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할머니 -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
전형준 지음 / 북폴리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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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겨울 당신을 심쿵 하게 할 책이라고 생각하는 책. 고양이와 할머니.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갔을 때, 마지막 날 감천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부산 여행할 때마다 늘 가지 못했기에, 보수동 헌책방 거리와 감천마을을 꼭 돌고 싶었다.

멀리서 보기엔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그 마을 속에서 사는 분들의 삶에 대해선 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감천마을에서 송도 해수욕장 가기 전에 우연히 보게 된 할머니와 고양이 모형이 있었는데, 그 의미를 몰랐다.

  

감천마을을 내려오며서 봤던 고양이 모형들.

  

감천 마을의 핫한 포토 스폿인 감천 달빛 도너츠, 고양이들이 유난히 많다.

부산이 상대적으로 따뜻해서인지, 아니면 부산 사람들이 더 따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부산엔 유난히 길고양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던 것 같다.

사람 많은 관광지에서 갓 낳은 새끼들로 경계하는 게 아니라면, 사람들을 그리 겁내지 않고 거리낌 없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먹을 걸 달라고 하는 아이들. 동네에서 사람들을 견제하면서 무서워하는 고양이들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때론 정말 배가 고파서 먹을 걸 달라고 오는 아이들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사진들의 의미를 알게 된 건 <고양이와 할머니>라는 책을 접하고 나서였다.

사라지는 골목에서의 마지막 추억이라니.

그리고 꽃과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 너무 심쿵 해서 받자마자 열심히 읽었던 책이다.

재개발 지역에 사는 할머니와 고양이들, 길냥이들을 찍은 사진들이 몹시 인상적이었다.

부산, 제천, 강릉을 영화제를 통해서 방문하면서 느낀 건 젊은이들이 정말 보기 힘들고, 나이 드신 분들이 더 많았었다는 점이었다.

특히 감천 마을은 강릉 영화제 개막작이었던 <감쪽같은 그녀>의 촬영지이기도 해서, 영화를 감상하면서 짠해지기도 했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던 마을 안쪽에서의 삶이 보이는 것 같아서.

수많은 재개발 현장에서 길고양이들을 만났다.

마을의 생이 마감하는 순간을 함께하는 건 사람들이 떠나고 남은 고양이들이었다.

할머니와 고양이

 

재개발 현장에 사는 길냥이들과 할머니들의 공존.

 

이런 사진들이 마구 등장하는데 정말 사진 속 고양이에게 푹 빠져버릴 것 같다.

아무리 길고양이라도 아무에게나 마음을 열지 않는다.

집사는 선택받는 거라고, 동네 고양이들도 사람 보는 눈이 있어서인지, 나보다 먹이를 꾸준히 잘 줄 것 같은 우리 엄마만 쳐다보고 애교를 부린다. (덕분에 길냥이 먹이는 엄마가 아주 가끔 챙겨주신다.)

각 고양이와의 만남과 추억이 가득 담겨있어서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임보하다가 보내기도 하는 고양이.

병에 걸려있다가 치료받고 사랑을 듬뿍 받은, 고양이들의 변신은 눈부시다.

 

사랑받고 있는 존재의 눈부심이란 영롱하다.

아슬아슬한 냥이 점프 +_+

읽다 보면 사랑스러운 고양이의 모습에 심쿵 하다가도, 고양이가 어떤 상태로 구조되었는지.

인간들에게 어떻게 버려졌는지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여줘서 안타깝다.

할머니들도 대다수 서울 간 자식들과 떨어져서 재개발 지역에 살고 계신 것이고.

고양이들도 결국 인간이 떠난 자리에 남아서,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따뜻하지만, 슬퍼진다.

 

할머니의 소원 부분에서 짠해지는 마음

겨울이라 그런지, 할머니와 함께한 고양이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얼어붙은 체온도, 퍽퍽한 마음도 녹아내리고 촉촉해질 것 같다.

서로 맹목적으로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가 어디 흔한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내 옆이 당연한 그런 관계가 묻어나는 사진들이어서 한층 더 사랑스럽다.

추억도, 기억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리겠지만, 그래도 함께 했던 순간만은 따뜻했을 것이다.

  

고양이도 할머니도 함께 의지하고 정을 주고받는 모습은 참 사랑스럽다.

 

할머니와 맞는 첫 번째 크리스마스 경험, 아기 옷 입은 냥이, 모두 소중한 추억이다.

고양이는 사랑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이미 난 고양이와 사랑에 빠져있었다.

누가 감히 고양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저렇게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면 말이다.

 

슬플 때 조용히 위로해주고 꾹꾹 눌러주고 골골송을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존재. 고양이.

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양이 자세가 문뜩 생각난다.

많은 분들이 길냥이에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아니, 관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싫어하지는 마셨으면 좋겠다.

길냥이와 함께 공존하는 삶을 생각하고, 길 위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아이들을 부디 존중해줬으면 좋겠다.

추운 날이면 늘, 동네 어딘가에서 괜찮을까 걱정되는 아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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