 이야기했다.


 



© 판씨네마, 애플TV

책이든, 영화든 나의 상황과 너무 가깝게 맞닿아있는 작품은 제대로 읽고 보기가 힘겹다.

회피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바로 문제에 직면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책 제목인 <어른이라는 혼란>을 보면서, "난가?"라고 느낄 정도로 내 마음과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것 같은 책의 2장까지 읽었을 때, 너무 공감 가고 뼈 때리는 말들이 많아서 읽기를 잠시 중단했었다.

미세먼지로 인한 편두통으로 며칠간 아무것도 하지 못했고, 작년에 시도해 봤던 것들을 간신히 성취해 내면서 길고 긴 무기력감에서 해방되리라 믿었었지만. 코로나 백신 접종과 작년 말에 있었던 커다란 사건과 개인적으로 겪어야 했던 주변 상황들은 나를 다시 무기력으로 빠뜨렸다.

한때, 먼저 이런 상황을 겪었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은 원치 않는 충고나 조언(=오지랖)을 했었던 것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그땐 미처 몰랐었다.

더 가라앉을 밑바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모르니까 철없이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좌절감과 슬기롭고 자신을 위할 줄 알았던 사람들은 슬기롭게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상담을 청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나는 혼자서 끙끙 앓을 뿐이었다.

어떻게든 글을 써보려고, 무언가 해보려고 많은 노력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예전처럼 글을 편하게 쓸 수 없었고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때론, 너무 우울해서 침대에만 누워있는 날이 길어졌다.

간신히 쥐어짜서 작성한 글들은 엉망진창이었고, 읽을 때마다 자괴감만 들었다.

마감 시간이 지나가거나, 포기하기도 했었다. 도무지 한 문장도 적을 수 없었던 나날들이 반복되었다.

그래도 결국 쓰게 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일단 그냥 쓰라는 조언 때문이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집중을 하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목차를 보면서, 이건 내 내면의 일기장인 것일까 생각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1장 혼란의 증상 - 무엇을 해야 할지 정신이 없다

2장 혼란이 생기는 이유 - 문제는 엔트로피 증가야

3장 의식의 질서 찾기 - 힘을 빼고 훈련하라

4장 혼란에서 질서로 - 성장과 진화를 꿈꾸며

어른이라는 혼란 목차

연세대학원에서 국내 처음으로 인지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인지과학자 박경숙이 실제로 겪은 경험담이 녹아있는 그녀의 앞선 2권의 저서 <문제는 무기력이다>, <문제는 저항력이다>에 이은 <어른이라는 혼란>. 컴퓨터공학, 인공지능, 인지과학, 로보틱스 등 첨단의 학문을 연구했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다루는 일에 더 가치를 느끼게 되었다. 공학과 자연과학에 심리학 등 인문학적 요소를 결합한 인지과학으로 인간의 마음을 성장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인지과학적 심리 치료 방법을 기초해서 '무기력 해소 프로그램'을 개발 ' 직무 무기력'과 '학습무기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직장인, 학생, 일반인을 돕는 상담과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인생전환 경험을 토대로 인생 2 막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전환을 돕는 '탁월한 두 번째 인생을 위하여'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 중이다.

© EBS

클래스 E , 번아웃에서 아웃하라


 

 


© 와이즈베리

인지과학자 박경숙과 2편의 저서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자신의 상태가 어떤 상태인지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 내 상황이 무기력인지, 저항력인지, 혼란 상태인지 말이다. 현재 내 상태는 무기력도, 저항력도 아닌 혼란 상태였다. 그런 상태가 지속된 지 너무 오래되었다.

노래 가시나무의 노랫말처럼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혼란의 원인이 된다.

삶과 일상이 뒤죽박죽되면서 무질서해진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건, 엔트로피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이 그런 것이기에, 혼란 상태에 빠진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시켜준다. 고 엔트로피, 극도의 혼란 상황 속에서 다시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방법을 저자는 차근차근 알려준다.


