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키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 상당히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식물은 키우다가 죽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건 도서관 알바를 했을 때, 빼곡히 들어서 있는 식물들의 물 주기를 하면서부터였다.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 아님에도, 도서관 곳곳에 있었던 크고 작은 화분들을 보면서 참 난감했던 기억이 있는데, 할 일을 설명해 줄 때 일일이 이건 물을 얼마나 줘야 하고, 애는 물을 갈아줘야 한다까지 자잘한 부가 설명은 잔소리로 들었다. 식물은 물만 주면 잘 자라겠지, 부지런히 물을 줬다.
주 업무 시작하기 전 30분 전에 나와서 물을 줘도 100개가 넘는 화분의 관리는 만만치 않았고, 물을 다 주고 나면 1시간가량 걸렸었다. 특히 등치가 큰 애들은 물을 다 주고 나면 화분 물 받침에 물이 다 새서, 그걸 또다시 버려줘야 했다.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피로감이 묻어나는 기억이다.
무엇보다 짜증 났던 건, 아무리 열심히 물을 줘도 잎이 누러지거나, 시들시들해지면 왜 그런지 모르니까 야단을 맞았었던 점이다. 왜 죽는지 이유를 모르는데, 제대로 안 키웠다고 혼이 날 때마다 왜 이런 일로 혼나야 하나 싶었다.
어느 날은 나무가 계속 죽는데, 그 안의 벌레인지 진드기인지를 잡아야 한다면서 그거 못 잡으면 너네가 비싼 나무 죽인 거라면서 까칠하게 굴던 교직원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크레이지 가드너 보면서 웃펐다. 아, 내가 뭘 잘 몰랐구나.
집에서도 아빠가 엄마와 나에게 쏟는 애정보다 식물에게 쏟는 애정이 크다고 생각하면서, 아빠는 우리보다 식물이 더 중요하냐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랑과 정성, 관심을 기울여도 자칫하면 죽는 게 식물.
도서관 이후로도 여러 직장에서 식물을 키웠었다.
삭막한 사무실 환경에 정이 안 가서, 혹은 엄마가 공기 정화용으로 사줬던 식물들 전부 이유 없이 비실비실 죽어갔다. 사무실 안에서 키우다가 죽은 화분만 몇 개인지 세어 보진 않았지만, 많이 저세상으로 보낸 소위 식물 똥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