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존 그린 지음, 노진선 옮김 / 북폴리오 / 2018년 6월
평점 :
절판


존 그린의 신작 소설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는 마리 로랑생의 키스를 떠올리게 한다.


존 그린의 소설 원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너무나 유명한 영화 "안녕, 헤이즐 (원제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실은 신파 멜로물은 좋아하지 않아서 나중에서야 영화를 보게 되었지만, 그냥 그런 하이틴 로맨스물이라고 생각했던 영화는 생각보다 깊이 있으면서, 반전 있는 영화여서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오, 좀 신선한데? 그 이후로 존 그린이라는 작가를 주목하게 되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얼마나 유명한지, 최근 본 앤트맨 앤 와스프에서도 주인공이 그 책을 읽는 장면이 있을 정도니까.


유명한 vlogger이기도 한 작가 존 그린의 전작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영화로도 개봉되어 큰 화제를 모은 베스트셀러이다.


그 이후로 처음 접하게 된 작가의 후속작이자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가 확정된 작품인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라는 제목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나오는 한 문구를 따서 만들었다면, 이번엔 스티븐 호킹이 한 말이라고 하는 저 문장을 제목으로 한 작품인데, 그림을 보면 뭔가 좀 심오하게 빨려 들어간다.


존 그린의 소설의 제목은 로맨스 소설 제목이라기엔 뭔가 평범하지 않다. 

문학 작품의 문장 중 하나이거나, 철학적인 문장 중 하나이거나.


이번 작품에서는 불안장애(?명확한 명칭을 잘 모르겠다.)와 강박 증상에 시달리는 16살의 고등학생 에이자가 주인공이다. 현대인의 가장 대표적이면서 커다란 질병을 앓고 있는 주인공을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일단 이 소설은 손뼉 쳐 줄만하다. 비슷한 증상을 가지고 힘겹게 일상생활을 하시는 분들이 공감하실 정도로 굉장히 상세하게 묘사해놓았다. 어떻게 그 상황과 생각에만 빠져들어서 다른 것을 할 수 없는지.
왜 불안해하는지에 대해서 이렇게 상세히 적어놓은 소설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아주 예전에 신입생 시절 날 아끼던 선배가 해줬던 한마디가 떠올랐다.


고민은 하되, 고민 속에 빠지지 말렴.

하루하루가 걱정의 연속이고, 뭘 하던 고민의 연속인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뭐가 진실인지 가치관의 혼란이 한꺼번에 왔던 대학시절은 그야말로 카오스의 연속이었는데, 매번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는 날 보며 선배가 했던 말이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누구의 장단에 맞춰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던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주인공 에이자는 때로는 감당하지 못할 불안과 강박 장애에 시달려서, 살아가는 게 버거운 소녀다.
반창고를 붙인 자리를 통해서 바이러스가 감염돼서 죽을 거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그 상황이 정말 생생하게 느껴진다. 때론 거울 속에 무한대로 보이는 내 모습을 보듯 보이는 상황들은 마치 책표지의 나선 모양처럼 계속 그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데, 그 생각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그녀지만, 매사 조금은 쿨한 단짝 친구 데이지와 우연히 어린 시절 잠시 알고 지냈던 데이비스의 아빠가 어마어마한 현상금이 걸린 채 쫓기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 에이자의 불안과 강박 증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 

근데, 실제로 저런 생각 한 번쯤 머릿속으로 한 적 있지 않나요?


그리고 데이지는 엉뚱하게도 데이비스를 만나서 단서를 찾아, 현상금을 타자고 한다. 그럴 의도로 데이지와 에이자는 데이비스에게 접근하게 되고, 이미 그런 상황을 너무나 많이 겪어서 인간 불신의 상황에 와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비스는 에이자를 관심 있게 쳐다본다. 
그 누구도 믿고 의지할 수 없고, 처음 사람을 만날 때 상대방이 자신을 보는 건지, 그 뒤의 배경을 보는 건지 모르겠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데이비스와 침투적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에이자는 서로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부모 중 한쪽이 없다는 사실.
그런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어릴 적 만났던 사람이라는 점이 주는 안도감(?이라기엔 이미 데이비스가 에이자와 데이지가 가진 의도를 파악하고 있다.) 때문인지 몰라도 둘은 계속해서 끌리게 된다.
둘이 주고받는 메시지, 그리고 데이비스가 sns에 올린 글들을 보면 나이보다 너무 성숙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이 또래의 대화라기엔 너무 철학적인 대화가 오고 간달까.


명언들을 포스팅해놓으면서 sns에 적는대서 

뭔가 남들과 다른 애어른의 감성이 느껴진다.


서로 끌리지만, 좋은 분위기가 되어 서로 함께 있을 때 에이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헤어 나올 수 없는 불안증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한다. 키스를 하건, 몸에 터치가 있을 때마다 머릿속에 저런 생각들로 지배당한다니. 처음엔 책을 읽다가 맥이 확 빠지기도 했지만, 언젠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첫 키스를 하면서 들었던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해서 공감이 갔다. 
너무 가까워지기보다, 오히려 떨어져서 문자나 화상 통화를 통해서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더 가깝게 느끼는 상황이라니. 하지만, 현대인들은 대다수가 그러하지 아니한가. 마주 보고 이야기 나누는 것보다, 메시지나 sns 댓글로 소통하는 게 더 편하고, 핸드폰 안에 모든 인간관계와 즐길 거리가 있는 사람들.


이런 달콤한 분위기와 대화로 좋게 흘러가는 것 같다가도, 

상황은 금세 변하기도 한다.


가까워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두 사람 사이.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언젠가 개봉했던 원더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선천적 장애가 있는 주인공과 함께 하는 가족과 친구들 간의 이야기를 다뤘던 그 이야기와 살짝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여주인공 에이자가 데이비스를 만나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결국 두 사람이 심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물론 성장에는 늘 그렇듯이 이별과 아픔이 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고. 그 후 또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당장은 슬픔에 잠식되어 버릴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아픔과 함께하는 법을 익히게 된다.


자신을 더 잘 이해해주던 아빠가 죽고 난 뒤, 

엄마와의 관계가 쉽지 않은 주인공 에이자.


영어덜트 소설임에도 이 작품이 유치하게 느껴지지 않는 건, 애어른 같은 대사들 외에도 각종 문학작품과 명언에서 옮겨온 고급진 문장들 때문일 것이다.
유난히 공감 가는 문장이 많았던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오늘 하루를 살얼음판처럼 걷는 현대인들에게 이만큼이나 위안을 주는 문장들이 있을까? 


나는 불인 동시에 불을 끄는 물이었다.

화자인 동시에 주인공, 조연이었다. 

작가인 동시에 이야기 자체였다. 

누군가의 무엇이었지만 또한 나의 나였다.

나는 왜 데이비스가 천문학에 심취하게 되었는지 
손톱만큼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순간에 
일종의 안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나선은 안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작아지지만, 
바깥쪽으로 따라가면 한없이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마 데이비스는 진작 알았으리라.


달달한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인생의 씁쓸함을 미리 느낀 소년과 소녀의 만남과 정신적인 성장을 다룬 소설이라 더 와닿았었던 책이었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당연히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사들도 가득하다.
첫 연애의 불안불안했던 심정을 떠올리며 읽었던 소설. 
추억은 언제나 가슴속에 묻은 채로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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