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은 늘 부모를 배려한다고 하지만, 늘 자신이 최우선이지.
언젠가 미술관에서 근무했을 때 함께 일하시던 70~80대 자원봉사자분들과 나눴던 대화의 한 부분이다.
엄마와 어딘가 나가자고 하면, 오늘은 바빠 거절을 많이 당한다고 하자 하시는 말씀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나의 시간이 여유로울 때에 맞춰서 물어보기 마련이었으니까.
어릴 때는 엄마와 아빠 손잡고 어디론가 많이 놀러 갔는데, 중학생을 마지막으로 모두 함께 어디론가 여행 간 건 손에 꼽을 정도. 특히 오빠 장가가고 뭔가 허전함을 점차 느끼시는 부모님, 2019년 제사를 마치고 오래간만에 아빠의 휴가 기간에 맞춰서, 먼 곳은 불가능하고 농담처럼 "피곤하실 텐데 온양온천이나 오래간만에 가볼까요? 가자고 하면 아빠가 가실까요?"라고 물어봤는데, 그냥 가버리게 되었다.
예전엔 갈까요 물어봤을 때 반응이 시큰둥하셨는데, 이젠 갈까요 물어보면 그것은 가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부모님이 갑자기 거절을 하지 않으신다.
자주는 아니지만 몇 년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온양온천을 갔다.
맨 처음엔 엄마가 가고 싶다고 해서 엄마랑만 같이 갔다. 한번 가보신 엄마가 아빠랑도 가고 싶으시다고 하셔서 두 분 다 모시고 가게 되었다.
부모님의 특징은 가본 곳은 가기 싫어하신다는 점, 온천도, 음식점도 갈 때마다 다른 곳으로 가자주의.
한번 가보고 좋으면 계속 거기로 다시 가고 싶어 하는 게으르고 귀찮은 나.
새로운 곳이 좋으면 본인들이 계획 짜셔서 가시면 좋으실 텐데, 길 찾는 것도, 음식점 검색도, 힘없는 수행비서인 막내의 몫인 게 너무나 귀찮았다. (속으론 두덜두덜해도 계획만은 열심히 꼼꼼하게 짜려고 노력했다.)
정확히 20일 뒤에는 유성온천으로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갔다.
혼자 가는 여행도 뒤죽박죽이지만, 엄마와 가는 여행은 그러면 힘들다.
블로그에는 기록하지 않았지만, 커뮤니티에 기록된 여행 기록을 읽어보니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은 약하게 비도 왔고, 처음 가는 대전 여행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는 엄마와 함께 쉽지 않은 여행을 했던 기억이고, 생리 첫날도 겹쳐서 체력적으로도 몹시 힘들었던 기억이지만.
노천 족욕탕에서 함께 발 담그면서 좋았던 기억, 상태가 좋지 않아서 평소보다 배로 버벅대고 헤매는 딸 옆에서 눈치 보면서 아픈 다리로 조용히 따라오셨던 엄마. 중간엔 별거 아닌 걸로 대판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로 여행은 못 가고, 집에서만 머물러야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요즘.
온양온천 여행 속에선 뜻하지 않은 벚꽃과 5일장을 만나서 즐거웠고, 유성온천에서는 노천 족욕체험으로 편안해졌던 추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