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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사랑법 - 돌보고 돌아보며 사랑을 배우다
우석훈 글.사진 / 상상너머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3년 전에, 호주 멜버른 근교에서 반 년 정도 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홈스테이에서 묵고 있었는데, 집에서는 '미스티(Misty)'라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챙겨주긴 했지만 60을 조금 넘긴 할머니는 집안에 털 날리는 게 싫다면서 절대 집에 들이지는 않았다. 녀석은 아마도 원래는 길고양이였을 것이다. 부엌에서 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빼꼼 열려 있으면 잽싸게 방 안으로 뛰어드는데, 이 녀석을 건져서 내쫓는 건 주로 내 몫이었다.
그러다가 아침저녁으로 밥 주는 것도 어느새 내 일이 되었다. 아침 일찍 영어 학교에 가는지라 아직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일어나서 학교 가기 전에 뭐라도 좀 먹으려고 부엌으로 가면 마당으로 통하는 문 아래, 열리지 않는 조그만 유리창을 녀석의 얼굴이 가득 채운다. "냐옹~ 냐옹~" 그래도 별 반응이 없으면 그 옆에 있는 큰 유리문에 기대서 유리를 앞발로 쾅쾅 두드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엌에서 점심 때 먹을 샌드위치에 쓸 빵을 토스트기에 넣고, 홍차를 만들기 위해서 물을 전기 포트에 올려놓고 나서야 고양이 먹이 캔을 하나 따서 밖으로 나간다. 이 성질 급한 녀석은 내가 바닥에 캔을 내려놓기도 전에 덤벼든다. "아아, 이건 아니지, 안 그러냐 미스티? 식탁 예절이라는 게 있지." 이런 말이 통할 리가 없다.
먹이를 향한 순수한 열정에 불타는 놈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 잔머리를 좀 썼다. 접시에다가 캔 먹이를 담아놓고, 먼저 빈 캔만 바닥에 툭 던져놓으면 미스티는 열나게 빈 캔을 뒤진다. 그 틈을 타서 접시를 바닥에 내려놓으면 끝. 뒤늦게 페인트 모션을 알아챈 녀석이 접시로 덤벼들면 빈 캔을 집어서 휴지통에 던져 놓으면 땡이다. 그렇게 녀석과 반년을 보냈다. 거의 날마다 먹이도 주고 했으면 나와 좀 친해졌을 법도 한데,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 둘 사이는 그냥 그랬다.
이듬해 다시 왔을 때, 미스티는 보이지 않았다. 굳이 주인에게 묻지 않았다. 녀석은 내가 처음 그 집에 왔을 때부터 이미 늙을 만큼 늙어서 이도 부실하다보니 비스킷 종류는 잘 먹으려 들지 않았다. 물어봐야 좋은 대답도 없을 텐데 굳이 뭘 확인하나.
나와 고양이의 인연은 그게 다였던 것 같다. 어릴 적에는 집에서 덩치 큰 똥개를 키우고 있었던 것 같은데 별로 친하지 않았고 동물을 좀 무서워하는 편이라서 그 이후에도 반려 동물 같은 건 키우지 않았다. 고양이는 개와는 다르게 묘한 매력과 이끌림이 있었지만, 직접 고양이를 키워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반구에서 잠시나마 고양이란 녀석과 애증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
독후감 쓰는 데 내 얘기만 주저리주저리 했다. 우석훈 님의 <아날로그 사랑법>을 보다가 갑자기 미스티 생각이 나서 그랬다. 하여간 이 책은 저자가 고양이를 키우면서 보낸 4년의 기록이다. 책장을 펼칠 때마다 고양이털이 흩날릴 것만 같이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사진 한 장 글 한 줄에 알알이 박혀 있다.
