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김의 시
류시화 엮음 / 수오서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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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좋아하는 티룸꽁떼에서의 잠시 잠깐, 마음 챙김의 시를 읽었다.

책갈피 일러스트는 ©양은봉 작가님 작품(인스타그램 @eunbong_yang)


사람들은 시를 어떨 때 읽을까?

사실 학교 정규교육이 끝난 뒤부터는 일부러 찾아서 시를 읽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좋아하는 국어선생님이나 문학 선생님이 소개해 주시는 시를 읽었었고, 학교 교육 중 접하는 시들은 의미를 분석하고 단순 암기하는 걸 떠나서 꽤 좋은 시들이 많았었다.

수능 때문에 국어 전용 문제집을 풀면, 더 많은 시들을 접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엔 학교에서 과제로 동시도 지었었고, 중고등학생 때는 시집을 사거나 일기장에 시를 쓰기도 했었다.

지금 읽어보면 이불킥할 내용의 시지만, 감성이 참 풍부한 질풍노도의 시기였구나 싶다.

책을 읽고, 특히나 시를 읽는다는 건 한 문장씩 충분히 음미하는 자신만의 시간과 여유를 가진다는 걸 의미한다.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던 대학시절 1학기가 지나고, 2학기 무렵에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던 때.

축제가 지나고,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상실로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을 무렵, 학생회실 책꽂이에서 무심코 눈에 띄었던 시집이 바로 류시화 시인의 치유 시집인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었다.

그렇게 첫 만남이 있었고, 세월이 지나 아픔과 상처는 함께 공존해가면서 살아 하는 거라는 걸 느꼈을 때 우연히 본 인도 영화 바라나시의 시사회에서 시인님을 직접 보았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20대에 인도의 바라나시에 가셨던 경험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화장터를 보고 충격을 받으셨었다고 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바라나시의 호텔 셀베이션은 인생의 마지막, 일상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보내기 위해서 약 천명 정도가 머물고 있다고 했다.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그곳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셨다고.

30년간 매해 인도 여행을 하시는 시인님이 코로나19로 여행을 가지 못하신 뒤 작업실을 개조하시면서, 15년 동안 수집한 시 72편을 실은 마음 챙김의 시.

시를 읽는 것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고, 세상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이며,

여러 색의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마음 챙김의 소중한 도구이다.


- 마음 챙김의 시, 156p by 류시화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거리 두기로 비대면 일상과 만나고 싶은 사랑, 가고 싶은 장소와 여행을 갈 수 없는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위로와 외로움은 온전히 자신에게만 주어진 상황이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라는 정호승 시인의 시도 있지만, 어찌할 수 없는 질병과 재해, 소중한 사람의 상실 등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인생의 굴곡이 밀려올 때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대처하기 힘들다.

온전히 자신에게 자신을 맡겨야 하는 순간에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메마르고 지친 영혼을 쓰다듬어 줄 문학과 예술이다.

그중에서도 그동안 멀리해왔던 시를 차분히 한 문장 한 문장 조용히 읽으면서 좋았던 구절을 필사하는 과정은 나 자신을 다독이는 시간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시집을 조용히 읽으면서 차와 디저트를 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큰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책갈피 일러스트는 ©양은봉 작가님 작품

(인스타그램 @eunbong_yang)


시집을 시작하는 처음, 가슴을 울리는 앨런 긴즈버그의 시를 읽노라면, 격렬한 그의 사랑을 그린 영화 킬 유어 달링이 떠오른다.

사랑했던 공간, 사람의 상실과 부재가 일상이 되는 요즘.

사랑해왔던 그 모든 게 나의 일부가 되고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앨런 긴즈버그의 사랑을 그린 영화 킬 유어 달링 © Sookie Pictures


이 시집은 한꺼번에 다 읽기 보다, 그날따라 끌리는 시와 작가, 시인의 작품을 몇 개 골라서 읽고, 뜻을 깊게 음미하는 시간을 갖기를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읽은 시 중 맘에 드는 시를 필사하는 시간도 조용히 혼자 있는 공간에서 가져보시길.

마음의 평온이 찾아오기도, 잊었던 감성이 돌아오기도, 가슴 아플 때 슬며시 위안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삶과 경험을 옮겨 적은 시인과 작가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세상에서 혼자가 된 기분이 들 때 이 시를 읽고, 나를 한층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좋아하는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는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


코로나19상황에서 약 6개월 이상 나에게 많은 위안을 주었던 길냥이가 떠오르던 시.

책갈피 일러스트는 ©양은봉 작가님 작품(인스타그램 @eunbong_yang)



어찌 된 일인지 자그마한 타인의 친절과 인상 깊은 한마디나 문장이 너무나 잘 느껴지는 가을.

나에게는 삶의 여유를 주는 시간을 시집과 함께 조용히 가져보도록 하자.

자신에게는 마음의 위안을 주고, 날선 감정과 예민해지기 쉬운 요즘, 세상과 타인에 대한 시선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고향에도 못 내려가고, 만나고픈 친구들과도 못 만나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책과 함께 나 자신을 소중히 해주는 시간을 보내보자.


​인상 깊었던 시를 필사하던 시간도 즐거웠던 나만의 티타임. 

잠시 잠깐이었지만 즐거웠다.

어느 날 내게 말을 걸어온 이 시들이 당신에게도 다가가 속삭이며 말을 걸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한 편의 시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건네지는 것은 인간 고유의 아름다운 행위이다.


- 마음 챙김의 시, 165p by 류시화


이 글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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