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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해서 떠났다 - 220일간의 직립보행기
최경윤 지음 / 지식노마드 / 2013년 1월
평점 :
'나의 추억속의 외국인 친구들을 떠올리게 하는 책'
이 책은 나에게 이런 책이다.
여행기는 작가에 따라 각각의 색을 가지고 있다.
고소란히, 글 속에 그 사람의 생각, 느낌, 호흡, 표현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이 책, 이 여행기 속에도 역시 작가의 색이 담겨 있어서,
여행기를 읽으면서 작가의 여행에 대해 간접경험을 하는 동시에
작가의 독특한 생각도 읽을 수 있어서 또 색다른 경험을 했다.
참 매력이 터지는 작가다.
공대생인데 그림을 잘 그린다.ㅋㅋ 공대생이 그림을 잘 그리면 안되는 건 아니지만.. 무언가 신선하고 신기하다.
책 곳곳에 여행당시 노트에 그렸던 낙서 혹은 그림들을 볼 수 있는데 오, 느낌있는 스케치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직설적이고 솔직하다.
설사(똥?) 얘기도 많고, 남자들이 자기에게 작업 건 이야기도 있고, 진짜 여행의 날 것, 일상을 그대로 담아 놓았다.
이런 점들이 비슷비슷한 여행기들 중에서, 이 책의 인상을 진하게 남길 수 있는 요인 인 것 같다.
누구나 다 자신의 이야기는 너무나 특별해서, 내용을 글로 쓰면 책 한권 나온다, 는 말을 달고 살지만
이렇게 용감하게 자신의 책을 내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실행력과 용기에 감탄이 나온다.
책은 351페이지로 다소 두께감이 느껴지지만 스토리텔링이 뛰어나기 때문에 후루룩하고 빨리 읽어버릴 수 있다.
정보는 저스트 고에서 얻고, 이런 여행기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를 구경하면 된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나의 추억속의 외국인친구들을 떠올린 이유가 바로 이 책에는 여행속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별히 20대 초반에 나 역시 했던 고민들을 어린 친구도 똑같이 하고 있는 모습에서 다시금 옛 기억에 대한 향수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내 옛날 외국인 친구들도 많이 보고 싶어졌다.
스위스, 스웨덴, 브라질, 독일 친구들, 나와 인연을 맺고 같은 시간을 웃으며 혹은 울며 보냈던 친구들은
다들 각자 잘 살고 있겠지? 몇몇은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알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알 수 없다.ㅜ 훌쩍
여자 혼자 인도를 여행한다? 남미를?
대부분의 여자라면 못할 것이다. 게다가 며칠전 신문에서 인도에서 한국 여대생이 나쁜 짓을 당한 기사도 나오고..
그런데 작가는 씩씩하게 해냈다. 특별한 계획도, 스페인어 등에 대한 무언가 단단한 준비도 없이 훌쩍.
자유로움과 낙천성으로... 몸이 아파도 앓고 나서 또 씩씩하게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작가가 대단해 보였다.
중간중간에 사진들도 있는데 약간 똘끼넘치는 사짐들(작가님 미안~)도 많아서, 유쾌하다.ㅋㅋ
남미쪽에 대해 잘 몰랐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약간 선입견(?)이 생길 정도로 알게 되어서, 나도 한번 볼리비아로 가보고 싶은 마음이..ㅎㅎ
사바나의 친구들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나까지 마음이 따스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우유니의 소금사막 투어 부분은 좀 실망.
글쓴이의 글에 실망한게 아니라 우유니의 변질된 환경에 실망ㅜㅜ
이웃 여행블로거의 우유니 소금사막 사진을 보면서 우왕 나도 꼭 가야지 했었는데..
정말 엄청나게 아름다운, 나만 알고 싶은 곳이었는데 벌써 이렇게 일본애들이 막 엄청나게 방문한다니.
그냥 흔한 여행지가 되버린 거 같아서ㅠㅜㅜ 안타까웠다.
'답답해서 떠났다'
그래. 여행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는가.
이 문장 한마디로도 모든 것이 설명 가능 한 것을.
우리는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더 먼저, 더 많이 찾는다는 내가 좋아하는 여행작가님의 말 처럼...
답답하면 떠나면 되지 뭐.
잉여가 되지 않기 위해 치고박고 열심히 달리던 한국 20대의 삶에서 잠깐 비켜나
여행을 통해서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해 성찰해보는 작가를 보면서
같은 경험을 해 본 20대, 달리느라 정신없는 30대, 인생이 허무해짐을 느끼는 40대 모두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리고 있나?'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해볼 수 있는 깜찍발랄한 여행기인 것 같다.
더불어, 여행의 달콤함만이 아닌 여행의 '슬럼프'까지 담겨 있어 읽으면서 꽤 깊게까지 몰입할 수 있는게 이 책의 장점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새 여행이 일상과 뒤섞여 그 본질을 잃어버릴 때가 있는데...
어쩌면 사는 것도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덮으면서 '하고싶다'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도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
아마 이 책에 담겨있는 좋은 에너지들 덕분인 것 같다.
여행이 너무나 가고 싶지만 시간도, 돈도 없는 사람들은
1만 4천원을 들여 이 책을 통해 인도와 남미를 다녀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