마치 오래된 영국의 티 룸(영국은커녕 유럽 한 번 못 가봤다) 같은 표지를 보면서, '그래, 이런 건 홍차 한 잔 마시면서' 하는 생각에 카페에서. 티 룸 같은 격조는 없는 종이컵에 담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와 햄치즈 베이글을 시켜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캔 먹이를 해치우고 나면 마당 정원에 있는 의자 위에 게으르게 앉아서 햇볕을 쪼이면서 하루를 보내는 미스티를 보내면서, '저 녀석에게 삶이란 뭘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도 고양이 똥을 치우고, 물과 사료를 부어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한미 FTA가 비준되었을 때 삭발을 하고, 역할을 맡아서 열심히 노력했던 총선과 대선에서 지고... 이 책은 여러 번 나를 배꼽 잡게 웃게 만들었지만 그 사이 사이에 박혀 있는 저자의 삶에 대한 기록들은 쓰라리고 아픈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24시간 내내 화만 내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삭발을 하고 집에 돌아온 저자의 모습에 놀라서 도망가는 야옹구 녀석을 보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매일 니 똥을 치워주는 건, 바로 나라고 나!’ 하고 외치는, 비장한 사회적 행동이 코미디로 뒤바뀌는 유쾌함이 없이 24시간 내내 눈썹에 힘만 주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밥 먹고, 햇볕 쪼이는 게 삶이었던 고양이 미스티처럼, 사람에게도 늘상은 아니더라도 하루에 몇 시간, 한 달에 며칠쯤은 그런 삶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린 너무 최선만 다하면서 죽자 살자 달려가고만 있다. 이 책의 부제처럼 '돌보고, 돌아보며' 살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 중에서 성공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성공하는 삶이 아니라, 성공하지 못해도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삶이다. 저자는 그런 삶을 고양이를 키우면서 발견했다. 바로 누군가를 돌보는 행복, 저자의 말처럼 지옥에 떨어졌을 때 지옥의 문지기에 앞에서 꺼낼 수 있는 카드를 하나 만든 돌봄과 사랑. 거기에서 저자는 경쟁제일주의 사회인 한국의 학교에서는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 행복의 노하우를 터득했다.
아, 반쯤 읽었더니 베이글도 홍차도 다 떨어졌다. 어쩔 수 없다. 얼 그레이에 마카롱 하나(젠장, 아까 먹은 거랑 합치면 책 한 권 값이다. 도대체 출판 시장에 관한 기사만 나오면 책값이 비싸다고 아우성치는 댓글이 한 무더기는 나오는데 술값 찻값과 한번들 비교해 보시라)

그렇게 고양이를 키우면서, 저자의 아이가 태어나고 절친 한 명이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새끼 고양이 다섯 마리를 떠나보내고, 사춘기 쯤 되었을 법한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보내야 했다. 그렇게 삶은 만남과 헤어짐이 이어지면서 계속 된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인연에 상처를 주고, 결국은 언젠가는 헤어질 텐데 굳이 지금 당장! 헤어지지 못해서 안달을 하는 건지. 인간의 삶은 참으로 복잡하고, 그래서 고양이보다 행복하지 못하다.
이 책은 열 번쯤 웃게 만들고, 열 번쯤은 마음을 짠하게 만든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그냥 덤덤한 문체라서 더더욱 잘 스며든다. 하긴 수사법이나 미사여구도 다 인간이 만든 복잡한 장식품이다.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서 그런 액세서리가 뭐가 필요하겠나. 참으로 냥이의 마음으로, 냥이스럽게 쓴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극진한 돌봄 속에서 자라서 여기까지 왔다. 아마도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라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가 조금 더 온기가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대선에서 졌다고 멘붕이 되고 세상 다 끝난 것처럼 좌절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돌봄의 폭을 많이도 필요 없고, 주위로 조금씩만 넓힌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주위의 길고양이에게,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정치적으로는 올바름을 추구하면서도 나와 내 가족에 관한 문제에서는 놀랍도록 경쟁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조금만 더, 돌보고 돌아보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게 시민의 사회이고, 행복한 사회일 것이고, 세상을 떠난 저자의 절친, 고 이재영 씨가 했던 말처럼, 우리는 지는 법이 없을 것이다. 그게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진실로 전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믿는다.
우석훈 박사님이 떠나보낸 그 예쁜 냥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서 고양이별에서 남반구에서 온 미스티하고 만났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만났다면 미스티 녀석, 이렇게 투덜거렸을 것 같다.
"그 때 그 한국 남자 놈은 내가 그렇게 울고불고 문을 탕탕 두드리는데도 쌩까고 지 할 거 다 하고 나서야 먹을 거 챙겨주더라고. 내 똥도 안 치우고. 돌봄은 개뿔!"
* 저자가 고양이 다섯 마리를 고양이별로 떠나보냈으니, 나도 별 다섯 개를 이 책에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