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설 대신 진심, 힐링 대신 재활

독설 대신 진심으로
김구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2년 9월

도덕적이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 감동적이다. 그런데 이미 과거는 흘러갔고, 하자 많은 이 인생은 그 사람과는 한참 오래전부터 동떨어져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으면 그래 아프니까 청춘이지, 싶다. 그런데 그 저자의 청춘은 서울대 법대로 시작했다.

반면에, 하자 많고 우여곡절 많은 삶의 이야기를 읽으면 좀더 가깝게 느껴진다. 꼭 처음부터 끝까지 흠 없는 인생에서만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여러 가지 하자를 안고, 부침을 거듭하면서 겨우겨우 삶을 끌고 나가고 있지 않을까?

김구라란 사람. 참 논란이 많은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연예계가 어디까지 개방적인지, 어디까지 자유로운지 그 경계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는 참으로 다면적이다. 욕설이나 막말과 같은 단어들이 있는가 하면, 잡학다식, 예리함과 같이 앞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단어들도 그를 수식한다.

인터넷 방송에서 누가 들으면 귀를 씻고 싶었던, 그러나 누가 들으면 열광하던 그런 방송을 하다가 그 인기를 바탕으로 지상파 방송까지 발돋움하고, 대체 불가능한 캐릭터로 인기를 얻다가 한 순간에 방송을 접고, 이제 다시 방송으로 나오려는 김구라란 인물의 인생을 보면 그 자체가 그 어떤 연예인보다도 드라마틱하다.

그렇기 때문에 김구라란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그가 책 한권쯤은 능히 쓸 수 있는 저자 자격은 있다는 사실까지 부정하지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서 말했지만 도덕적이고 완벽한 사람만의 인생에서만 배울 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하자 많고 굴곡 많은 인생에서, 그리고 그런 하자와 굴곡을 파도타기 하듯이 아슬아슬하게 타고 넘다가 때로는 파도에 휩쓸리고, 그러다가도 헤엄쳐 나오는 모습에서 더 배울게 많을 수도 있다.

언론에서 이 책을 다루는 부분은 주로 자신의 이야기, 특히 방송 하차와 그 이후의 얘기로 맞춰져 있다. 하지만 내게 진짜로 쏠쏠했던 내용은 후반부, 곧 인생상담이었다. <라디오스타>를 보면서 게스트들이 앉는 자리에 연예인이 아닌, 내가 앉으면 김구라는 무슨 얘기를 할까? 궁금한 분들이라면 꼭 읽어볼 내용들이다.

무엇보다도, 원론적인 얘기, 이론적인 얘기, 철학적인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경험, 주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인생에 대한 해답이기 때문에, 그것이 완벽한 100% 정답은 아닐지라도 책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대답이기 때문이다. 러닝머신 뛰는 위층 아줌마 때문에 미치겠다는 고민에 대해서는, 그건 공동생활의 복불복이며 어딜 가나 그런 아줌마를 피할 수 없다고 냉정하게 대답하는 것을 보면 되지도 않는 이상한 해법을 제시하는 것보다 백만배 현실적이다. 반대로 시간 개념 없는 여자친구의 버릇을 고치려 하기 보다는 기다리는 시간을 값지게 쓰라는 조언, 예를 들어서 책을 보면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나서 '너 기다리면서 이만큼 책봤다'고 그때까지 본 책을 다 보여주라는 조언은 독특하면서도 실용적이다. 정말 그렇게 하면 시간도 값지게 쓰고, 여자친구도 꽤 감동 받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런 게 진짜 김구라의 힘이다. 그냥 독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만 차마 입밖에 감히 꺼내지 못하는 것을 그냥 대놓고 대신 물어봐 주고, 또 저 멀리 있는 환상 속의 연예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처럼 하자 많고 불만도 많고, 그런 생활인의 모습. 그래서 나와 아주 가까이에 있는 듯한 모습이 그의 힘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도, 보통 사람들의 삶과 참으로 가까이에 있다. 도덕적이고 철학적인 답이 아닌, 진짜 삶을 통해서 잘 우러나오는 답이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에 대한 편견을 빼놓고 본다면, 이만큼 가까이 느껴지는 책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힐링 베스트셀러들이 진통제 처방이라면, 이 책은 상처 받고 하자 많고, 비틀거리는 삶에 대한 재활치료 처방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김구라 자신도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에 재활치료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