 




심리적 엔트로피가 높으면 마음은 무질서하게 변하고,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심리적 엔트로피가 낮으면 마음에 질서가 생기면서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의식의 무질서 수준을 낮추면 정신적 에너지를 하나에 집중하는 몰입 상태로 쉽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린다면, 서서히 쓸모 없어지는 과정에 대해 묘사해 놓은 부분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팩트만을 나열해놨을 뿐인데, 너무 뼈 때리는 말이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고, 살이 찌고, 의식 수준도 변한다는 말이 왜 그렇게 아프게 느껴졌는지.

이 부분까지 읽고 난 뒤 한동안 책이 잘 읽을 수 없어서 고생하기도 했다.


 


 



© UPI 코리아, 팝엔터테인먼트

방종의 푸에르를 버리고 질서 있는 세넥스가 되라고 이야기하는 저자.

다른 건 몰라도 책을 이해하기 힘들 때 비슷한 영화적 상황들을 떠올리는데, 영화 <리미트리스>, <루시>는 약을 먹고 인간이 두뇌 활용을 100% 할 수 있을 때, 어떨 것인지에 대해 그런 작품이다.

약을 먹지 않았을 때의 주인공은 푸에르같은 무질서 상황으로 아무것도 제대로 집중해서 할 수 없었다. 패배자의 상황에 빠져있던 주인공이 우연히 먹게 된 약으로 두뇌를 100% 활용할 수 있게 되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정리 정돈이었다. 모든 걸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사람이나 상황을 본 순간 고도로 집중해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는 놀라운 모습으로 변신했다. 규칙적인 생활과 루틴을 유지하며 최상의 모습으로 지내던 주인공은 약이 떨어지자 바로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영화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약 없이는 무질서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되는데, 한번 뇌를 100% 써서 활용하며 편리함에 익숙해진 주인공은 그전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다. 영화 속에서는 결국 그 상황을 유지하는 묘안을 떠올리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무기력, 저항력, 혼란의 상태는 살아가면서 반복될 것이다.

그 상황이 왔을 때, 질서를 되찾는 연습을 하면서 마음과 정신의 근력을 기를 수밖에 없다.

일단 힘을 빼고 혼란 속에서 다시 질서를 찾는 연습을 하자.

이런저런 전문용어들이 상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돕고 있지만, 혼란 그 자체의 최근을 살아가는 그 누구라도 저자의 실제 심경을 중간중간 털어놓은 <내가 만난 혼란기> 부분을 읽는다면 공감 갈 것이다.

언젠가 동기부여 유튜브 영상 중에서 미 해군 대장 윌리엄 맥레이븐의 연설이 떠오른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으세요?

침대 정돈부터 똑바로 하세요.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습니까?

작은 일을 제대로 해내면서, 하루를 시작하세요.

미 해군 대장 윌리엄 맥레이븐

마음에 혼란이 생길수록 그냥 일상의 일을 해라

혼란에서는 질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에 빠질 때, 설거지를 한다던가, 어떡해서든 일상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갔었다.

길냥이의 먹이를 일정한 시간에 챙겨준다거나, 가족의 끼니나 간식을 챙긴다던가, 장을 보거나 산책을 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을 하게 되면, 일상의 루틴이 생긴다.

그러면서 일상을 제대로 지낼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책 속에서 역사적 인물들을 예로 든다. 경계성 인격장애의 예로는 히틀러를, 두 개의 인격이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중년의 위기의 예로는 고흐를, 너무 많은 욕망이 가져온 혼란에 대한 예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들었다. 이들의 삶을 알고 있기에, 이해가 좀 더 쉬웠다.

앞선 두 권의 책과 달리 이번에는 4장에서 혼란에서 질서로 향하는 해결책을 뛰어넘어, 인생 제2 막을 살게 되는 발전된 양상을 제시해 주는 책이었다.


 

 

© 위키백과

아돌프 히틀러, 빈센트 반 고흐, 레오나르도 다빈치

먼저, 힘을 빼라.

그리고 훈련을 해라.

그러면 신이 너를 도울 것이다.

어른이라는 혼란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2장의 내용까지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단순 문제 해결만이 아닌 정신의 성장을 다룬 3~4장은 정독하기를 추천한다.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차근차근 정리해둔 책을 읽으면서, 인생에서 닥치는 위기 상황에 미리 대비해두길 바란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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