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사생활 - 사유하는 에디터 김지수의 도시 힐링 에세이
김지수 지음 / 팜파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보그의 피처 디렉터 김지수씨.

이 책을 고른 이유 중 하나였다.


보그는 내가 디자인대학에 입학하기 전부터 봐온 잡지고, 입학 이후에도 교과서처럼 끼고 살아온 잡지다.

보그 자체가 판타지고, 우리나라 패션지의 자존심이며, '보그니까' 뻣뻣한 프라이드도 용납가능하다.

우리나라 넘버원 하이패션지의 피처 디렉터의 글.

이 책이 나를 유혹한 이유였다.


트렌드를 보여주고, 만들어내고, 어떤 다른 곳보다 변화가 빠르고, 또 빠르게 올드해지는 패션업계의 잡지에서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이 담긴 글을 만난다는 것이 신기하고 또 재밌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품위 있게 사는 법'의 개정증보판이라고 한다.

도시의 사생활이라는 제목이 글과 더 잘 어울린다.

'도시'라는 공허하고 편리하고 세련된 느낌의 단어가 글의 문체와 어울린다.

물론 품위있고 우아한 느낌도 당연히 있다.


이 책의 부제는 '사유하는 에디터 김지수의 도시 힐링 에세이'다.

표지만 봤을 때는 힐링이라는 단어는 도대체 왜 넣은거지? 라고 생각했다.

요즘 힐링이 대세라서 그냥 집어넣은건가? 싶기도 했고.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알겠더라. 왜 '힐링 에세이'라는 다소 상술이 느껴지는 뉘앙스의 단어로 표현하고 싶었던 의미를.


난 여자다.

그러니까 이 책을 보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데 만약 남자가 이 책을 보면 어떻게 느낄까? 궁금하다.

이 말의 뜻은 이 책은 온전히 '여자의 입장과 시각'편에서 '솔직하게' 적은 에세이라 공감의 깊이가 한층 더 간다는 의미이며 내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이 책을 보면서 찌릿하게 느껴져오는 부분이 있어서 더 아프고 더 좋았다는 말이다.


책은 Ego, Attitude, Herstory, These Days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각 부분의 주제와 연관된 에세이가 6개에서 9개 정도 담겨 있다.


첫부분인 Ego부터 천천히 읽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불편했다.

내 속에 있는 감정과 너무나 유사한 마음의 묘사를 통해 감정을 똑바로 쳐다보고 직면하도록 에세이가 등을 떠밀고 있는게.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었고.

질투, 불안, 우울, 외모에 대한 동경...

우리모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한구석의 못난 부분...

김지수씨는 이런 부분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고, 또 남의 이야기 하듯이 써 놓았다.


아, 이래서 힐링 에세이라고 했구나. 싶었다.

모두 앞에서 '단점'을 드러낼 때 단점은 단점이 아닌게 되버린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그렇게 다르지 않다. 다 거기서 거기다. 개개인이 되게 개성있고 다르다고 해서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이나 상처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사람에게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끙끙앓고 있는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니까 이건 상처가 아니라 우리모두의 숙제, 너와 나의 공통점 특히, 이 시대를 살고 있고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자라면 느낄 수 있는 기분이자 생각인 것이고 이런 점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나 혼자 아픈 것이 아니라는 것.

책을 다 읽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프롤로그를 찬찬히 읽으니 '상처받은 작가만이 독자를 위로할 수 있다는 나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기를 바란다'(p7) 는 문장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글 곳곳에 살아있는 날카롭고 뾰족한 통찰력은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하기도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했다.


'품위는 매너, 기품, 인품과도 다르다. 매너는 각기 다른 사회적 상황에 따라 얼마나 정확하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이다. 문명화 과정은 행동이 세련돼가는 과정이다. 기품은 타고난 기질과 성품이 고상하고 격조가 있는 것이다. 평균적 문명의 규칙을 능가하는 범절과 기질, 때로 기품은 상속된다. 인품은 인간됨의 좋고 나쁨이다. 매너가 없으면 촌스럽고 기품이 부족하면 천박하며 인품이 나쁘면 사악하다. 반대로 매너가 있으면 인정받고 인정받고 기품이 넘치면 존중 받으며 인품이 좋으면 존경을 받는다(p071)


이런 통찰은 돈주고 살 수 없는거라 더 멋지다고 생각했다.


책은 친근하되 쉽지 않다.

계속 내 자신을 성찰하고 또 생각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전에 용서와 목소리, 아부와 경청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진 않았었으니까.

가방과 명품, 니코틴과 여관, 엄마에 관한 부분은 읽으면서, 나와 다른 별세계의 새로운 종류의 여자를 보는 것 같아서 흥미롭게 읽었고,

마지막 가족과 이웃에 관한 부분을 읽을 때는 따뜻했다. 행복하게 박제된 4인용 가족의 환상을 떠나보낼 수 있는 것 같아서.


우리는 현실 속에 살지만, 현실을 외면하려 애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진지하게 통찰하게 되었다. '현실의 도시 속 나의 사생활'에 대해서.

그리고 에세이마다 아 이렇게도 살아봐야겠다라는 어떤 팁같은 것도 얻었는데

팁이란, 시크하고 감각적이면서도 솔직하고 시원한 그녀의 글을 보면서 나도 따라하고 닮고 싶은 어떤 부분이다.



마음이 텅 빈 것 같은 기분으로 살고 있는 여자들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여자들

고상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여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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