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존 그린 지음, 최필원 옮김 / 북폴리오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 어덜트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그린의 2번째 작품인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재작년 여름에 국내에 출간된 존 그린의 신작 소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을 소개했었다.

영 어덜트 소설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문학과 역사학 강의를 메인으로 하는 유튜버이기도 한 존 그린은 여러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7편의 작품 중 4편이 영상화(안녕, 헤이즐/페이퍼타운/렛 잇 스노우/알래스카를 찾아서) 되었고, 국내에도 그의 모든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때론 철학적이면서도 인간관계 속에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공감이 갔다.



쓰기만 하면 영상화되는 존 그린의 작품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엄청나게 흥행했고,

올해 인도영화 <딜 베케라(불쌍한 마음)>로 리메이크되어 5월 개봉 예정이다.

<페이퍼 타운>까지 극장 개봉 영화지만 넷플릭스에서 감상 가능하고,

작년에 훌루에서 드라마로 독점 서비스한 <알래스카를 찾아서>

작년 겨울에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한 <렛 잇 스노우>


존 그린의 일곱 편의 작품 중 두 번째 작품인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국내에 출간된 작품 중 세 번째로 접하게 되는 작품이지만, 두 번째로 쓰인 작품이기에 최근 작품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 든다. 존 그린만의 작품의 특징이라면, 단순히 가벼운 로맨스 소설이라기 보다 자전적, 혹은 주변인들의 경험을 작품에 쏟아 넣어 허무맹랑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등장인물들 자체는 뭔가 특수한 상황 속에 있지만,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현실 세계에서도 벌어질 법한 느낌을 받는다.

청소년기, 이제 막 청년기로 접어드는 등장인물들이 겪는 인간관계(사랑을 포함한 친구와 부모님과의 관계)는 실은 현대인이라면 모두 어려워하기에 그들의 내적, 외적 갈등 속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받는다.

앞서 말했듯이, 가볍지 않으면서도 때론 묵직한 철학적인 내용이나, 추리소설적 요소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것이 존 그린의 작품이 페이지 터너인 이유이다.


제목만 봐도 뭔가 실연당한 누군가의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 만큼, 후기작인 <잘못은 우리별에 있어>나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에서의 문장이나 구성의 세련미는 느끼기 힘들다.

여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쓰였던 두 작품에 비해, 뛰어난 수재지만 천재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남자 주인공의 시점에서 쓰여서 그런 것인지 살짝 공감하기가 힘들었던 점도 있다. 아니면 수학을 극도로 싫어하기에,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그래프와 방정식이 너무 싫어서 애써 눈에 넣지 않으려고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남자 주인공인 콜린의 심리묘사가 사실적이었고, 동시에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린지와의 대비가 돋보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생후 25개월 때부터 글을 읽고, 언어학적인 재능이 남다른 신동이자 영재인 콜린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실연을 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뷰티플 마인드,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빅뱅이론 속에서 

천재들의 사랑을 생각하며 책을 읽었다.



실연에 빠지면 누구나 슬픔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한다.

주인공 콜린이 선택한 방법은 절친인 하산과 드라이브 여행을 가는 것이다.

단순히 여행만 가는 게 아니라 남녀 관계, 사랑의 공식을 증명하고 정리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뷰티플 마인드에서 게임 이론으로 유명한 존 내쉬 교수조차 풀지 못한 사랑의 법칙을, 증명한다니 참 영재 다운 발상이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어린 시절 첫 번째 연애 상대였던 캐서린과 3분 만에 헤어져서인가.

첫 번째 잘못 끼워진 연애의 단추는 그 이후로도 영향을 미쳐서, 우연히도 캐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과만 연애를 해왔고, 그녀들에게 끊임없이 차였다.

연애를 잘 이어가고 싶어도, 어딘가 싸한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그녀들과 멀어지면서 차였다.

19번째로 차인 순간, 연애를 할 때 데이터를 넣으면 두 사람 간의 연애가 어떻게 갈지를 증명하는 공식을 정리해보리라 맘을 먹는다. 마치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해서 애쓰는 콜린의 모습은 살짝 안쓰럽다.



