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삶은 결국 여행으로 향한다
채지형 지음 / 상상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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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기록 필름 사진을 찾지 못해서,

작년에 인상 깊게 보았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사진으로 대신한다.


유학을 자유롭게 하기 시작한 세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유학이나 여행을 하려던 순간이나 중간에 되돌아오거나 좌절되기도 했던 시기를 살아와서 그런 것인지, 여행의 자유나 기회가 많이 좌절되어서인가.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을 자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행을 생각하기 전에 불안했던 청춘 시절엔 좀 안정되면 여행을 가자고 생각했지만, 그런 안정된 시기는 세월이 흘러도 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확실하고 하루하루가 어찌 될지 모르는 나날들을 살다 보니, 인생 자체가 원래 불안의 연속이고 더 큰 파도가 오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더 즐겼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제 와 후회해서 뭐하나 싶었기에 어느 순간부터 여행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끼어들어서 함께 가곤 했었다.

물론 해외여행보다는 국내 여행이나 영화제, 워크숍을 통해서였고, 타인과의 여행은 정말 잘 맞는 사람들과 하는 여행이 아니라면 쉽지 않구나를 느꼈었다.

순수하게 여행을 즐기는 건 혼자 여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혼자 준비하면서 뭔가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혼자 서서히 여행 가는 횟수를 늘리려던 순간이 드디어 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순간 하나둘씩 문제가 생기면서 더 이상 자유롭게 다니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싱글이기에 다시 기회가 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상황이 오게 되니 아무리 여행을 못하고 집콕하던 사람에게도 답답함과 갑갑함이 다가왔다.

굳이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일상 속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국내 속 여러 가지 행사를 즐거웠었기에 너무나 힘든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집순이도 이런데, 여행을 자주 다니시던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여행을 자주 가지 않던 사람도 랜선 여행이나 여행 영화를 보면서 위안을 얻으려고 하는데 말이다.

주변 커뮤니티 속 사람들이나 친구들을 봐도 모두 힘들어한다.

특히 여행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고 하는 분들인 여행 작가들은 더할 것이다.


없어봐야 안다.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여행도 그렇다. 없어보니 알겠다. 여행이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돌아보니 인생의 변곡점마다 피와 살이 된 여행의 순간이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순간이 모여 이루어졌다.


여행은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채지형


<여행, 너를 믿는다>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하는 이 여행작가의 여행의 순간들.

가슴 찡했던, 후끈 달아올랐던, 소름 돋을 정도로 오싹했던, 넙죽 엎드려 절하고 싶었던, 무릎을 탁 치게 했던 길 위의 순간을 책에 담았다고 하는 이 책은 작가님의 주옥같은 기록을 읽어보고 있노라면, 많지 않았던 내 여행을 순간들도 저절로 떠올리게 한다.

취향 저격의 무민이 여행 기록 초반부터 눈을 사로잡았다.


영화 라라랜드나 와일드 로즈, 

소울이 떠오르는 뉴올리언스의 재즈클럽의 분위기 속에 나도 취해보고 싶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남의 여행의 기록 읽어봐야, 이 사람이 느낀 감성을 내가 같이 느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여행도 갈 수 없는데, 이런 사진들과 타인의 여행을 기록을 읽어봐야 무슨 소용일까?

더 속상해지지 않을까?

반신반의하면서 읽게 된 책은 내가 좋아하는 무민, 느껴보고 싶은 뉴올리언스 재즈클럽의 기억, 천공의 성 라퓨타와 같은 공중도시의 모습, 스위스에서 설경을 여유롭게 즐기면서 볼 수 있는 느린 특급열차, 수로 유람과 미술관의 추억 등등.

내 취향의 여행은 이런 거였구나, 비슷한 추억을 느꼈던 여행의 순간들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여행 위시 리스트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미술관 좋아하고, 르누아르, 마티스, 루벤스 좋아하는 사람으로 취향 저격의 기억.


천공의 성 라퓨타의 풍경 같다는 공중도시의 모습

흔히 읽던 어디가 좋더라, 내 여행은 어떠했다는 여행기가 아닌 온전히 작가가 느꼈던 순간들의 기록이어서인가.

작가가 느꼈던 순간이 사진과 함께 간결한 문장으로 잘 전달된다.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날의 분위기, 그곳의 공기까지 느껴지는 기분이랄지.

여기저기 다 계획 세워서 욕심내서 전부 봐야 한다는 게 여행의 전부가 아니란 걸 알아서인지.

솔직히 그럴 체력도 안되고, 쉼표를 찍어가는 듯한 여백이 있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 순간들을 모아놓은 것 같은 여행의 순간들.



한 번쯤 타보고 싶은 길고 느린 특급열차, 

커피 마시면서 우아하게 설경을 구경하고 싶다.


낭만적인 수로 유람의 기억.

여행의 순간들의 기록도 주옥같았지만, 더 감동적이었던 건 작가의 개인적 기록이 듬뿍 담긴 3장 여행 유전자와 4장 먹고 모으는 재미였다.

화가의 그림을 볼 때, 붓질과 색감을 느끼면서 화가를 느끼듯이, 개인의 취향과 주변인들의 기록을 보면서 작가가 누구인지 느낀다. 타인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순간이었다.

특히 엄마와는 짧은 여행이나 잠시 어딘가 다녀오는 외출을 자주 하지만 상대적으로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은 적었기에 아빠와의 여행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년기를 지나면서 가족과의 여행은 극히 줄어들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 온 가족 여행은 단 한 번도 해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그러는 사이 부모님은 나이가 많이 드셨고, 아직도 건강하시지만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실 때가 많다.

작년은 사실 어딘가로 가족 여행을 가야지 맘먹었던 한 해였는데, 아직까지 실행하고 있지 못하다.

자유롭게 여행 갈 때가 되면 잊지 않고 실행해야겠다.




아빠와의 여행의 기억.


먹는 기록을 읽으면서 가장 행복했다. 

사실 여행 속에서 소소하면서도 가장 확실한 기억이 무얼 먹었는가의 기억이 아닐까?

그렇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순간은 먹는 기록을 읽는 순간이었음을 숨기지 않겠다.

여행이건, 일상이건 맛있는 걸 먹는 순간은 소중하다.

누군가와 함께라면 더 행복하겠지만, 혼자라도 맛있는 걸 먹을 땐 정말 행복하다.

영수증과 사진을 보면서, 여행작가의 일상을 잠시 멈추면서 소중한 여행의 순간들을 추억하고 기록한 나날들.

언젠가 다시 여행을 자유롭게 하게 되었을 때,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잊지 않다고 다시 소환해서 내 여행 세포를 다시 깨우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꼭 해외가 아니라도 좋다. 국내도 못 가본 곳이 많은 사람이기에, 언젠가 자유롭게 여행할 날을 꿈꾸며 인상 깊었던 프롤로그의 마지막 문구를 써본다.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길 위의 빛나던 순간을 소환해 주길 기대한다.

터널을 지나는 우리에게 한 줌의 햇살이 되기를,

어두운 방 안에 걸린 작은 창문이 되기를 소망한다.

여행이 보이진 않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여행은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 - 채지형


* 여행이 멈춰도 사랑은 남는다라는 주제에 가장 잘 맞을 듯한 영화 4편을 뽑아봤다.

유럽기차여행에서 만난 두 남녀의 하루동안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비포 선라이즈>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는 내용을 다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누군가를 찾아가는 여행 속에서 우연히 만나 캠핑카로 함께 여행하게 된 두 남녀 이야기를 다룬 <에브리타임 룩 앳 유>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들.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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