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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부리 이야기 - 제11회 비룡소 문학상 수상작 ㅣ 난 책읽기가 좋아
황선애 지음, 간장 그림 / 비룡소 / 2022년 3월
평점 :
이야기는 힘이 세다. 인류는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해왔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는 어떤 기구나 도구도 필요 없으며, 최소한의 자본금의 투입도 없이 무한정 생산이 가능하다. 말하는 입과 듣는 귀만 있으면 얼마든지 생산, 유통, 소비되는 것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유희이므로 이야기는 쉴 틈 없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타인의 삶을 접하고 나의 삶과 견주어보며 때로는 위로받고 때로는 반성하기도 한다. 무료한 일상의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감대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고, 사람들은 끝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쫓는다.
고대에는 유랑하는 음유시인의 입을 통해 이야기가 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넘어 전해졌다면, 문자사용과 인쇄술의 발달에 힘입어 이야기가 기록되어 전달, 보관이 가능해 졌다. 현대에 와서는 뉴스, 신문, 책, 만화, 드라마, 영화, 개인 SNS 등 이야기의 채널이 폭넓게 다양해졌으며 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그 전파속도 또한 사람의 힘으로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빨라졌다. 안 그래도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데, 천 리를 가는 속도마저 순식간인 5G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야기 중에 미담-착하고 예쁘고 바람직하고 본받을만한-그런 좋은 이야기보다는 나쁜 이야기가 더 자극적이고 재미있다. 인간의 본성 가운데 어떤 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은 미담보다는 험담을 즐겨하고 당연히 그런 이야기가 더 잘 유통되고 소비된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가공되고 과장되고 거짓까지 덧붙여진다.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그 이야기로 인해 피해자가 생기고, 그것은 어른들의 세계나 아이들의 세계뿐만 아니라 동화 속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 오리 한 마리가 있다. 아니 부리 하나가 있다. 이 ‘오리부리’는 말을 듣고 옮기는 것을 너무 좋아하다 못해 본체인 오리에게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주체가 되어버린 ‘이야기의 화신(化身)’이다. 이 오리부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거나 진실을 검증하려는 의지는 없이 오직 이야기를 쫓고, 퍼트리며 다닌다. 타인을 과감하게 평가절하하고 낙인찍은 후에 조리돌림하며 대중을 선동한다. 그렇게 행사한 자신이 가진 말의 영향력에 도취되어 그의 행동은 점점 더 강화되어간다. 이 책 『오리부리 이야기』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동화인 한편, 말이 가진 권력에 취해 가짜뉴스와 선동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를 풍자한 우화이다.
이야기에는 주인공인 ‘오리부리’와 여러 숲속 인물들이 등장한다. 누명을 쓰고 따돌림당하는 ‘들쥐’, 생명 존중 정신으로 동물에게 총을 쏘지 않는 ‘겁쟁이 사냥꾼’, 요리를 너무 맛있게 잘해서 불량한 조미료를 사용한다는 누명을 쓴 ‘앞치마 요리사’, 오리부리의 입 속에 갇혀 진실을 말하지 못해 죄책감을 가지는 ‘무당벌레’, 대부분 루머(rumor, 이 사람 저 사람 입에 오르내리며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와 가십(gossip, 남의 사생활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 험담)의 직간접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결국 쉽고 가볍게 회자되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날카롭게 공격하는 칼과 같은 ‘소문’의 문제점을 깨닫고 서로 위로하며 고통을 극복하려 노력한다. 소문의 대상이 되는 피해자에게는 ‘누구나 살다보면, 내가 잘못하지 않아도 소문의 바람을 맞을 때가 있는데, 자책하지 않고 기다리다 보면 바람이 지나갈 것’이라는 충고를 해주고, 피해자 곁에 있는 이들에게는 ‘소문에 휘둘리지 말고 믿고 이야기를 들어주라’는 조언을 해준다.
모든 소통이 인터넷상에서 이루어지는 요즘, 하루가 멀다하고 자살뉴스가 들려온다. 언론인, 정치인, 연예인 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일반인, SNS에서 영향력이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소문을 생산하고 유통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소문에 의한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SNS, 악성 댓글 등으로 서로 끊임없이 공격을 하고 방어에 취약한 이들은 끝내 극단적인 선택에 내몰린다. 익명의 개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형 언론사의 기자들이 조회수와 클릭수를 올리기 위해 기자정신에 기반한 팩트체크 따위 없이 이러한 가짜뉴스와 카더라는 전언만으로 이루어진 비방전의 최전선에서 칼날을 휘둘러대고 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데, 말의 무게에 대한 책임의식은 없이 오직 그 강력한 파괴력만을 즐기고, 누리고 있다. 이러한 세태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작가는 이런 우화를 썼고, 널리 읽혀 말의 폭력성을 대중에게 일깨워 주고자 2023년 원북 도서에 선정된 것이 아닐까싶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허무하게도 오리부리는 타고가던 풍선이 터지며 물에 빠지는 바람에 입속에 머금고있던 이야기들을 잃었고,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위기를 겪고 난 뒤 각성하고 회개하였다. 오리 몸통에 돌아간 뒤에는 입을 꾹 다물었고, 누군가에게 소문을 들으면 “너, 그거 확실한 말이니?”하고 팩트체크를 하게 되었다고 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그 간 피해자들이 받은 피해와 고통에 비하면 개연성을 납득할 수 없을 정도로 오리부리의 각성과 회개는 뜬금없다. 현실에서 루머의 공격을 받아 망하거나 자살한 피해자들에게 최소한의 반성과 사과도 표하지 않는 가해자들이 어떤 벌도 받지 않고 여전히 그 말의 권력을 휘두르며 끊임없이 다음 타겟을 노려대는데, 책 속에서 만이라도 오리부리가 더 혹독하게 죗값을 치르길 바라는 나는 동화책을 읽기에 지나치게 근엄하고 보수적인 독자인걸까.
피해자들도 수동적으로 ‘소문의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면서 서로 안부하고, 위로하며 개인적인 마음의 고통을 극복하는 소박한 소통을 넘어, 더 깊이 연대하고 다 같이 발 벗고 나서서, 더 크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자신들을 공격했던 소문에 맞서 싸웠더라면 어땠을까? 가해자인 오리부리 뿐만아니라 숲속 어떤 친구들도 헛된 소문을 가볍게 입에 올리기 힘든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는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말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이 책, 『오리부리 이야기』가 우리 사회의 아이부터 어른까지 ‘사이버 렉카(이슈가 생길 때 마다 확인절차 없이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올리는 이슈 유튜버 또는 인플루언서)’들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는 더 강하고 더 힘센 ‘우리’를 만드는 초석이 되어 주기를 기대해본다.