뛰어난 천재들 사이에서 무언가 이룬 것 없이 뒤처지기 싫은 콜린과 

현재의 삶을 즐기지 못하는 모습에 지쳐가는 캐서린



언어학적인 재능이 몹시 뛰어나고 애너그램이 특기인 콜린은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신을 증명하듯, 애너그램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실은 이건 콜린만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내 곁에 남겨두기 위한 노력을 어릴 때부터 많이 해왔었고, 인간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건 물론 어른이 된 현재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어릴 때와 다른 건 그냥 관계가 끝나게 되어도 쿨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게 속마음을 감추는 데만 익숙해진다.

필연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될 때 운이 좋으면 계속해서 유지되지만, 거의 대부분은 주기적으로 멀어지거나 새로운 인간관계를 다시 맺게 되는 과정의 반복이다.

민감한 사춘기 시절을 지나면서 인간관계는 점차 힘들어져갔다.

존 그린은 이 작품에서 그런 인간관계에서의 힘듦을 비교적 사회의 때가 묻지 않은 시절의 주인공들을 등장시켜서 그려낸다.



실연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 패턴을 분석하는 수식과 그래프로 표현한다는 게 

너무 영재적인 발상이다.

갑자기 이과생과의 연애가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이과생과 연애했었던 기억으로 충분히 가능하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치게 된 황당한 문구를 보고 친구인 하산과 콜린은 테네시의 벽촌인 건샷의 테마파크에 가게 된다. 황당한 문구란 <1차 세계대전의 촉발시킨 시체인 페르디난트 대공의 무덤을 보러 오세요>라는 점.

이곳에서 콜린은 자신과 정반대 타입인 린지와 만나게 된다.

콜린이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면, 린지는 구급 대원이자,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셀러브레트 리빙이라는 잡지를 읽고, 평범한 듯, 사람들 사이에서 쿨하게 잘 지내는 듯한 그녀지만, 의외로 두 사람은 뭔가 이어지는 공통점이 있었다. 콜린은 캐서린이란 이름을 가진 여러 여성들과 사귀어왔지만 계속해서 차였고, 그와 정반대로 콜린이라는 이름을 가진 1명 만을 사귄 린지.



콜린이 가지고 있는 연애에 대한 꼬인 생각(?), 갑자기 생각나는 책 

<요즘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세상엔 무조건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야.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 P178


여러 명의 캐서린과 교제했지만, 한결같은 느낌의 콜린과 사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정반대 성격의 린지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서 서로 서서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아간다. 특히 린지가 콜린이 정리하는 사랑의 공식을 남녀관계의 패턴화로 만들어보고 싶다면 둘을 더더욱 가까워진다. 

사랑은 정반대의 사람에게 매력을 느껴서 빠지게 된다고 하지만, 결국 알고 보면 알게 모르게 둘은 공통점이 있고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서 자석처럼 끌리는 것이다.



서로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면서 대화를 하고 둘은 서서히 가까워진다.


난 오래전에 사람들이 날 좋아하게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아냈어.

그건 바로 그들을 좋아하지 않는 거야.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 204


그렇게 전혀 다른 것 같은 두 사람은 서로 만나 가까워지면서 비슷한 면을 접하게 되고, 그걸 공유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존 그린의 소설은 서로 다른 상황에 접해있지만, 이런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해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사랑에 빠지면서 서로 겹쳐지면서 시야와 사고를 확장해나가는 성장의 느낌이 그의 작품에는 늘 잘 나타나있다.

진학을 앞두고 새로운 세상을 접하기 전, 청소년기의 마지막이자 성년의 중간 지점.

그전까지의 사랑은 실은 상대방보다 콤플렉스에 빠진 나 자신에 무게중심이 쏠려있었다면, 앞으로의 사랑은 상대방을 좀 더 바라보며 배려하는 성숙한 감정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초기작이지만 인상적이었다.



추억의 기억과 스토리텔링의 중요성.


미래는 모든 것을 지워버릴 것이다.

제아무리 유명하고 천재라 해도 '잊힘'을 초월할 수는 없다.

무한한 미래는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무가치하게 만든다.

결국 난 잊히겠지만 내 이야기는 영원히 남을 거라고.

우리 모두가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어.

그게 생각처럼 크진 않지만 적어도 그게 있다는 게 어디야?


열아홉 번째 캐서린에게 또 차이고 말았어 - 296, 297


부록으로 이 방정식에 대한 수학적 설명이 적혀있으니 한번 보시라.

책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수식은 장식이 아니었다.

동료 수학자에게 조언만을 구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개인사도 함께 소설의 소재로 써버린 것에 대한 가벼운 푸념도 덤으로 쓰여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