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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여행하는 수렵채집인을 위한 안내서 - 지나치게 새롭고 지나치게 불안한
헤더 헤잉.브렛 웨인스타인 지음, 김한영 옮김, 이정모 감수 / 와이즈베리 / 2022년 11월
평점 :
지나치게 새롭고, 지나치게 불안한 21세기.
빠른 시대와 환경의 변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쉽게 선택 장애자가 된다. 내 몸의 건강만을 챙기기에도 어려운데, 부모님의 건강까지 챙기자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진다. 몇 번의 큰 수술을 겪으면서 어느 병원, 의사, 지역 등등 고려해야 할 상황들만 몇 개인지. 누구의 말과 평가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채로 휩쓸려가듯 살아가고 있는 요즘.
코로나 이후로는 정보에 많이 민감해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의사분이 집필했던 건강 관련 서적을 읽기도 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떤 정보를 믿어야 하는지. 최근 내리게 된 결론은 여러 분야의 책을 다 읽어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만 습득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그 능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21세기를 여행하는 수렵채집인을 위한 안내서>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은 진화생물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해답을 찾는 책이다. 제목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크를 위한 안내서>를 연상케하는 친숙함이 있지만, 문송합니다의 문과이기에 400여 페이지 진화생물학 입문서가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책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다, 진화생물학 자체가 좀 생소하게 다가와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 책은 이론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보다,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언이나 지침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다.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영화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라는 작품이다.
습지에서 가족들에게 버림받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혼자 살아가는 카야라는 소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엄마와 형제자매들이 모두 떠나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홀로 남겨진 소녀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면서 살아간다. 야생 생물학자인 원 작가의 소설 때문인지 야생에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남고 변화하는 소녀를 섬세하게 잘 그려낸 작품이다. 영화의 결말과 전반적인 부분을 보면 자연의 법칙은 인간 사회의 윤리와 법칙과는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읽으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보다는 지식 자체를 받아들인 뒤 자신에게 도움 되는 부분만을 선별하는 게 불안한 시기를 살아나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인류는 유래 없이 풍요로운 21세기를 보내고 있지만, 현재 심각한 위기 상황에 와있다.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 문명의 발달로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결과 환경 오염과 생태계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이례적인 기상변동과 질병, 전쟁 등으로 인류의 사망률도 덩달아 증가했지만, 서로 간의 분열과 갈등은 오히려 더욱 커지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진화 생물학자이자 프린스턴 대학교수인 헤더 헤잉과 브렛 웨인스타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지나치게 새롭기(hyper-novel)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의 적응 능력을 넘어선 과도한 변화 속도 맞추지 못해서 생기는 인지 부조화로 이 모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은 취약하지 않다.
극복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면
한계가 늘어나면서 더 강하게 성장한다.
위기 앞에서 인간은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면서 넘겨왔다. 그렇게 직면한 위기를 넘기면서 생존한 인간들은 다른 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다시 골몰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로 거듭난다. 인간은 결국 서로가 서로의 라이벌이 된다.
영화 인터스텔라나 그래비티에서처럼 인간은 언제나 해답을 찾아왔다.
오히려 닥쳐온 위기에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위기를 겪으면서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이 책은 오늘날 위기에 직면한 우리, 즉 진화생물학적 '21세기 수렵채집인'인 인간의 본성을 탐구한다. 각 장마다 젠더, 음식, 양육, 의학, 교육, 문화 등 현실에 뿌리내린 고질적인 문제의 본질을 해체하며, 인간의 위대한 본성과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진화의 오랜 지혜를 바탕으로 지침을 제시한다.
언젠가 읽었던 진화론적인 접근 자체에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처럼 이 책의 이론과 해결법들도 그렇다. 앞서 언급했듯이 진화나 자연의 법칙은 인간의 윤리나 도덕, 법칙들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동의를 할 수 없는 부분들이 꽤 많았다. 이론 부분보다 책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도 느꼈던 더 나은 삶을 위한 접근법 쪽에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과거와 최근에 심적으로 힘든 감정을 느끼게 해줬던 애도에 대한 이야기에는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애도하는 것조차 기간을 정해놓고 할 정도로 어딘가 슬픔을 드러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타인을 위로하고,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것조차 여유롭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요즘, "애도는 내게 맞는 방식으로 시간을 갖고 슬퍼하라"라는 말은 따뜻하게 다가왔다.
수면에 대한 조언과 겨울철에는 한 번쯤 적도 근처에 가라는 조언도 괜찮게 와닿았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인 우울증의 가장 큰 원인은 적절하지 못한 수면과 점차 적어지는 야외활동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따뜻한 곳으로의 여행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성장에 집착하는 우리의 경제적 사고방식은 정확히 반대의 결과를 보고할 것이다.
처리량 사회는 우리의 불안함과 과도한 식욕, 계획된 노쇠화에 의존한다.
우리 사회는 이 방식에 의존해서 불씨를 계속 살려간다. 성장에 대한 우리의 집착에는 이처럼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있다. 그 집착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겪어야 함 했다. 현재 70억이 넘는 인구가 지구에 거주한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가 여전히 우리의 안녕을 평가하는 기준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장 대신 지속 가능성이 성공의 지표가 돼야 한다.
인류는 현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 상황에 처해있는 건 사실이다.
후세대를 위해 되돌리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쥐고 있는 세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는 자연과 생태계의 불균형과 기후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독서를 꽤나 편협적으로 하는 편이었는데, 잘 읽지 않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본 인류의 해결책 제시를 읽으면서 다양한 이론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특히 책의 정보가 모두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판단하게 하는 지표를 다시 한번 설정해 준 책이어서 바닥까지 떨어진 지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불안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을 가지려면, 때론 다른 의견들도 다양하게 접하면서 알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일깨워준 책이었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